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가연구개발 체계로의 도약이 필요한 이유

국가 R&D 시스템의 품격 향상(Quality Improvement)

by 몰라

국가 R&D 체계가 새롭게 도약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이론’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거시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제성장이론에 따르면 한 국가의 경제성장은 생산함수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 생산함수는 Y = A f(K, L)로 표현되며, 생산량(Y)은 투입자본(K)과 투입 노동(L)에 의존한다. 즉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량은 증가한다. 그런데 그 생산량의 증가폭이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이 증가할수록 줄어든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수확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 법칙에 따르면 경제성장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나라에 대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생산함수에서 그 크기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있는데, 이를 함수에 곱해지는 A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A는 그 나라의 퀄리티(quality)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한 나라의 퀄리티는 그 나라의 기술혁신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그 이외에도 그 나라의 국가사회 시스템 및 문화 등과도 관련이

있다. 즉 단순히 한 나라의 기술혁신에 의해서만 그 나라의 절대적인 경제성장 폭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에도 한 국가의 시스템과 문화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술 혁신에 의하여 그 나라의 시스템과 문화 수준도 함께 향상될 수 있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은 그 국가의 퀄리티 수준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같이 자본 및 노동 집약적 산업 구조를 가진 나라의 경우에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큰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의 과거 경제성장 과정을 되돌아보면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다가 다시 도약하는 시점에서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건들로는 자동차의 개발, 컴퓨터의 발명, 인터넷과 월드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의 출현, 스마트폰의 개발 등의 기술 혁신들을 들 수 있지만, 그 외에도 포드의 대량생산체제, 케인즈 경제, 신자유주의 등의 사회 시스템의 혁신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1인당 소득이 2만 불 대에 머물러 있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나 기업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입만을 강요하고 있다. 경제성장이론에 의하면 더 이상 노동시간을 투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들의 노력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의 퀄리티가 한 단계 레벨업(level up)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정부, 사회, 문화, 기술 등 다방면에서 그 수준의 제고가 이루어져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생산함수 곡선


한 나라의 시스템과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연구개발 시스템의 퀄리티를 제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연구개발을 위한 시스템인 R&D 체계의 발전 과정은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출연연 연구기관의 고유임무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기관 고유사업’ 단계이며, 두 번째는 연구개발과제를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직접 수주하여 성과를 창출해내는 ‘PBS’ 단계이다. 두 단계 모두 장단점이 있다.

기관 고유사업 단계에서는 정부에서 국가 출연연구원에게 각 기관의 고유임무에 맞는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원천적으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었으며, 해당 과제에 여러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함께 지식을 공유하고 협력하여 연구결과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쉽게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이한 연구 자세로 연구를 방만하게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이와 같은 기관 고유사업 체계 하에서의 부정적인 면을 개선하고 연구자들 간의 경쟁 분위기를 고취하고자 1996년에 정부에서는 프로젝트 중심 체계(Project-Based System, PBS)를 도입하였다. PBS 제도 하에서는 좋은 성과를 낸 조직이나 팀에게는 인센티브를 나누어주고,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조직이나 팀에게는 벌칙이 주어지게 되었다. 당근과 채찍으로써 PBS 제도가 활용됨에 따라 성과를 제고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은 있었으나,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게 되어 조직 또는 팀들 간뿐만 아니라 조직 및 팀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공유와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었다.

기관 고유사업 제도가 정이라면, PBS 제도가 반으로서 나타나게 되었지만, 20년 이상이 지난 현시점에서 PBS 제도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양극단에 있던 제도의 긍정적인 면은 함께 살리고, 부정적인 면은 지양할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제도인 합을 도출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를 생각해봐야 할 때다. 우리의 머릿속에 어떠한 지식이 들어오고 그다음 다른 지식이 들어온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두 지식 간의 합성(synthesis)이 일어나 새로운 지혜가 생기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체제 하에서도 이와 같은 전식 득지(轉識得智) 과정을 통한 시스템의 퀄리티 제고가 있어야 시스템의 존속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