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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믿는 믿음의 시작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최초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그 믿음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을 지금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뤄지는 작은 가문의 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어떤 체계화된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아브라함이 체험한 일종의 "간증" 정도의 수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여호와 신앙은 그냥 몇가지 전설같은 이야기들로 이뤄졌을 것입니다.

글자가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그것을 기록할 파피루스 종이나 양피지 같은 것은 더욱 없었을 시기였기에, 그런 가르침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와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신앙의 전수는 온전하게 전해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달아나다 루스 광야에서 돌배게를 베고 잠들던 그때서야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환상속에 나타나셨는데, 

그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바로 자신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창 28:12~13)


이후,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되고, 가나안지역에는 대기근이 임합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건너간 야곱의 가문은 대략 70명 남짓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당시 세계 최고 선진국이었던 애굽에서의 삶 속에서 노예로 지내면서 

여호와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신앙을 거의 잃어버리기도 했죠. 


이집트 왕궁에서 도망쳐 광야에서 목동생활을 하던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을 다시 한번 소개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출 3:5~6)


그런데 더 황당하고 놀라운 사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애굽의 노예 민족이었던 히브리인들이 

이렇게 미약한 신앙의 유산을 가지고 출애굽을 했는데,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에는 갑자기 기존에는 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독특하고 

형이상학적인 관념체계를 갖춘 종교를 가진 민족으로 탈바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는 이런 신앙관과 유사한 신앙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대 민족의 신들은 강력하긴 했지만 여러가지 제약도 있고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다치거나 죽기도 하는 그런 인간적인 신들이었습니다.

또, 그들이 인간에 대해 가진 생각도 매우 저급하였기에 성적으로 방탕하거나 

인신제사를 요구하거나 하는 난폭하고 부도덕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신앙은 어떻습니까? 갑자기 창세기 1장 부터 선언을 하면서 시작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당시 주변민족이 신으로 섬겼던 해와 달과 별 조차 만들었다는 하나님,

또한 윤리적으로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등장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위 '매우 기뻐'하셨고, 사람을 만들자마자 제일 먼저 같이 '안식'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여호와 신앙이라는 것도 결국 주변 종교들을 짜집기해서 만들어낸 모조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당시 시대의 이런 여호와 신앙은 그 시기의 주변 종교를 참조해서는 절대로 나올수가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호와 신앙은 말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계시하심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가르침이라는 것이 더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브런치는 스톤위키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지난 글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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