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우리는 18세기 말 증기기관의 발명에서 시작해, 19세기 말 자동차, 20세기 초 컨베이어벨트를 거쳐 전기와 전자기술의 황금시대를 지나왔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기술은 사람(노동자)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우려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사라진 업태, 직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위기와 기회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변화의 한편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생겨났다. 그 기회들은 모든 위기를 상쇄할 만큼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꿈꾸며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21세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속도와 깊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기적이 아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20세기 중반 앨런 튜링의 실험으로 대표되는 튜링 테스트에서부터 이미 인공지능을 향한 연구와 개발은 시작되었다. 다만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하다가, 2018년 이후 생성형 AI, 즉 언어를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그 전환점은 다름 아닌 ChatGPT다. 비영리의 외피를 두른 위험할 만큼 강력한 기업, ‘오픈AI’가 내놓은 ChatGPT의 핵심은 언어, 바로 대화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나의 질문과 필요를 자연스러운 말로 건네면, 척척 대답해주는 존재. 이보다 더 매력적인 기술이 있을까?
GPT를 필두로 등장한 AI 도구들이 초기에는 ‘거짓말’이나 ‘환각’ 현상을 이유로 반짝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불과 1~2년 만에 그 우려는 사라졌다.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인간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둘러싼 거대한 '추앙', 그리고 동시에 ‘두려움’이다.
AI는 세익스피어부터 한강 작가까지 부럽지 않은 글을 쓰고, 베토벤이나 고흐, 아니 BTS의 감성을 흉내내는 예술까지 가능하게 한다. 그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일들이 이제는 대화 몇 줄로 구현된다. ‘창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논쟁은 여전하지만, 이미 AI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세계의 언어가 통하고, 글과 노래가 동시에 태어나는 시대 —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는 기술, 이제 ‘불가능’은 AI 언어에 없다.
초거대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내 말을 들어주는 키다리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한 번 맛본 편리함과 기적은 곧 환호로, 그리고 거의 무조건적인 추앙으로 변했다.
비디오를 켜기는커녕, 리모컨 조작법도 어려워하던 늙은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다가, 늦은 밤 홀로 앉아 종이를 꺼내 ‘1. 비디오 테이프를 넣는다…’라고 꾹꾹 눌러 쓰던 아들이 나오던 영화,「한여름의 크리스마스」의 그 장면을 기억하는가?
사회현상과 삶을 연구하는 나에게 이 장면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 버거운 세대와 계층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오래 기억되어 있다.
기술은 언제나 세대를 나누는 경계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지금의 초거대 AI는 그마저도 설명해줄 자녀나 친구조차 쉽지 않은, 너무 빠르고 복잡한 기술이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거나, 스마트기기를 쓰지 못한다면 이 기적은 손 닿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다.
바로 이것이 가장 두렵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세대부터 2025년생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년의 세기가 한 세상에 공존하는 지금, 누구나 이 기적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AI를 사용하기 위한 구독료ㅡ디지털 월세는 계속 오르고, 필요한 장비와 언어적 이해력은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 된다.
▲눈 앞에 다가온 AI월세의 시대AI 구독료는 20세기시절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사다리 걷어차기" 그 이상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 박태정
이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디지털 언어를, 과연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거의 99%가 영어 기반인 용어 속에서, 한글 표기는 그저 발음기호일 뿐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빈곤층’, ‘취약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소득·학력·연령이라는, 지금까지 세상을 구분해 온 잣대가 무의미해질 만큼, AI의 문턱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소득이 높다고 쉬운 것도, 연령이 낮다고 자동으로 익숙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대한민국에서 1940~50년대에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세대는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지금의 디지털 세상에서는 종종 가장 낯선 세대가 된다.
더 큰 두려움은 ‘그냥 안 쓰면 된다’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I는 이미 세상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AI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일까? 초거대 AI는 더 이상 보조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말벗이자 멘토, 때로는 의사결정도구로 자리 잡았다.
과연 우리는 여전히 이 기술을 ‘명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머지않은 미래, 아니 이미 지금, AI는 세상의 거의 모든 ‘나’를 제어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편리함과 창조성의 상징이 된 초거대 AI,
이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어떻게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우리는 지금 답해야 한다.
우리의 세상과 삶을 재설계하고 있는 초거대 AI의 눈부신 활약에 도취된 지금,
그 환호를 잠시 멈추어 다 함께 생각하고, 염려하고, 숙고하며, 기준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