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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lazy Nov 19. 2021

업무분장과 업무협조

근데 이제 혈압을 곁들인


 나는 연차로는 10년 차, 만으로는 9년 동안 직장인이었다. 짬에서 오는 바이브로 다들 눈치챘겠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중소기업이었다. 중간중간 소소 기업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었다. 많아봐야 200명 안팎의 직원들이 있는 회사에만 다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내 글을 읽으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다. 아무튼 저 대기업 몰라요.

 각설하고, 많은 중소기업에서 크게 착각하는 것이 바로 오늘 톺아볼 업무분장과 업무협조이다. 업무 분장 소리를 꺼내면 볼드모트를 언급한 것처럼 눈알을 떨며 “우리는 규모가 작으니까 그렇게 명확하게 업무를 나눌 수가 없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곳들이 있다. 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그냥 그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저주가 아니고 진짜 그래요. 그리고 많은 결정권자들과 대표들이 업무분장을 문서상의 분류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거죠?


 업무협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업무분장이 명확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잦게 벌어지는 실수는 업무 분장을 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 조차 부서별로 주어진 과업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상태에서) “뫄뫄 부서 바쁘니까 솨솨 부서 일 좀 도와주세요.”라고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실제 다녔던 제조회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A부서에서는 분기별로 산업단지 쪽에 전단을 뿌려 홍보를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효과성 측정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이번 전단은 신제품 홍보까지 함께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A부서 맞은편에 앉아있던 B부서 팀장이 전단 각각에 프로모션 할인 코드를 붙여 발송해보라는 아이디어를 던졌다. 전단만 보내는 것보다 개봉률도 높을 것이고 전화나 메일로 주문이 들어올 경우 프로모션 코드가 있다고 말할 테니 최종적인 매출도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DM 발송의 효과성을 비용으로 산출할  있을 것이라는 맥락의 아이디어였다.  A부서는 해당 아이디어를 들고 대표를 찾아갔고 대표는 실행하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


업무 협조 마법 카드 발동!

 아이디어를 낸 B부서 팀장에게 프로모션 코드를 인쇄하고, 일일이 전단지에 붙이고, 발송을 처리해야 하는 일감들이 떨어지는 놀라운 일이. 이 모든 일은 대표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A부서 일손이 달리니 B부서가 도와줘라.”


 자, 여기에서 짚어보자. ‘A부서를 도와줘라’의 뜻은 무엇일까. 업무의 책임부서인 A부서를 백업해 B부서가 일손을 거든다는 뜻일 것이다. ‘돕다’의 사전적인 의미가 그러하니까. 그러나 A부서의 생각은 달랐다. A부서의 일이었던 산업단지를 타깃으로 한 홍보 업무는 A부서와 B부서 모두의 일이 됐다.

아, 거 작은 회산데 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니요?

 같이하면 된다.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책임소재이다. B부서는 본인들의 과업 중 하나가 아니었으니 A부서에서 업무 일정을 짜 직접 드라이브해야 한다 생각했고, A부서는 B부서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니 B부서가 대신 진행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즉, 누구도 ‘나의 주요 과업’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 왜? 내 일이 아니니까.

결국 일주일이면 발송까지 끝났을 업무는 두 달이 걸렸다.


 이 회사의 문제는 애초에 업무 분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이슈 하나가 발생하면 하던 업무는 다 홀딩하고 오합지졸처럼 우르르 새로운 이슈에만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끈 것은 대표였다. 두 명이면 될 일에 열 명을 때려박으니 루틴 하게(하지만 꼭 필요한) 돌아가야 하는 업무들은 마비가 되고 엎친데 덮친 격 해결해야 할 이슈는 누구도 책임감을 갖고 리딩 하지 않아 해결이 미뤄지는 일이 빈번했다.


 업무분장은 예쁘라고 책에 붙여둔 알록달록 북마커가 아니다.(북마커 애초의 기능도 ‘예쁘기’는 아니다만) 업무의 종류와 바운더리를 정해 각 부서에 나누고 각 부서별로 회사의 목표에 맞게 부서의 개별 목표와 과업의 중요도를 재정립해야 한다. 다 같이 으쌰 으쌰 열심히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자!라는 말의 의미는 이슈 하나에 우당탕탕 모두가 달라붙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목표로 달려가는 건 맞아, 맞는데..!

 각 부서의 역량을 활용해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생산은 생산의 정확도와 숙련도를 높여서, 영업은 매출을 끌어올릴 효과적인 전략과 액션을 총동원해서, 마케팅은 브랜드 노출과 효과적인 홍보 방안을 제안해서, 인사는 회사의 각 부서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 것으로, 구매와 재경은 효율적인 자금 운용을 통해서 말이다. 이렇듯 전문 분야를 기준으로 나누어진 것이 업무 분장이다. 회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적어도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어린이들 같이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한, 아니 정상적인 회사라면 업무 협조도 탑다운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가 부서에게 요청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요청은 어떻게 해야 한다? 문서로 해야 한다. 구두상으로 협조 요청을 하고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메일로 다시 한번 정리해서 발송하는 것이 국룰임을 기억하자. 업무 협조 요청을 할 때에는 우리가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개괄적인 내용과 함께 당신(혹은 당신네 부서)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을 꼼꼼하게 작성해서 보내야 한다. 그게 예의다.  


 또한 업무협조는 내가 하기 귀찮은 업무를 다른 부서에게 떠넘기기 위해 요청하는 것이 아닌, 중요한 과업이나 오줌 싸러 갈 시간도 없이 바빠서, 혹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고자 할 때에만 요청을 해야 한다. 다들 바쁘다. 쟤가 한가해 보인다고 해서 진짜 한가할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자. 당신도 누군가의 눈에는 한가해 보일 수 있다. 다시 한번 되뇌자.

자기의 일은 스스로하자 우리는 척척척 스스로 사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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