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푸드 제너레이션
“자 옮기자 하나 둘 셋! 잘했어! 이게 왜 이렇게 무겁냐고? 나는 힘을 하나도 안 줬거든!”
-스피로 (첫 스승)-
그는 토마토가 담긴 박스를 통째로 워크인 냉장고에서 꺼내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는 나보고 이리오라고 손짓을 하였고 박스 안을 잘 들여다보게 하였다.
“자 여기에 색이 다 다른 토마토가 있어, 언뜻 봐도 5가지 색상 정도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청 토마토, 얼룩무늬 토마토, 연한 색의 토마토, 붉은 토마토, 그리고 완전히 익은 토마토.’
상자 안에서 꺼내어 보여준 5가지 다른 토마토는 경계가 확실해 보이는 청 토마토와 얼룩무늬 토마토 그리고 완전히 익은 토마토는 구분이 쉬웠지만 연한 색, 붉은색은 언뜻 보기에는 구분이 어려웠다.
‘이 세 가지는 확실하게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반짝이는 눈으로 재료의 궁금증을 물어보는 어린 제자와 그걸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경력 있는 셰프, 외국에서 만났지만 요리라는 주제로 인종, 언어를 뛰어넘어 교감을 하게 되고, 우리는 진정한 사제지간으로 거듭날 수 있긴 개뿔.
‘이 멍청한 빵 쪼가리야 지금 이거 구분하는 데에도 이렇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는데 뭐? 이게 구분이 안돼? 오늘 눈은 너보다 늦게 출근하니? 연한 거 빨간 거 구분을 못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급작스러운 급발진에 놀란 나는 어버버 거리면서 말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 얼굴에 토마토를 비벼버릴 것처럼 이게 연한 거고 이게 빨간 거야! 를 외치며 휙휙 토마토를 보여주고는 볼에다가 토마토를 집어던졌다.
탱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토마토는 볼 안에서 터져버렸고 그는 이글 거리는 눈으로 소리쳤다.
‘빨리 골라와! 할 일 많아!’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상자를 열어 검붉은 것보다 살짝 연한 토마토를 모조리 골라 볼에 담았다.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내가 다시 골라온 토마토가 성이 차지 않았는지 몇 개를 다시 가져가 바꿔 왔다.
그는 토마토 한 개를 씻은 다음 꼭지를 따고 반을 가르고 다시 반을 갈라 웻지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토마토의 씨 부분을 칼로 깔끔하게 저며내었다.
‘씨앗은 미네스트로네 수프 만들 때 쓰거나 너무 많이 나오면 그냥 버릴 거야!’
그리고는 깔끔하게 저며진 토마토를 채를 썰고 채를 다져 작지만 깔끔한 작은 정 사각형 모양으로 다져놓았다.
“작은 다이스 이 정도가 씹혔을 때 무르지 않고 잘 섞여!”
그는 다져진 코마토를 다시 작은 볼에 담았고, 양파를 한 개 집어 반으로 가르고 칼 집을 위아래로 내어 벌집 모양을 만들었다.
“양파는 토마토보다 작게! 양파의 식감이 자잘하면서도 토마토가 주를 이루게 해줘야 해!”
벌집이 난 양파를 그대로 썰어내니 벌집 모양채로 우수수 양파가 썰려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칼로 다져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거 다 해놔!
도마 밑으로 칼을 끼워 놓고는 그는 끓고 있는 솥단지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 공간 안에는 다져야 할 재료들과 이미 다져 저버린 내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토마토를 모두 반으로 가른 다음 씨를 빼고 채를 치고 그다음 그가 가르쳐 준대로 작은 다이스 모양으로 썰었다.
그깟 토마토를 썰어가는 데에도 등골에서는 땀이 나고 요령 없이 쥐고 있는 식칼은 뻐근해져만 갔다.
정말 20번이 넘게 그가 썰어둔 토마토와 대조해가며 썰고 확인하고를 반복하였다. 토마토만 잘랐을 뿐인데 검지에 물집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토마토는 모두 썰었고 양파를 썰기 시작하였다.
알려준 대로 가로 새로 칼집을 내어 그대로 다시 썰었다.
서툰 솜씨 때문에 양파의 모양은 뒤죽박죽에 크기도 달라 보였다. 이대로 가져가면 또 욕을 먹을 것 같아 나름 썰어둔 양파를 한번 다져보고 크기를 확인하고 다시 다지기를 반복하였다.
낮 선공 간에서 처음 잡아보는 조리도구와 화가 난 그의 모습 때문인지 평소보다 몸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결과물을 보니 이게 잘 된 건지 아닌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한번 확인받아보고 고칠 부분을 고쳐보려고 그 아저씨를 찾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몸을 돌리기도 전에 나는 그가 오븐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했어?’
나는 최대한 비굴한 함박웃음을 보이며 그에게 결과물이 담긴 그릇을 보여 주었다. 그는 낚아채듯 볼을 가져갔고 한쪽으로 재료들을 비껴 새우더니 고여있는 토마토와 양파즙을 티 스푼으로 떠 보이며 말하였다.
‘양파와 토마토 즙이 나와버렸군! 이렇게 되면 금방 삭아버리기 쉬워!’
그가 볼을 흔들자 고여있던 채즙이 조명에 반사되어 찰랑 거리였다.
‘니 손이 아주 개똥 손이라 칼질을 아주 투박한 거 같은데.’
심드렁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 앞에서 겨우 토마토 열댓 개 손질하며 부어오른 내 검지를 매만졌다.
나는 이쪽에는 맞지 않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공부만 할 줄 알고 살았지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다는 부끄러움과 어리숙함에 대한 쪽팔림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는 하던 말을 멈추고는 소금 약간 과 함께 올리브유 3큰술을 볼에 넣었다. 그리고 테이블 냉장고에서 노란 통을 꺼내더니 스쿱으로 노란 통 속에 바질 페스토를 두 번 반 퍼올려 볼에 담았다. 그리고는 아까 가지고 온 레몬을 잘라 손으로 짜 넣었고 마늘 티스푼을 볼에 탱! 소리나에 부딪혀 넣었다. 그리고 스쿱으로 휙휙 저으며 재료들이 모두 잘 섞이도록 휘져었다.
순식간에 완성된 브루쉐타는 빨간색 보라색 녹색이 어우러진 싱그러운 들판에 빨간 꽃이 피어있는 듯했다.
그 는 솜씨 좋게 포카차 빵 한 덩이의 귀퉁이를 잘라 페타 치즈를 바른 다음 그 위에 오늘 만든 신선한 브루쉐타를 올려 나에게 권하였다.
나는 받은 빵을 단숨에 입어 넣고 씹었다,
아삭 거리는 토마토와 양파들 사이로 바질의 신선향 향이 풍부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치고 들어오는 페타 치즈의 쿰쿰하지만 입맛을 확 당기는 적당한 산도가 혀를 코팅하였고 그 위에 고소한 견과의 맛과 함께 토마토의 즙이 계속해서 고소 새콤함을 무한 반복해주었다, 단조롭지 않고 가볍게 조화로운 맛은 입안에서 식욕을 끌어당겨 주었다.
‘바로 먹는 브르쉐타는 맛이 덜해, 이틀 정도 지나면 모든 소스를 빨아드린 토마토와 양파가 진짜 맛을 낼 거야’
꽃 봉오 리르 터트리는 제스처를 입 가까이에서 취하며 그가 말하였다.
‘똥 손이 아니면 내가 만들어둔 기준에 끝까지 맞추려고 느린 칼질로 따라오려고 한 거 같군!.’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꺾었다.
‘빨라지면 쓸모가 있을 거 같아 빵 조가 리, 오늘 배운 거 내일 까먹지 마.’
그는 두 개의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던져주면서 거기에 오늘 만든 브르쉐타를 담으라고 하였고 담은 컨테이너 뚜껑 위에 오늘 날짜를 적어두라고 한 다음 워크인 냉장고에 넣어 두라고 하였다.
다음부터 라는 말이 내일을 약속하는 말처럼 들렸다. 당연하지만 = 무심한 말로부터 나는 오늘 겪은 일들을 조금 칭찬해 주는 것 같았다.
그 후 내가 사용한 도구들을 씻고 나서부터는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뒷 주방에 박혀 일하게 되었다.
설거지며 야채 씻기, 소스, 재료 준비등을 하였고 앞 주방의 웅성거림을 들르면서 다른 사람들도 출근했구나라고 생각을 하였다. 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설거지와 떨어져 가는 식재료를 가져다주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가끔 내가 위치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먹지 못하면 원래 일하던 사람들은 답답했는지 자기가 쳐들어와함 움큼 원하는 물건을 가져가기도 하였다.
어느덧 가게 안의 소란스러움은 고요함으로 변하였다. 나는 크림이 눌어붙은 프라이팬을 닦으면서 기물과 주방의 구조를 머리에 담으려고 애썼다.
잦아든 홀의 적막이 얼마나 지났을까?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야기 소리가 다시 한번 들리기 시작하였다. 끼익 소리와 함께 쭈그려 앉아 기물을 확인하던 나를 향해 한 안경을 쓴 여자 한 명이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 오늘 처음 온 사람이야? 반가워!’
애교가 넘치고 약간 뒤를 끝는듯한 억양을 지닌 갈색 머리의 그 여자는 웃음을 띄우며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오늘 사람에게서 본 첫 미소였다.
‘안녕 오늘 처음으로 일하게 되었어.’
‘어제 이야기는 들었어~! 반가워 이제 앞치마 벗을 시간이 된 거 같은데~! 즐거운 저녁 보내!”
말끝 나기 무섭게 그녀는 자기 파트 준비를 하러 서둘러 사라졌다.
나도 음식물과 땀으로 푹 절여진 앞치마를 벗고 뒷 주방 문을 열어 밖으로 향하였다.
밖에는 직원으로 생각되는 3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내가 닦아놓은 포크들을 다시 한번 리넨 천으로 닦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턱을 한번 쓱 들며 인사하였고, 나도 같이 인사하였다.
오늘 하루 지친 몸을 카운터 쪽으로 향하였다. 카운터에는 짐은 없었고 나를 가르치던 아저씨가 테이블에 엉덩이만 걸치고 머그컵에 담긴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오늘 어때 빵 쪼가리, 그래도 뭔가 바둥거리긴 하던데?”
그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면서 거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처절하게 설거지 하는 내 모습을 따라 하며 낄낄거렸다.
‘내일도 같은 시간이야 빵 쪼가리,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쁜 날이 되길 바라.’
‘네 물론이죠, 저랑 일하는 것을 몸서리치게 만들어 드릴게요.’
지쳐서 그랬는지 아니면 끝났다는 안도감인지 평소에 쓰지 않는 말투로 털레털레 말대답을 하였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꼬맹아, 자 이제 천국으로 돌아가!’
내일 봐요!라는 말을 남기며 나는 온몸에서 음식 쩐내와 땀 냄새를 풍기며 지친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시간 때가 시간 때이다 보니 거리는 조금 한산해 보였고 여유 있는 사람들은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서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나 또한 기분을 내고 싶어 근처 리쿼 샵에 가서 지역맥주인 칼튼과 종이 봉지를 구매하였다.
(호주에서는 술을 리쿼 샵에서만 판다. 편의점, 일반 마트에서는 주류가 판매되지 않고 술을 밖에서 그냥 마시는 것은 불법이나 봉지에 싸서 가리고 숨겨 마시면 넘어간다. 지금은 다르다고? 반박 시 당신 말이 맞다.)
집 근처 플레그 스테프 공원에 벤치에 앉아 맥주를 한 모금 꿀꺽하였다. 매우 차갑진 않았지만 쓴맛과 곡물의 고소함이 지친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며 몸속에서 건배를 외치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마신 수분에 긴장했던 몸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였다.
여유로운 공원의 풍경과 가끔 불어오는 바람의 살랑거림이 이 리 치고 저리 치이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하……이세 끼들’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한번 곱씹어 보며 맥주 한 모금을 다시 한번 들이켰다.
‘한놈도 이름을 안 물어봐요.’
조금 꿍한 마음과 함께 맥주를 모두 비우고 쓰레기 통에 땅~! 소리가 나게 버린 다음 나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나의 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