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성실한 히피들 그리고 소소한 나의 모험

by 임쓸모

오늘 아침 9시 10분전까지도 나는 이 영화의 존재도 몰랐다.

미나리 관련 영상을 보다가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의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주인공이라 정말 즉흥적으로 보러가게 되었다.

예매도 없이 얼마전 남편 회사에서 생일선물용으로 지급된 문화상품권을 꺼내들고 가장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했다.


얼마만의 영화관인지...2019년 10월인지 11월인지 정확치 않지만 압구정에서 <삽질>이라는 영화를 본 후로 처음이었다. (그때 전직 대통령얼굴을 너무 오랜만에 너무 큰 화면으로 보다가 구역질이 나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10시 55분 영화를 50분에 표를 끊어 들어 갔는데 상영관에 아무도 없어 당황했다.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광고가 끝나고 본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서너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만천원에 영화관 전세내는 상황은 면했다.


처음에 나는 그녀(펀)가 남편을 잃은 슬픔과 깨진 일상 속에 방황하는것이라 생각하며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복잡한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녀의 언니의 대사에서 펀은 애초에 방랑벽이 있으며 남편을 만나 외진 곳에 살면서 잠시 정착했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시즌에 아마존에서 단기알바를 하고 거기서 만난 린다에게서 "고무바퀴 위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엔 망설이던 그녀도 그곳의 캠프에 합류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노매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대의식을 가지게 된다.


금융계에서 일하던 스왱키는 동료의 죽음을 보며 삶의 의미를 찾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녀 또한 시한부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팔을 다친 스왱키는 도움을 주는 펀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듯 말하는데 그녀의 사회적 지위같은 것이 은연중에 보이는 대목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행 중에 보고 느낀 것을 말하며 자신은 알래스카에 가서 삶을 마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절벽위에 수 많은 제비집들과 제비들의 날개짓, 제비새끼가 깨고 나온 알껍질들에 대해.

어린아이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의 스왱키. 펀은 그녀에게 자신이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 겪었던 특별한 망설임에 대해 고백한다. 그녀가 그가 편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던 게 아닌지에 대해. 스왱키는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아는 한 너는 틀림없이 최선을 다 했을거야. 그거면 된거야."

스왱키는 자신의 물건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나눔하고 홀가분해진 모습으로 길을 떠난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면서 불 속에 돌을 던져주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바퀴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리더격인 밥은 자본은 노동자를 가축처럼 다룬다고 비난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생을 부려 먹고 쓸모 없어지면 황야로 내몬다고. 하지만 '바퀴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자본이 돌아가는 찌꺼기 같은 일을 찾아 이 도시 저도시를 옮겨 다니며 산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크리스마스에는 아마존에서 여름에는 테마파크에서 가을에는 농장에서.. 한없이 자유로울것 같지만 그들도 먹고 살아야하기에 일거리를 찾아서 일이 많은 곳의 시즌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60년대의 젊었던 히피들과 이들의 차이점은 성실한 늙은 방랑자라는 점이다. 그들은 작업복, 유니폼, 앞치마를 갈아 입는 방랑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노동 사이 사이에 자연을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랜드캐넌과 깊은 계곡, 숲속, 폭풍우가 치는 바닷가, 속절없이 아름다운 사막의 노을 같은 것들. 불편한 삶이지만 하루 하루를 꼭꼭 씹어 쓴맛 단맛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


함께 알바를 하던 린다가 떠나고 안면이 있던 데이비드와 가까워진 펀. 데이비드가 손자가 생기면서 아들의 권유로 좋은 집에 정착하면서 펀도 가정의 온기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뿐. 함께 하자는 데이비드의 청을 고민하던 펀이 새벽에 말없이 다시 길을 떠난다.


캠핑장에서 만난 어느 노인이 말한다.

"당신은 노매드군요.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고 있구요. 결혼반지가 둥근 이유는 끝이 없기 때문이죠.끝없는 사랑을 의미 하는거예요."


스왱키의 죽음으로 불속에 돌을 던지기 위해 모인 '바퀴위에서 사는 사람들'. 리더인 밥과의 대화에서 펀은 자신의 남은 생은 기억하기 위해 살고 있음을 말한다. 그가 사랑했던 남편은 고아였고 그들 사이에 자식도 없었으므로 그가 죽은 후, 세상에 그의 존재가 남은 것 같지 않아서 그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이 가득한 곳을 떠날 수가 없다고.

그러자 밥도 5년전 자살로 잃은 아들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가 '바퀴위에서 사는 사람들'을 돕는 이유가 그게 죽은 자식과 자기 자신을 돕는 일이라 믿는다며.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라 '바이'라는 말 대신 '또 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펀은 아마존의 시즌에 다시 남편의 도시 엠파이어로 돌아왔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아마도 그녀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럴 것 같다. 그녀는 그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므로. 그리고 매번 다시 떠날 것이다. 그녀는 노매드이므로..



+여행이나 방랑과는 먼~먼~~ 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2년만의 영화관람..그거슨 나름의 모험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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