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by 강석우

당나라의 재상이었던 방관(房琯)이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오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큰 수레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구든 필요할 때 이 수레를 마음대로 쓰시오”라고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 수레를 쓰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귀한 수레를 쓰다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호의가 통하지 않자 답답해진 방관은 결국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라며 그 수레를 불 질러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님도 방관처럼, 아니 그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그러나 우리는 방관의 이웃들처럼 주님께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유는 비슷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이 감히…”라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둘째, 평소엔 제멋대로 살다가 힘들 때만 찾는 것이 뻔뻔하다는 염치 때문입니다. 셋째, “내 짐은 내가 져야지”라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방관은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자, 수레를 없애버렸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모든 핑계와 머뭇거림을 아시면서도, 다가와서 짐을 내려놓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되짚어 보면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습니다. 가진 것을 다 주어서라도 자식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셨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예수님처럼 “내게로 오라”라고 당당히 말씀하지 못하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내가 너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라며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그 애타는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못했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감히 어머니께…”, “평소에 잘 들여다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머니께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우리는 그렇게 효도라는 미명의 부담과 자존심 뒤에 숨어 어머니의 기다림을 지나쳤습니다.

방관은 수레를 부수며 안타까움을 표현했고, 예수님은 끝없는 기다림으로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이제 기다리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머니 대신 표현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형제의 아픔과 마음을 헤아려 다가가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요청하기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유산을 미리 받아 탕진하고 돼지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던 탕자 이야기 알고 계시죠? 그는 ‘아들이 아니라 머슴으로라도 살겠다’라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갔지만, 아버지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머슴이 아니라 아들로 맞아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11~24)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제 우리도 불필요한 생각들은 접어두어야겠습니다. “자격이 없어서”, “무슨 힘이 있다고”, “염치가 없어서”, “미안해서”라는 핑계로 주저하지 않아야겠습니다. 힘들 땐 손 내밀고, 내미는 손을 잡아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방관의 안타까운 심정, 예수님의 기다리시는 심정, 그리고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깊이 헤아려 서로에게 따뜻한 품이 되어주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내게로 오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네게로 갈게”라고도 얘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가 슬쩍 손을 내밀기도 하고, 그 손을 슬쩍 잡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인으로서, 그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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