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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격한 여행자 Apr 30. 2021

K-Pop과 돔 투어

덕질 천국 일본에서 K팝 과몰입하기

일본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덕후의 나라다. 무엇에 빠지든 ‘나노 단위’로 덕질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 발만 찍어 놓은 책, 슬리퍼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잡지 같은 것들이 있다. 과몰입, 텐션 맥스 덕질로는 아이돌을 빼놓을 수 없다. K팝 고인물로서 코로나19 이전까지 경험했던 투어의 메커니즘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기억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다음 시즌을 뛰고 싶은 염원을 담아서...


왼쪽은 무엇인가에 몰두에 있는 고영이의 모습만, 오른쪽은 고영이의 발만 모아놓은 책이다.


본진이 일본 투어를 한다는 것은 곧, 궁극의 탕진잼이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공연 시즌 일정이 나오면 나의 휴가 및 일본 전국 일주가 확정됐다. 티켓팅 성공률에 따라 투어의 난이도, 소요 비용도 결정된다. 코로나19로 앞으로 공연은 열리는 것인지, 공연장은 화상 연결로만 갈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한국은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선착순으로 좌석(feat. 포도알)을 눌러 티켓을 확보하지만 일본은 거의 대부분 추첨제다. 당첨도 운, 좌석도 운이다. 자리도 예매할 때가 아니라 보통 공연 날짜 이틀 전에나 알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프리미엄을 붙여 중고사이트에 표를 되팔지 못하게 하려고 입장과 동시에 좌석이 공개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Ticket board 기준으로 공연 당일 큐알코드를 찍고 공연장에 입장하면 좌석이 적힌 영수증 같은 종이를 받는데, 그게 티켓이다. 개인적으로는 매크로, 이선좌와 싸워야 하는 한국보다 정신 건강에는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보든 것을 운과 업보에 맡기면 된다.


그래서 일본 투어 일정이 뜨면 휴가를 낼 수 있는 고연 날짜 앞뒤로 우선 에어텔을 선 지른 뒤 콘서트 티켓 확보에 들어간다. 이제부터 그야말로 개미지옥과 같은 영겁의 불확실성의 굴레다. 티켓 응모와 양도계 총공으로 사이고노 사이고마데 티켓을 구해야 한다. 이 험난한 경험담은 다음에 할 수 있다면 따로 해보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공연 매커니즘에 집중해보겠다.


일본은 공연장이 전국 도도부현都道府縣에 고루 퍼져있다. 공연할 수 있는 장소도 많고, 관객 규모에 따라 종류도 많다. 크기에 따라 나눠보면 회장 < 홀 < 아레나 < 돔 < 스타디움 순이다.


코로나 시국 직전까지 시부야 109를 비롯해 도쿄 시내에는 끊임없이 한국 아이돌의 투어 광고가 내걸렸다. 투어를 광고하는 트럭도 도심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나의 본진을 포함한 한국 아이돌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이 엄청난 공연 시장을 확보해야 지속가능한 활동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현지화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에 안착해야만 전국투어를 통한 상당히 꾸준하고 많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 아이돌은 한국에서 콘서트를 할 수가 없다. n십 년 전부터 한국에 3만~5만 석 공연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혼자, 주변 사람들에게만 주장했던 고인물인 나 역시 본진의 내한공연을 기다리다 원정을 뛰기 시작한 1인이다. 대체 왜 K팝 아이돌이 J리그를 뛰어야 하는지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한 지점이다.


글로벌 팬들 입장에서는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울이나 도쿄나 본국에서 뜨는 항공편을 포함한 원정 비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멀고 먼 하늘 길을 건너온 팬일수록 한 번 체류할 때 볼 수 있는 공연 횟수가 중요할 뿐이다. 입국한 국가에서 도시를 이동해 다음 공연을 보는 것은 별로 큰 일도 아니다. 어차피 공연이란 3일짜리면 3일 출석, 5일 공연이면 5일 출석, 올콘이 진리이니까. 서울에서 1.5만 석 체조경기장 3일짜리 콘서트 vs 도쿄/오사카/후쿠오카 각 3일 5만 석 돔 투어 이런 식이면 정말 밸붕이다. 어차피 어디든 글로벌 단위로 팬들과 경쟁해 티켓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후자에 승부를 건다.


오사카 쿄세라돔. 오른쪽 블록 시야제한석 시야각이다.(오른쪽 사진) 돌출 무대만 보이고 정면 무대 시계 제로. 사이드에 작은 전광판 따로 달려있어서 화면으로만 볼 수 있다.



일본에 진출 혹은 데뷔한 아이돌의 투어 과정은 이렇다. 싱글 혹은 정규앨범을 내고 대도시 중심으로 지역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는다. 현지화를 하는 과정이다.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그룹은 바로 큰 공연장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일본 특유의 관례상 인기가 많아도 밑바닥부터 올라가는 루트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회관(1000석 미만)→홀(2000석 안팎)→아레나(1만 석 이상)→돔(3만~5만 석)의 순서로 투어 규모를 키워나간다.


부도칸日本武道館이나 요코하마 아레나横浜アリーナ 등 1만~2만 석 공연장에서 첫 공연을 한 뒤, 정식 앨범 발매 후 아레나 투어나 돔 투어를 시작하기도 한다. 2018년 일본 라이브 시장의 관객 동원 순위를 보자.


www.livefans.jp/awards


동방신기는 2018년 1월 나고야돔과 쿄세라돔에서 시즌을 시작해 6월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했다. <東方神起 LIVE TOUR ~Begin Again~in NISSAN STADIUM>는 1회 7만 명이 들어가는 닛산에서, 그것도 3일간 연속 공연했다. 일본 가수를 포함해 닛산에서 3일 연속 관객을 풀로 채운 건 동방신기가 최초였다. 이후 9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를 비롯해 10개 도시에서 <東方神起 LIVE TOUR 2018 ~TOMORROW~>를 33회 열어 12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내가 일본에 살고 있었던 2019년 말에도 시부야 스크램블에서 가장 큰 광고판 주인공은 동방신기였다.


동방신기 일본 닛산 스타디움 공연 모습. 사진|SM엔터테인먼트


2017년 1위는 三代目JSB, 2위는 빅뱅. 이때만 해도 아라시嵐가 4위였는데, 2019년 상반기에만 <ARASHI Anniversary Tour 5×20>는 관객수 649,214명으로 2위를 했다. 이때 1위는 사잔 올 스타즈 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로 651,756명이었다. 근데 아라시는 13회 공연 관객이고 산잔은 22회다. 아라시는 돔 투어만 했으니까. 2020년은 코로나로 공연 암흑기였고 아라시도 해산했으니 이제 일본 투어 시장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관객 동원수 상위권 올라와 있는 팀들은 돔 투어 혹은 아레나 투어를 돈다. 회관과 홀 투어는 인지도, 팬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이라면 아레나 투어부터 본격적으로 수익이 난다. 보통  [1만 엔(10만 원) 안팎인 티켓값]+[관객수(티켓값)의 평균 0.8배~2배 수준인 굿즈값]을 합한 것이 투어 수익이다.


한 자리에서 공연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수익률은 커진다. ‘돔 투어’의 상징성은 이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다. 도쿄돔이 하루 대관료가 1700만 엔(1.7억만 원) 수준으로 비싸지만 하루 5.5만 명 티켓 수익+굿즈 수익을 따지면 엄청난 규모의 경제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도쿄돔 가는 길. 돔 맞은 편 호텔을 숙소로 잡고 창문에 본진 이름까지 붙여야 투어의 완성이다.



일본 첫 돔 구장인 도쿄돔이 1988년, 오사카 쿄세라돔과 나고야돔이 1997년, 삿포로돔이 2001년 만들어졌다. 4개 돔을 돌며 공연하는 것이 ‘4대 돔 투어’ 여기에 후쿠오카를 더해 도쿄/후쿠오카/오사카/나고야/삿포로를 도는 것이 ‘5대 돔 투어’ 사이타마 메트라이프 돔(구 세이부 돔)을 포함해 ‘6대 돔 투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첫 5대 돔 투어는 SMAP(밴드는 GLAY, 솔로 아티스트는 쿠와타 케이스케), 첫 6대 돔 투어는 Mr.Children이 했다. 일본에서도 돔 투어를 할 수 있는 그룹과 아닌 그룹의 위상이랄까 이런 것이 확실히 구분되는데, 한국 아이돌들이 매년 돔 투어를 해왔다는 점은 참 자랑스럽다. 서울에도 고척 스카이돔이 생겨서 최대 3만 석 규모로 3일 연속 공연이 가능해져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K팝의 본국에 전국투어가 없다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도쿄돔 왼쪽 블록 24ゲート 1층 3루측 시야각이다.


사실 돔 투어는 정말 슈스라는 느낌이고 보편적으로는 아레나 투어를 돈다. BTS는 돔 투어도 아니고 스타디움 투어만 돌긴 하지만 그건 그냥 BTS만 가능한 일입니다... BTS는 일본 투어가 아니라 세계 투어 중 아시아 국가 중 하나로 일본을 방문한 것일 뿐..


가동률이 가장 높은 1만~2만 석 규모 아레나에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부도칸, 국립 요요기 경기장 제1체육관, 마쿠하리 멧세, 요코하마 아레나, 일본 가이시홀, 오사카성 홀, 마린 멧세 후쿠오카 등이 있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연간 가동률 추이


3만 7000석의 사이타마 아레나는 연간 가동률이 2014년(83.3%) 2015년(77.6%) 2016년(79.2%) 80% 수준으로 거의 놀리는 때가 없었다. 보통 1년 반 전에 예약을 해야 공연을 잡을 수 있고, 13개월 전 공연 스케줄을 확정해야 다고 한다. 원래는 경기장으로만 쓰다가 2006년 롤링스톤즈가 처음 공연하면서 대형 아티스트들이 공연하게 됐다고 한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는 도쿄에서 지하철로 40~50분 정도 걸린다. 오른쪽은 우블 スタンドNゲート400レベル 시야각이다.



간사이에서 쿄세라돔 다음으로 큰 고베 월드 기념홀 아레나도 가동률이 2016년(68.2%) 2015년(69.9%) 70% 안팎이었다. 사실 가동률에는 공연장으로 사용된 날짜만 있는 게 아니라 경기장의 본래 용도인 스포츠 경기나 전시회 같은 다른 행사들도 열린다. 하지만 부도칸, 오사카성 홀 같은 곳은 연간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 150일 안팎인데 무대 장비를 설치하고 리허설하고 철거하는 날까지 합치면 거의 대부분의 날이 공연용으로 쓰였던 듯한다.


특히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아레나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 리모델링을 했다. 아지노모토 스타디움(도쿄 스타디움) 옆에 있는 무사시노 총합 스포츠플라자(武蔵野森総合スポーツプラザ)의 경우 2013년 スポーツ祭東京 용으로 쓰였는데 도쿄올림픽 때 배드민턴과 근대 5종 펜싱, 페럴림픽에서는 휠체어 농구 경기용으로 쓰려고 재정비를 했다. 2017년 11월 완공됐고 2018년 11월에 가서 공연을 봤는데 너무 쾌적했다. 1만 명 객석 대비 좌석 공간이 넓어서 무대까지 거리가 다른 아레나보다는 멀었지만 공연장 이용 만족도는 크다.


무사시노총합스포츠플라자 スタンド(4階) Gブロック 7列 경기자 좌석의 가장 뒷줄 시야각이다. 레알 찐 하나님석. 1만 석 규모치고는 좌석간 공간이 넓어 무대에서 꽤 멀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스타디움 아레나 개혁 지침 및 가이드북’을 보면 “스포츠의 성장 산업화를 방해하고 있는 스포츠 시설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전례 주의 등에 관해 마인드 체인지를 촉진하는 동시에 지방 공공단체나 스포츠팀 등의 책무, 민간자금 도입을 비롯한 민간 활용의 기본방향 등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통해 스타디움 아레나를 중심으로 한 관민의 새로운 공익 발현 방식을 제시한다”고 돼 있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위한 아레나가 음식과 숙박, 관광 등 주변 산업으로 경제적 파급효과를 노릴 수 있는 집객시설인 만큼 자자체가 민간 투자를 이끌어낼 경우 적극 활용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 요지다. 일본은 ‘재흥 전략 2016’(2008년 각의 결정)으로 ‘스포츠의 성장 산업화’라는 관민 전략을 세워 스포츠 시장 규모를 2015년 5.5조 엔에서 2025년까지 15조 엔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잡았다. 지자체가 소유하면서 시설 계획 단계부터 정비·운영·관리까지 공공 주도로 이뤄지던 것을 수익성의 초점을 두고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경기장 시설들이 그러하듯이 향후 가동률이 손익분기점을 넘겨 투자금 회수가 가능할지, 세금을 투자해 재건축/재정비한 시설을 떠맡을 민간 사업자 혹은 해당 경기장 연고지 프로팀이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2021년 4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도쿄올림픽은 개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경기를 치르더라도 무관중에 외국인 관광객도 계획한 만큼 유치할 수도 없어 투자금 회수는 고사하고 앞으로 공연, 스포츠 경기 정상화도 불투명하다. 이런 마당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1도 없는 것 같다.


요코하마 아레나 정문 앞 굿즈줄과 중블 3층 1열 시야각이다.


신주쿠에 위치한 국립경기장国立競技場이 그런 우려가 가장 높다. 도쿄올림픽 메인 경기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2016년부터 재건축에 들어갔는데, 올림픽 후에는 민간에 위탁할 예정이었다. 이름도 협찬 기업을 넣어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뫄뫄’로 바꾼다고도 했었다. 원래 요요기 경기장은 본거지 팀을 두지 않고, 원칙적으로는 일본 축구대표팀 경기나 J리그 경기 중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 와세다 대학과 메이지 대학의 럭비 경기(早明戦)용 정도로 사용됐다. 워낙 도심에 있어 소음문제 때문에 이용시간이 제한돼 있는 데다, 상업 용도도 한정적이다 보니 2013년 기준으로, 연간 유지비(약 5억 엔)의 40%가 아라시 공연 대관비일 정도로 공연 비중이 컸다고 한다. 이번에는 올림픽 용도로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도쿄 23구를 본거지로 하는 J리그의 홈구장으로 만들 수도 있어 기존 팀이 홈구장 이전하는 것도 허용할 수 있다 하는데... 접근성은 도쿄 아레나급 공연장 중에서는 최고이기는 하다.


사진은 국립경기장과 상관없는 국립요요기경기장 제1체육관 모습이다. 2016년 한국 활동이 귀해진 본진을 보러간 일본 원정갔던 첫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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