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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없음 Nov 17. 2017

[여행] 덴마크 (1) - 코펜하겐

20160930 : 뉘하운, 크리스티아니아


다시 혼자였다.

여행의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에어비앤비(www.airbnb.com)를 통해 잡은 숙소를 찾아가는 길

낯선 동네였고 길을 몰랐다.


사람들에게 덴마크어로 적힌 주소를 보여줘가며

숙소 근처 역에 겨우 도착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건 나쁜 게 아니야.

 모르는 걸 아는 척 하고 넘어가면 다음에는 더 물어보기 힘들어진다.'


온 몸의 감각을 집중하여

지나가던 사람 중 가장 친절해보이는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여성은 주소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자신을 따라오라 말했다.

그리고 숙소 앞까지 나를 안내했다.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가방을 뒤지며 초콜릿이라도 있는지 살폈다.

'너무 고마운데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나한테 마땅한 게 없네.'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 받은 적이 있어서 그대로 한 것 뿐이야.

 언젠가 너도 이런 일이 생기면 그에게 베풀도록 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건 흡사 영화나 TV에서 나오는 한 장면 아니던가.

이런 멘트를 직접 육성으로 내뱉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그 간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상황과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도 이 멘트를 써먹어봐야겠다, 그래서 상대방을 부끄럽고 간지럽게 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여성은 갔고, 아파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조금 늦는다는 호스트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관광지와 15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마을
마을의 핫플레이스


마을에 하나 있는(것으로 보이는) 카페에는

동네의 모든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실내는 너무 시끄럽고 비좁아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거대한 캐리어와 배낭을 앞에 두고 우아한 척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덜덜 떨었다.


오래된 코인세탁방


세탁을 못한지 오래였다.

캐리어에서 세탁물을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코인세탁기를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설명서가 붙어있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동전을 두 번인가 날리고 나서 허탈하게 앉아있었다.

곧 어떤 할아버지가 오셨다.

동전교환기에서 동전을 수거해가시는 것을 보아 코인세탁방의 주인인 것 같았다.

세탁물을 보이며 '세탁을 좀 하고싶다' 말하니 알아서 척척 해주셨다.


 

마침 호스트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짐을 내려놓고, 빨래한 옷들을 널어놓고 가벼운 몸으로 다시 나왔다.

뉘하운 항구까지는 숙소에서 버스로 6~7정거장 정도의 거리.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숙소로 가야 하나, 계속 걸어야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신용카드가 있는 한 나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카드 값은 한국에 있을 내가 갚을 것이기 때문에

덴마크에 있는 나는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보이는 길을 따라 뉘하운 항구의 끝을 향해 걸었다.



알록달록한 건물 끝에 드러난 바다는 좀 쓸쓸해 보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친구가 추천한 동네에 가보기로 했다.


Christianshavn(크리스티안하븐) 역


이곳은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라는 동네였다.

                                                                                                                                            

68학생 운동의 여운이 남아 있던 1971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던 해군 기지가 폐쇄됐다. 그리고 이 10만 평이 넘는 버려진 부지에 자유를 원하는 젊은이들과 집이 없는 노숙인, 히피, 동성애자, 미혼모 같은 사회 취약계층이 몰려들었다. 당시 진보성향의 매체에서는 '다 같이 8번 버스를 타고 크리스티아나로 모이자!'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단다. 그렇게 탄생한 자치 공동체가 바로 프리타운이라 불리는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다.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자치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은 단 세 개뿐이다. 첫째, 일체의 폭력을 금지한다. 둘째,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금지한다. 셋째, 오토바이와 자동차 금지한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공동체 내에서 어떤 일을 하든 개인의 자유다. 크리스티아니아는 국적과 인종에 관계없이 이주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 열려 있다. 68 학생 운동의 큰 기치였던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는 자유 정신을 투철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코펜하겐에는 '초미니' 국가가 있다 - 한성은(오마이뉴스)


나는 겁쟁이 쫄보라서 이곳의 구석구석을 탐미할 수 없었다.

호기심 가득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없었고

머릿속에서 '위험'이라는 단어가 '노숙인', '히피'와 함께 연관검색어로 떠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나는 저 마을의 유래를 잘 몰랐다.

(알았으면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수줍게 구석구석 돌아다녔을 것을...)


어쨌든 무지한 나는

그저 눈에 띄는 교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Church of Our Saviour (우리 구세주의 교회)


300년이 넘은 이 교회에 관람료를 내면

누구나 저 나선형 계단을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가만히 보면 보인다. 300년 간 첨탑을 올랐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마치 설치미술처럼 버려져있는 천사 동상들(...)  구원을 바라는가
마지막에는 가파른 계단을 (거의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계단 끝에 서면 바람이 휙 들어온다.

숨을 몰아쉬니 폐에 찬 공기가 가득 찬다.


그리고 드러난 풍경




10월의 어느 날

불쑥 여행을 떠난 내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을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거다.




내가 술을 마실 줄 안다면 한 잔 했을텐데...!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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