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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과 조금은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3개의 복음서를 공통된 관점으로서의 복음, 공관복음이라 하고 요한복음은 약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제4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


공관복음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쓰여진 반면 요한복음은 가장 마지막에 쓰여졌습니다. 공관복음이 쓰여질 때에는 아직 예수님의 제자들도 많이 살아있고, 그분의 기적과 부활과 권능에 대해 증언해줄 사람들이 많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그 '기적을 행하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해 사람들마다 정립이 안되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그분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예언된 새로운 왕국의 왕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마태복음을 썼습니다.


마가는 큰 박해 가운데 핍박받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믿는 예수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시며, 귀신도 두려워 떠는 권능의 메시아라, 기적을 행하는 구세주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마가복음을 썼습니다. 


누가는 이방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보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이와 조금은 다릅니다. 

이미 세 복음서를 통해 그리고 여러 사도들의 가르침, 특히 바울의 서신등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은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반면, 그분의 생애를 직접 증거해줄 증인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난 시대였죠. 

그래서 오히려 이런 문서들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이단들과 거짓 교사들이 많아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교회 안에서 퍼져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바르게 정립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거나 "선지자"를 넘어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썼습니다. 


요한복음만의 특징


그래서 요한은 복음서에서 7번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또한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7번의 선언을 통해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 7명의 고백을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강하게 증거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는 주로 변방(갈릴리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이 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계속 진행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셔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돌아가시는 걸로 나오죠. 즉,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한번만 가십니다. 그래서 공관복음만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는 일년동안 이뤄진 것처럼 보여집니다.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3년에 걸쳐 유월절마다 방문을 하시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 동안 이뤄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는 사역"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축사 사역이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더 두드러지는데요. 


이에 대해, '네 이름이 무엇이냐'(이레서원, 전원희 목사 저)의 책에 설명이 되어있는데,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한 지역에는 사탄과 귀신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기에 예수님의 이름의 권능으로 이들을 쫓아내는 것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초기에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기도 했고, 또 이는 현재도 선교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지요. 

반면, 요한복음이 기록되고 전파되는 시점에는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있고, 교회를 비롯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공동체가 자리잡은 시기였기 때문에 귀신의 역사가 그렇게 자주 나오지 못한다고 파악합니다.


이미 각 예배에서, 신자들의 기도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는 지역에는 더이상 귀신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지는 못한다는 해석을 내어놓는데요. 이 또한 일리가 있는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새 복음서를 다시 읽고 있는데요. 매번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는 생각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복음서를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되실 때에 복음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여러분에게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브런치는 스톤위키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지난 글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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