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 The Two Popes, 2019’을 보고
감독: 페르난도 메일레레스 Fernando Meirelles
배우: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베네딕토 16세), 조나단 프라이스(Jonathan Pryce, 프란치스코), 후안 미누진(Juan Minujin, 젊은 프란치스코)
영화 ‘두 교황’이 주는 메시지를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하나 되어라. 둘째, 교회를 고쳐라. 셋째 내 음성을 들어라.
하나 되어라
둘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어렸을 때부터 확고한 사제로서의 소명을 갖고 있었고 교리와 규례 등 가톨릭의 전통을 굳게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이고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하나님의 신호가 없자 청혼을 하러 가던 중 신호를 받고 사제가 됐으며 교리와 규례보다는 인간 그중에서 빈민층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진보주의자다.
그리고 결혼한 신부, 성체를 주는 대상에 대한 문제, 교회의 역할, 변하는 주님과 변하지 않는 주님, 이혼 피임 동성애에 대한 단죄, 신부들의 성추행에 대한 처리, 심지어 식사하는 방식, 축구에 대한 생각까지도 판이하게 다르다.
교회와 세속을 구분하는 담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아주 강한 담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자비라고 하는 다이너마이트로 담을 폭파시켜야 한다고 대립하며 호르헤의 긴 설명을 듣고 난 후 교황은 “지금까지 한 말 중 어느 것도 동의할 수 없소”라고 잘라 말할 정도다.
이렇게 다른 둘의 차이로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관심사인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로 접근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교황이고 추기경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제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나누는 대화를 통해 넘을 수 없는 간극을 메워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교황은 “추기경님의 스타일과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달라요. 말하는 거나 생각 행동 대부분 동의하지 않소.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왜 베르고글리오가 필요한지 이해할 것 같소”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교황이 추기경에게 고해하고, 추기경이 교황에게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라고 선언하며, “내 어깨에서 큰 짐을 덜어주셨소.” “제 어깨에는 큰 짐을 올려주셨네요”라고 마음을 교환하는 완전한 합일점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이 시종 인간적 감동이고 신앙적 울림이다.
교회를 고쳐라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는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내 교회를 고쳐라’는 음성을 듣고 벽돌과 회반죽만 생각했다고 한다. 호르헤 또한 ‘내 교회를 고쳐라’는 음성을 듣고 교회 건물을 고쳤다.
그러나 영화는 교회를 고치라는 것은 건물이 아니고 교회의 역할이라는 것을 교황과 추기경의 대화 및 요리오 할릭스와 호르헤의 사목 과정을 통해 잘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호르헤는 “어떠한 여정도 아무리 긴 여정이라고 해도 어디에선가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영광스러운 여정이라고 해도 실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라고 설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긴 여정’은 호르헤가 건물을 고치는 것부터 시작하여 교황이 되어 교회의 역할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실수에서부터 시작’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나치 전력 및 호르헤 베르고글리오가 신부일 때 군사정권과의 타협이라고 하는 실수로 시작하여 ‘교황 양위’라는 위대한 영광스러운 결정, 빈민사목을 중심으로 교회를 변화시키려는 교황 즉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교회를 고치라는 것은 결국 교회의 사랑이 성직자나 권력자나 부자에게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성도, 피지배층, 빈자에게로 더 흘러야 한다는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음성을 들어라
교황은 호르헤에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영적인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그러나 “지난 이틀 동안은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들었는데 당신의 음성이었소.”라고 주님께 얘기하듯 고백한다.
호르헤는 “내 교회를 고쳐라”는 음성을 들었고, 성직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주님의 신호를 확신의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 아무 일도 없자 자기 인생을 살았고 결혼도 하려고 한다. 꽃을 사들고 청혼하러 가다가 그 신호를 받게 됐고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신앙인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직접 듣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경우가 많다. 교황은 호르헤 에게서, 호르헤는 우현히 만난 암 걸린 신부를 통해서 들었다. “가거라, 내 충성스러운 종이여”라는 부름은 직접 들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대부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다른 존재를 통해서 듣게 될 것이다.
교황이 기도를 끝낸 후 촛불을 껐을 때 연기가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본 것이나 교황 양위를 하고 나서 연기가 위로 향하는 것을 본 것 등도 주님의 음성 또는 신호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생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살아왔던 성직자들이 피자를 앞에 두고 식사 기도를 할 때 호르헤의 모습, 기도 후 먹을 것을 못 참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피자를 입에 무는 교황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 또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