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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lazy Oct 21. 2021

잡 디스크립션 (A.K.A. 잡디)

회사 각 재기


 많은 이들(심지어는 인사팀 조차)이 간과하지만 잡 디스크립션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게 족같이 쓰여있으면 진짜 노답이란 소리와도 같다. ‘족같이 쓰여있다’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만약 당신이 가려는 회사의 잡디가 한 줄로만 쓰여 있다면 (ex. 온라인 마케팅 / 국내 영업 / 경영지원 /처럼 그냥 부서명을 그대로 옮겨 써놓고 끝이라면) 노답 중에서도 상노답인 회사라는 것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인사의 개념이 없는 회사라는 뜻이고 채용에 관련한 회사 내규가 없다는 것이다. 채용 관련 내규가 없다? 회사에 정해진 규칙류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있는 규칙은 출근 시간 정도.. 퇴근 시간은 업종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에 장담 불가능. 만약에 규모가 직원 10명이 넘어가는 회사인데 잡디가 이런 식으로 쓰여 있다? 뽑으려는 부서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0에 수렴한다는 반증이다.


 ”제가 가려는 곳은 직원이 50명인데요? 100명인데요?”



도망쳐..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모이는 사람 숫자가 많을수록 규칙은 늘어나야 한다. 국가를 존속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정 부분 규제하기 위한 법이 있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인간들이 모이면 규칙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개판이 되기 마련. 근데 이 규칙을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


  대표가 “우리는 이 정도면 규칙이 있는 거야!”라고 자위하고 있는 것이거나 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결정권자가 1명도 없다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회사 조직도를 보라. 관리자 직급(차장, 부장, 적게는 과장)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회사에 허리 이상의 직급이 있음에도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관리직에 앉아 있는 그들은 애초에 관리를 할 생각이 없는 인재들을 뽑은 것이거나 대표로 인해 관리에 대한 의지의 싹이 조져진 인간들일 것이다. 조직 관리 없이 회사가 커지고 매출이 팍팍 오르기만을 바란다? 밭에 씨 뿌려놓고 모든 것을 대자연에 맡긴 채 풍년 기우제만 드리고 있는 것과 같다.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가끔 잡초도 뽑아주고, 너무 썩은 것들은 솎아 내고 하는 관리 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기도만 하고 있는 것. 아, 코미디라고요.


 다시 규칙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상 파악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회사 내부의 각 팀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려야 그에 맞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다. 각 팀의 팀장은 자신의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대표도 자기가 관리하는 회사 각 부서에서 맡고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를 대체 왜 하는 거야?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너무 기본적인 내용인데 이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는 회사와 대표들 참... 많다! 특히 회사에서 단 한 번도 실무를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중책을 맡았을 경우 잦게 벌어진다. 근데 한국은 어떻죠?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족경영. 그럼 애초에 실무에 대한 이해도가 0에 수렴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서 고생하지 말고 도망가라.


 니일내일 내일니일 하는 중소기업이라 할지라도 이런 정의는 필요하다. 그래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가는 다음 스텝을 밟을 수가 있다. 스타트업은 그래도 경력직을 팀장 자리에 앉혀서 회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긴 하는데 제조업 쪽의 중소기업은 정말 노답인 것이.. 채용의 시스템이나 인사에 관련된 내규가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회사가 태반이다. 건물의 골조에는 관심이 없고 회반죽으로 쌓던 나무로 얼기설기 쌓던 층수만 높이려 하니 괴랄한 건물이 될 수밖에. 잊지 말자, 아기돼지 삼 형제의 교훈을.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게 봐도 좋을 듯하다. 

사규가 없다=조직 관리가 없다=업무 분장이 없다=잡디가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 발 같은 잡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슬프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렇다. 그리고 구체적이지 않은 잡 디스크립션임에도 "가서 얘기 들어보면 다르겠지!"라는 티업이 맑고 순수한 생각(이라 쓰고 깝깝한 생각으로 읽기) 입사지원서를 내고 입사하는 순간 회사의 잡부가 될 확률이 크다. 


 결국, 잡 디스크립션이라는 건 회사가 뽑으려는 직군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도가 있고 실제 그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볼 수 있는 첫 번째 단추이다. 채용공고는 친구랑 시시덕거리기 위해서 보내는 카톡이 아니다. 한 회사가 공공에 공개하는 문서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문서인 만큼 일목요연해야 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하며 정확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정확한 정보는 채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에 대한 선명한 초상화를 이미 회사가 갖고 있을 때 제시할 수 있다. 어떤 업무 경험이 있고 어떤 프로그램을 다루어 왔으며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대충 허리, 혹은 허리 이상의 직급을 갖고 있는 사람, 이라는 구체적인 그림. 이 정도의 잡 디스크립션도 작성할 능력이 없는 회사라면 사람을 뽑을 생각을 하기 전에 조직 관리에 대한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이 맞다. 사람을 채용할 때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주는 것이 잡 디스크립션이다. 첫인사와 같기 때문이다. 구직활동을 하는 구직자도 선구안이 필요하다. 첫인사를 발같이 해 놓은 회사라면 믿고 거르던가 감안하고 불지옥에 발들인다는 생각으로 마음 단단히 먹고 입사하길 바란다. 근데 그냥 도망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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