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대추와 쭈글 한 얼굴

고명

by 강석우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의 앞부분입니다.

말린 대추는 쭈글쭈글합니다. 늙어가는 사람의 얼굴도 쭈글쭈글합니다.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대추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 대추엔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날도 있었지만, 태풍도 천둥도 벼락도 번개도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익은 대추가 맛있듯, 익은 얼굴에도 깊은 풍미가 있습니다. 지난 세월의 험한 시간이 농축되어 잘 익은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대추는 그 자체로도 맛있고 멋도 있지만, 말린 대추는 고명으로도 맛도 있고 멋도 있습니다. 대추가 그렇듯, 우리도 그 자체로 맛을 내는 주연으로 살아온 삶을 뒤로하고, 말린 대추가 고명으로 맛도 멋도 있는 것처럼 조연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실 고명 역할이 조연이지만, 음식의 맛과 멋을 완성하듯, 우리 또한 가족의 삶에 맛과 멋을 더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삶을 살아가는 지금, 쭈글 한 얼굴의 주름 사이에 담긴 농축된 세월의 의미와 풍밀 더하며 살아갈 것을, 그리고 가족을 향한 ‘젖은 눈빛과 떨리는 손’으로 뒤에서 기도로 뒷받침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추도식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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