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제자들의 편지

by 강석우

2019년 2월 28일, 00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을 하며 교단을 떠났습니다. 학생들에게 이것이 나의 마지막 수업임을 강조하며, 마음을 다해 감동적인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참 잘 쉬었습니다. 즐겁고 보람찬 휴식이었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찾아왔습니다.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쉽지 않았고, 아직 뒷바라지해야 할 아들 둘과 일을 그만둔 아내를 생각하니 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부업을 결심했습니다. 사실 퇴직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품어왔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일자리를 찾아 나설 때면 발길은 늘 학교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평생을 학교에서만 보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렇게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00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처음에는 6개월 계약으로 시작했습니다. 명예퇴직 교사는 기간제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예외 조항을 찾아내어 4년이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을 대하는 저의 태도와 성실함을 관리자들께서 좋게 보아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2024년 2월, 저는 다시 한번 ‘진짜 마지막 수업’이라 강조하며 학생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다시 1년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열정이 다시금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예순여섯의 나이로 욕심을 내었고, 00고등학교에서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수능 대비가 필수였기에, 현장을 떠난 지 6년이 된 저에게 고교 수업은 큰 도전이자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농촌 학교이니 학생들이 그리 까다롭지 않을 거라며 위로해 주었지만, 실력 없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금세 간파당한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맡은 ‘고전과 윤리’ 과목은 대상 학생이 단 4명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전교 1등부터 4등까지의 수재들이었습니다. 훗날 졸업식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묘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늘 전전긍긍하며 수업 준비에 매달린 끝에 1년이 흘렀고, 이제 2026년 2월, 정말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학교 측의 권유로 1년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기도 했지만, 아침마다 거울 속 쭈글쭈글해진 제 얼굴을 보며 자문했습니다. "이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계속 서도 괜찮을까?"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며 비로소 ‘이제 그만’이라는 다짐을 굳혔습니다.

종업식과 졸업식 날, 학생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이, 정성 어린 꽃과 선물을 건네는 아이들 덕분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적어도 뒷모습이 부끄러운 선생은 되지 말자'던 다짐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를 원문 그대로 기록해 둡니다.


권00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현입니다. 작년에 선생님을 처음 뵀을 시기만 해도 수능 언제 끝나나 했었는데 제가 벌써 졸업을 하네요! 저에게 2025년은 강석우 선생님을 만난 아주 소중한 한해였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것들, 힘 받은 것이 너무 많아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특히 수능 준비 기간 동안 저희에게 주신 무조건적인 응원들이 너무 큰 힘이 됐었어요!

그 응원들은 제가 앞으로 더 커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선생님께선 마지막 스승 기간을, 저희는 마지막 10대를 함께 보내게 됐었는데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서로의 어떤 마지막을 함께하는 인연이라 더욱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가 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1년 동안 선생님께 많은 지혜를 배운 만큼 사회에 나가서도 많은 지혜를 펼치는 멋진 어른이 되겠습니다.

강석우 선생님 2025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올해 2026년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노00

석우쌤, 저희가 벌써 졸업하는 날이 다가왔어요ㅠㅠ 선생님과 더 수업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어서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그래도 제 고등학교 3년 동안 가장 인생에서 기억에 남고, 인상이 깊었던 수업을 꼽으라면 전 고민도 없이 선생님과 함께했던 고전 윤리 수업을 떠올릴 것 같아요ㅜ-ㅜ...

선생님께서는 저와는 가장 짧게 본 선생님이지만, 제가 가장 크게 정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이세요. 그래서 그런지 헤어짐이 더 아쉽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만큼 선생님께서 저희를 정말 잘 챙겨주시고 예뻐해 주신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2026년 새해에는 더욱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세요!! 정말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저의 고3은 최고의 한 해였습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소정 드림-


장00

안녕하세요 석우쌤! 저 00이에요.

졸업을 앞두고 꼭 선생님께는 편지를 드리고 싶었어요.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해봅니다.

항상 중요한 날마다 좋은 말들. 맛있는 것들 챙겨주셔서 항상 도움이 되고 고맙다는 생각 가지고 있었어요. 수능 날도 선생님께서 주신 호두 먹고 더 잘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해주신 말들은 크게 꾸며진 말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너무 오래 남았습니다. 항상 마음 깊이 저희를 생각하여 해주신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큰 힘이 되었어요.

선생님은 제게 ‘선생님’이기 전에 가장 본받고 싶은 어른이셨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던 건 운이 너무 좋았나 봐요 ㅎㅎ

이제 학교를 떠난다는데 조금은 시원하면서도 섭섭한데 선생님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요. 앞으로 살다 보면 많은 힘든 일이 있겠지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들 다시 새기면서 천천히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선생님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저희 잊으시면 안돼요!! ㅎㅎ

그동안 진심으로 지도해주셔서,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선생님의 하루하루가 선생님처럼 따뜻하고 단단하길 바래요.

이대로 끝나는 인연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종종 기쁜 소식으로 연락드릴게요!!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최고 제자 장00 올림-


유00

강석우 윤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예지입니다. 늘 제 곁에 계실 것만 같았던 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 오신 그날부터 이 학교를 떠나시는 지금까지 늘 변함없는 든든하고 따뜻한 선생님이셨어요. 저를 가장 예뻐해 주셔서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언제나 한결같이 지으시던 미소는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믿어주신 덕분에, 앞으로 더 빛나는 제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10대를 선생님의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 선생님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더 멋진 제자가 되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꼭 기다려주세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강석우 제자 00 올림.


노00

강석우 스승님께

안녕하세요 스승님! 전 선생님의 제자 가연입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5년도 어느덧 저물고 2026년을 맞이했습니다. 올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저의 정말 뜻깊은 일은 강석우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평소에 선생님들을 그저 공부를 가르쳐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공부만을 가르쳐주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보며 본인의 수업에 정말 열정적으로 임하시고 항상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으신 걸 보며 저의 그동안 삶의 태도를 성찰하게 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윤리라는 과목이 책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선생님께서는 저의 많은 것들을 바로 잡아 주시고 성찰하게 하신 저의 스승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덕에 더 열심히, 성실히 노력하는 제가 되었습니다. 정말 저에게 큰 존재이신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서운하고 아쉬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듯이 돌고 돌아 다시 선생님을 뵐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생하셨고 선생님이시라면 어떤 역경이든 잘 헤쳐 나가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만의 소크라테스이신 강석우 선생님! 항상 감사했고 존경합니다.

2026.1.6. 0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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