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보면서
외가에 가서 밭일 나가는 사촌 형을 따라간 적 있다. 그 끝없어 보이는 밭을 어떻게 다 갈아엎을까 경이로웠다. “앞을 보고는 못 간다. 뒤를 보면서 갈아야지.” 형의 말이었다. 뒤로 가면서 내가 해놓은 일을 보면서 일을 해야지 뒤에 남은 분량을 보면서는 절대 일 못 한다는 뜻이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돌아보면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감사할 때가 많다. 내가 처한 상황이 눈물 나게 서러워 잠깐 내 삶의 길에서 벗어나 보면 내가 얼마나 사치하는 사람인가를 느끼게 된다. 주변 사람들도 가슴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정말 눈물이 나는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어떻게 겪어냈을까. 그들의 아픔에 같이 눈물이 맺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들의 아픔은 오히려 사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더 아프고 더 처절하고 더 비참한 사람이 곳곳에 널려있다. ‘내 인생이 왜 이리 비참할까.’라는 생각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변을 찬찬히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길을 헤쳐온 길을 되짚어 보면 사래 긴 밭이 뿌듯해져 살맛 나는 세상으로 여겨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