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효과’는 누군가에 대해 믿고, 기대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이 어느 날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했다. 그가 조각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신의 제단 앞에서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달라.’고 기도한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져 조각상이 진짜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야기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에 쏟아부은 사랑과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처럼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으면 과연 교사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 칭찬의 목적이 대상에게 기쁨을 주어 그런 행위의 반복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칭찬에도, 쾌락 그 자체를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최대의 쾌락을 얻지 못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의미하는 쾌락주의 역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매사에 칭찬할 때 오히려 칭찬의 효과는 감소하는 것 같다.
인간은 목적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육에 임해야 한다. 즉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의 주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칭찬은 자칫 인간이 인간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칭찬받는 처지에서는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짜로 칭찬받을 만한 일만을 크게 칭찬하고 나머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들에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결과를 칭찬하기보다 과정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분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위력이 있다. 어떻게 보면 원기를 잃어 시들 거리는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보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보약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체질에 따라 약재에 따라 똑 약을 달이는 방법에 따라 약을 먹는 방법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지는 것처럼 칭찬 또한 사람에 따라 성격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칭찬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칭찬하느냐? 그리고 칭찬의 주체는 ‘나’이므로 ‘나’의 자세부터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일까. 흔히 어려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고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기쁜 마음으로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친구 말이다. 즉 칭찬을 아끼지 않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부터 기꺼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하나,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칭찬에 접목해 보면 자신을 칭찬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칭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하나씩 이룰 때마다 자신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잘 칭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자세를 먼저 가질 때, 올바른 방법으로 적절한 칭찬을, 진심에서 우러나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칭찬이 개인의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할 것이고 사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