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다녀왔다. 알폰스 무하는 체코 출신 화가로 여성이 등장하는 화려한 연극 포스터부터 술, 담배, 초콜릿, 향수 등 럭셔리 광고물 등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드캡터 체리, 세일러문 등의 만화가 이 화가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 얼핏 보기엔 단지 상업적 그림을 그렸던 화가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도슨트를 듣고 난 후 이 화가에 대한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이런 화려한 그림들 너머로 그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그림들을 엿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핍박받던 체코 국민들과 다른 슬라브 민족들을 매우 안타까워했던 알폰스 무하는 그들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다. 그는 20년에 걸쳐 슬라브 민족들에게 바치는 '슬라브 서사시'에 몰두한다. 그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있던 시절,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나치의 만행과 유대인 학살의 비극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유대인들이 설립한 홀로코스트 박물관. 곳곳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는 어떻게든 그 한을 표출하고 역사에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의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지금 보란듯이 미국을 포함 전 세계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영국 내에서 졸업생들의 연봉이 제일 높은 런던정치경제 대학교. 그 곳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졸업생들이 제일 취업하고 싶은 회사 1위는 JP모건이었다. 이 회사에 취직하기만 하면 억대 연봉과 화려한 커리어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JP모건은 회사를 창업한 유대인의 이름 존 피어폰트 모건을 의미한다. 그는 27세의 나이에 5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 월스트리트의 영파워라고 불렸다. 이후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모건은 군수사업으로 기회를 잡았다. 4년의 전쟁이 끝난 후, 모건은 미국 최고의 재력가가 되어있었다.
JP모건, 씨티은행,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AIG, 엑손 모빌, 쉘, HSBC. 유대인들은 세계 일류 기업들을 세웠거나 장악하고 있다. <유대인 이야기>는 전 세계의 부를 손에 쥐고 있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지 그 역사를 설명한다. 유대인은 민족 차원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핍박을 받아왔다. 제국과 많은 정부들은 끝끈한 결속력을 가졌다는 이유, 그리고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차별하고 그들의 종교를 탄압했다. 돈을 잘버는 그들의 능력은 철저히 착취당했다. 쓸모가 있을 때만 활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잔인하게 버려졌다. 유대인은 '돈 버는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유대인의 역사는 도망의 역사이다. 가는 곳마다 천대와 멸시를 당한 유대인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디아스포라를 형성해서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쌓았다. 이런 네트워크는 교육을 중시하는 종교적 전통과 더불어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네트워크와 교육에서 나오는 정보력과 수완을 사용해서 돈을 불렸고, 영란은행의 실권력자 역할까지 하면서 금융의 중심지를 쥐락펴락했다.
유대인들이 단순히 전 세계의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로는 그들이 세상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설명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세계 시장의 판을 짜고 시스템을 움직이는 민족들이다. 다른 민족들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모두 유대인들의 발밑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핍박을 원동력 삼아 더 노력했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단단해지는 과정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 전쟁을 겪고 나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여준 단결력과 근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고통의 시간이 훨씬 더 길었던 만큼 유대인들은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방법과 노하우가 나름의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뼈대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전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조국이 없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 세계를 재패하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슈퍼파워는 미국도, 중국도,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유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