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좌하면

by 강석우

“뒤돌아, 아버지의 낡은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하염이 없구나”(이문재, ‘적막강산’)


아버진 온 가족의 삶을 책임지는 든든한 보루이셨습니다. 어느 날 앞서 가시는 아버지의 어깨가 구부정해 보였습니다. 여전히 현직에 계셨고 가족의 든든한 가장이셨지만 그렇게 보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어깨가 낡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어깨도 낡아지고 있는 것이고 구부정해 보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쭈글쭈글해” 아들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흰머리가 많아요” 아직 내가 들어야 할 어깨 위의 짐은 버거운데, 보이는 것보다 속은 더 비었고 어깨 힘은 더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촛불은 초가 많이 남아 있든 적게 남아 있든 빛나는 것은 같은데, 사람은 다른가 봅니다. 남은 생이 많을 땐 팔팔하게, 남은 생이 줄어가면 줄어갈수록 빛은 희미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짊어질 수 있는 짐의 양도 줄어들고 속도 헛헛해집니다. 남은 것이 없어져 가면 그만큼 남긴 것이 있어야 하는데, 줄어드는 만큼 내 삶의 족적도 희미해집니다. 아직은 내가 든든한 지킴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생각은 남아 있는데.


문득 아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증조부님보다는 나은 인물이 되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멍했습니다. 집안 어른으로부터 듣기로는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안에서 배출한 뛰어난 본보기적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순간 “그래야지, 아무렴 그래야 하고 말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딛고 일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좌하면 네가 우해라가 아닌,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겠다는 선택으로, 눈에 보이는 욕심으로 내가 좋은 곳을 차지하려는 선택이 아니라, 네가 가는 곳이 나의 줄어듦과 작아짐으로 인해 더 좋은 곳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선택이 나의 뒤를 잇는 후손이 잘되는 방법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됐습니다.


증조부님과 조부님이 터 닦고 기름지게 일구어주신 광활한 밭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4)는 말씀이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나는 기름진 밭이 될 테니 너희는 이 밭에 뿌리내리고 울울창창 번성하라’는 마음으로 사셨을 선조들의 마음과 기도를 우리 마음에 새겨 우리 또한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것 이상으로 너희가 사는 세상이 울울창창 번성하도록 기도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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