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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동네 05

독수리 오형제와 하얀 대문집 아이

by 임쓸모

어쨌거나 민구와 나는 좋으나 싫으나 함께 놀았다.

그골목에서 대장은 민구였고 난 유일한 여자 아이.

독수리 5형제를 구성하려면 민구는 내가 싫어도 나와 놀아야했다.

1호는 민구 2호는 영진 3호는 인보 4호는 나 5호는 아쉽게 없었다. 우리 넷은 민구를 제외하고 동갑내기. 얼마없는 팀원으로 독수리 오형제를 구성하려니 민구는 내가 미워도 내가 필요했다.


영진이는 국민학교 4학년 형아가 있었고 인보 역시 삼형제의 막내였다. 날렵하게 생긴 영진이는 정말 2호처럼 보였고 곰돌이 푸우 같은 인상의 인보는 누가봐도 3호처럼 보였다. 4호는 뭐...여자는 나 하나밖에 없는 걸 어쩌겠는가.미모따위는 잠시 접어둬야지.


그리하여 독수리 4형제는 골목 구석구석을 날아다니며 놀았다. 비탈길에서 바퀴달린 플라스틱말을 타고 출동도 하고 보자기를 하나씩 두르고 계단난간에서 뛰어내리며 훈련했다.


인형놀이나 소꿉놀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꾹 참았다. 그런 여자 놀이를 하자고 하면 내쳐질까봐 꾹 참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동네에 새로 이사온 그집 아이는 나와같은 여자 아이였다. 칙칙한 남색문을 하얀색으로 페인트칠한 그집 아이는 나처럼 바가지머리도 아니고 예쁜 원피스에 긴머리를 단정히 묶고 밖을 나올때면 항상 엄마손을 잡고 나왔다가 엄마손을 잡고 들어갔다.


민구는 이제 나보고 5호를 하란다. 하얀대문집 아이가 4호를 할거라고...


하지만 문제는 하얀대문집 아이는 도통 밖에 나와 놀지 않는다는 거였다. 민구는 나보고 하얀대문집에 가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한다. 쑥쓰럽고 떨리지만 말을 안들으면 안 놀아줄테니 일단 하얀 대문집 앞에 섰다. 아..하지만 아뿔사...나는 하얀대문집 아이의 이름도 모른다. 보통 같이놀자고 할때는 그집 대문에 가서

"OO아~! 노~올~자!"라는 노래도 아니고 구호도 아닌것을 외치는게 이 바닥의 인지상정이거늘...난 그 아이의 이름도 모르는데...큰일이다.


하얀대문집 앞에 얼어붙은 듯 서서 난처해하고 있던 나는 용기를 내어 문을 밀어 보았다. 놀랍게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그집 마당이 보였고 장미나무 아래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그네가 보였다. 마주 앉을 수 있게 된 바구니 형태의 그네. 텔레비젼에서나 볼 수 있는 그네가 마당에 있었다. 그리고 그네에는 그 아이가 앉아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야, 너 이름 뭐야?" 내가 물어 보았다.

"나? 혜진이."그 아이가 대답했다.


"혜진아~ 노~올~자!" 나는 꽤 정성을 기울여 정식으로 놀이를 신청했다.

그 아이가 어째야할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갑자기 그 아이의 엄마가 나타났다.

"혜진이는 못 논다. 가서 니들끼리 놀아."

그리고 서둘러 문은 닫혀졌다.


내가 섭섭했었던가? 슬펐던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민구한테는 그 아이 이름은 혜진이고 엄마가 못놀게 해서 못나왔다고 보고를 하고 골목한쪽 귀퉁이에 앉았다.


하얀그네와 하얀얼굴의 혜진이를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예쁜 인형을 문방구 진열대에서 본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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