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

친절함이란 무엇인가.

by 임쓸모

처음 독서 토론 강사 양성 과정 수업을 들었을 때

소개하고 싶은 동화책을 광고해보라는 과제에 제일 먼저 생각난 책이 주디스 커의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였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했는데 마지막에 단란한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가는 장면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호랑이가 손님으로 와서 집안의 모든 음식을 먹어치우는 반복 장면도 재밌었고 마지막에 천연덕스러운 호랑이의 표정도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을 소개하는 카피는,


"저녁밥 하기 싫은 날엔 호랑이를 부르세요~!"였다.

(당시엔 정말 밥하기가 싫었나보다...ㅠㅠ)


그런데 당시 강사님은 이야기 끝에

"왜 하필 호랑이였을까요?" 라고 질문하셨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찬찬히 생각해봤다.

간식을 먹으러 온 것은 왜 호랑이였을까?


일단 작가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2차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살기 위해 떠나 낯선 곳에 살게 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또한 호랑이는 원래 영국에 사는 동물이 아니다. 시베리아나 인도의 벵골이 떠오른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그리고 당시 해외뉴스에서는 난민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3살 배기 아이가 해변에 엎드린 채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이야기로 세계가 술렁이고 있었고 나 또한 그 모습에 마음이 먹먹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난민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시끄러웠다.


그 3가지 정보로 내 나름의 퍼즐이 맞춰졌다.


주디스 커는 "친절함"에 대해 말하고 있구나. 친절함이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태도 일것이다. 호랑이처럼 낯설고 그래서 무서운 존재에게도 우리는 친절할 수 있다. 비록 하루저녁 외식을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뿐이다. 죽을 정도의 피해는 아니다. 하지만 배고픈 호랑이는 굶어 죽을 수도 있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종내는 포악해질 수도 있다. 배고픈 호랑이를 대접하는 친절함은 그로 인해 나에게 기쁨이 되고 나아가서는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배고픈 호랑이는 잠시의 안식을 원할 뿐. 다시 손 내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호랑이를 위해 호랑이 먹이만큼 마음의 준비를 해두면 좋겠다.


그녀가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영국의 사람들은 친절했을까? 궁금해진다.


얼마전 읽은 <이타적 유전자>에서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낯선 것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낯선 것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대비하면서 집단 내의 단합력을 만들어낸다.

이것만 보면 차별은 인간이 동물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와 다른 타인도 동등한 생명체이고 삶에 대해 공동의 권리를 가진다는 분별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권리가 깨어진 대상에게 느끼는 슬픈 감정을 고유하는 공감능력 또한 그렇다.


낯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내 안에 인간다운 친절함을 남겨둘 것...


그것이 이 책에서 배운 것이다.


+ 주디스 커의 <카틴카의 특별한 꼬리>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아요. 이 동화에서도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잘 표현했고 귀여운 할머니 캐릭터도 참 좋아요.


+몇 달 전에 어느 유튜브영상에서 난민운동에 동참하는 정우성 배우님을 언급하는 연예뉴스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서늘했던 적이 있어요. 기자의 말을 빌어쓰면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 요즘들어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참 이해가 안 간다. 약간 정신나간(?)것 같다" 라는 취지의 발언. 인권의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기자의 말에 바로 구독 취소를 누르면서 이 사람이 인식하는 난민에 관한 태도가 일반적인 것일까 더럭 겁이 났습니다. 난민을 수용하면 범죄가 늘어날 것이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등등의 이야기..

문제가 생길 수 있죠.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지는 동지, 연대의식... 그것이 훗날 더 큰 친절함으로 돌아올 것을 믿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