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인공지능, 초고령화, 그리고 초개인화
—이 세 흐름이 맞물리며, 나의 일상과 사회의 질서가 함께 바뀌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언어를 대신 만들고, 기계는 기억과 판단의 경계를 넘어 의사결정을 학습한다.
생애의 길이는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한 시간을 품으며, 고령의 삶은 새로운 사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초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나는 전보다 꽤 자유롭다지만, 그만큼 더 분해되어 고립되고 있다.
관계는 데이터로 쪼개지고, 소속보다 ‘나’의 취향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 간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고단하게 건너온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20여 년 동안 사회와 인간의 변화를 가까이서 연구해 온 연구자로서,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흐름을 오래 지켜보며 하나의 공통된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기술, 인구, 개인의 세계가 동시에 균열을 일으키며 서로를 재편하고 있는데도
이를 설명할 말조차 그다지 마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쓸 수조차 없는 무수한 신조어가 쏟아지는 시대에 또 하나를 보태는 일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변화는 국가와 인종, 세대와 성별을 넘어,
동시대의 모든 인간이 실시간으로 맞닿아 있는 전환이었다.
기존의 언어로는 이 거대한 동시성을 담아낼 수 없었으니
새로운 명명이 있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변화보다 깊고, 혁명보다 복합적이며 무엇보다 인간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변화.
그것이 초변혁사회의 실체이다.
‘초변혁사회’는
초거대 인공지능, 초고령화, 그리고 초개인화로 시작된 변화가 특정 분야나 세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 구조를 통째로 바꿔버리는 과정을 가리킨다.
변화가 속도의 문제였다면, 초변혁은 차원의 문제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대신, 인간의 존재 방식을 다시 정의하게 만들고,
축복이라 여겨지던 장수는 복지, 연금의 논쟁에서 삶의 구조 자체를 재구성해야 할 문제로 바뀌고 있다.
초개인화는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 전체를 새로 설계하게 만드는 중이다.
이러한 축들이 맞물리 만들어내는
초변혁사회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르게 작동하는 사회’이다.
익숙한 질서와 개념이 더 이상 초변혁의 오늘을 설명하지 못하는 그 자리에서,
무탈한 하루, 잘 사는 것, 관계의 온기...
—우리네 삶을 이뤄왔던 작고 단단한 가치들이 다시 물음표 앞에 놓였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언어를 만들고, 알고리즘이 선택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초고령화된 사회에서 노년은 더 이상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초개인화된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