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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Sep 03. 2022

작가의 발견, 사이토 하루미치

- <서로 다른 기념일>, <목소리 순례>

오사 게렌발의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강희진 역, 우리나비), 리사 울림 세블룸의 <나는 누구입니까>(이유진 역, 산하). 이 두 권의 책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작가 자신의 임신-출산-양육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잃어버린, 봉인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이 두 작가에게 '목소리의 상실'은 얼핏 사뭇 다른 경로로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오사 게렌발은 어린 시절 부모의 '정서적 방치'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성인이 됐다. 리사 울림 세블룸은 두 살 때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교차 인종간 입양인'이다. 즉, 말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자신이 태어나고 속한 곳(한국/한국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장소에서 살았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말, 자신의 영혼과 연결된 목소리를 내는 법, 자신의 감정과 판단에 기반한 언어 감각을 익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 모두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기르기 전까지 그랬다. 이 작가들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뱃속에 품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몸을 부대끼며 키우면서, 영혼 깊숙이 봉인된 몸의 기억과 감각으로 소환된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임신, 출산, 양육은 다시 태어나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아내는 경험, 그렇게 새로 태어난 인생에서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의 감각, 감정, 생각에서 우러나는 자신만의 말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당연히 이들 모두 여성 작가들이다. 나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남성 작가에게서 접할 수 있으리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사이토 하루미치의 <서로 다른 기념일>(김영현 역, 다다서재)을 읽기 전까지는.


사이토 하루미치는 청각 장애인 사진작가다. 그는 부모가 모두 청인인 청인(듣는 사람)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학교 때까지 청인 학교에 다니면서 청인 문화 속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농학교에서 다니면서 비로소 농인 문화를 접했고 '수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농인 가족에서 태어나 농학교에 다녔고 수어로 소통해온, 즉 줄곧 농인 문화 속에서 살아온 농인 짝꿍을 만나 청인 아이를 낳았다. 작가의 이야기는 이 아이를 키우면서 시작된다. 갓난아이를 먹이고, 재우려고 안아서 다독이고, 목욕시키고,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모두 '몸의 일'이다.  그렇게 자신의 아이와 몸으로 만나면서 그는 중학교 때까지 청인(듣는 사람)의 관점에서 살면서 잃어버린 기억과 말, 목소리를 살려내는 삶을 살게 된다.


"'음성으로 말하지 못하면, 듣지 못하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채 안개 같은 음성을 붙잡으려 애썼다. 신경은 나날이 쇠약해졌다." - <서로 다른 기념일>, p.97

"유년기 내내 나는 어디에 지뢰가 있는지 모를 발음훈련 선생님의 귀를 향해 두려움에 떨면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발음훈련이 무의미하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음성을 타인의 귀에 내맡기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타인의 귀에 의해 내 목소리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 이런 일들은 결과적으로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죽여버렸다." - <목소리 순례>, p.15


사이토 하루미치는 아이를 키우면서 <목소리 순례>, <서로 다른 기념일> 두 권의 책을 썼다. 작가는 고등학교 때 비로소 만난 농인 문화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한다. 그 문화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게 되고, 농인 친구들 사이에서 수어로 소통하면서 '듣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 것이다. 작가의 육아 경험은 이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에 연결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삶, 사이토 하루미치에게 '목소리', '말'이란 그런 삶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어떤 것이다.


청인 문화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관한 기억을 거의 할 수 없었던 작가는 줄곧 농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짝꿍이 어린 시절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에 놀라면서 '나도 저런 기억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가 초기 육아 시기에 쓴 두 권의 책 모두 봉인된 기억을 해제하고 그 기억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 깊고 고요하고 단단한 평화가 느껴진다. 나도 그런 평화를 갖고 싶어서 하루 중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골라서 읽었다. 요즘 이 책을 읽다가 잠들어서 그런지 편안한 꿈을 꾸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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