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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mpathizer Feb 24. 2020

한국사로 보는 경제학

한국 사하면 어렵다는 느낌부터 있었다. 학교에서 국사를 배웠지 경제사에 초점을 맞춰 한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다. 씽큐베이션 4기, '경제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를 통해 드디어 한국의 경제사에도 이르게 되었다. 김재호의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는 지금까지 읽었던 한국사 책 중에서 그나마 술술 읽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고대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근현대까지의 경제사를 270쪽이라는 짧은 분량안에 담았다. 간결하게 핵심 내용만 담은 책이라 큰 그림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양반과 노비에 대한 내용이었다. 외국의 노예제도를 우리는 비판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서양보다 훨씬 노비들이 많았다는 사실! 조선 후기에 노비 인구는 전체의 31%였다. 또한 양반의 90퍼센트가 노비를 가지고 있었다. 한명의 양반이 수백명의 노비를 거느리는 경우도 많았다. 양반이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혼자 짐을 지고 다니면 체면을 잃기 십상이었다. 조선은 양반의 나라이자 노비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노비제가 발달했을까?


1. 조선 전기에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하천 주변이 새롭게 개발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2. 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노동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고, 소작을 주려고 해도 가족 노동을 이용한 소농 경영이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조선왕조 개창으로 고려 왕실과 불교 사원에 속해 있던 노비들이 관청의 공노비나 공신의 사노비로 분배되었다. 

4. 공물이나 군역으로 인한 부담을 견디지 못해 많은 양인들이 몰락했다. 호구제도 개혁으로 20여만 호가 130만 호 정도로 급증했는데 이러한 급진적인 호구 개혁이 노비를 양산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노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노비라고 하면 주인과 함께 살면서 시키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노비 말고도 주인과 따로 살면서 공물을 납부하는 노비도 있었다. 주인과 함께 사는 노비를 '입역 노비'라고 하고 공물을 납부하는 노비를 '납공 노비'라고 한다. 납공 노비는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주인은 김매기, 씨 뿌리기, 상납액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서 노비를 관리했다. 노비들은 상납액을 못 채울 경우 곤장을 맞는 등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에는 네거티브 인센티브가 따랐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아테네에서 전주민의 절반이 노예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했고, 임금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농촌이나 가내 노예의 경우에는 주인과 같이 일하고, 식사나 잠자리도 한 지붕 밑에서 같이 했다. 그리스 사회와 우리나라의 노비제를 비교해봤을 때, 인권적 관점에서는 우리나라의 노비가 좀 더 열악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노비제는 중세 우리나라의 경제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를 읽고 새삼 우리나라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 급격하게 사회구조가 바뀌었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꽤 큰 성공을 이루었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사를 아는 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토대가 되고, 이는 세계적 관점에서 경제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좀 더 깊이 한국사를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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