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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Sep 28. 2022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타인의 고통을 듣고, 기록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 계기 중 하나는 <난징의 강간>*의 저자 아이리스 장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다. 중국계 미국인 Iris Shun-Ru Chang (1968 – 2004)은 조부모에게 난징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 경험은 중국계 미국인의 삶을 다룬 첫 번째 책(Thread of the Silkworm, 1995)에 이어 나온 두 번째 책 <난징의 강간>(1997)의 집필 계기가 되었다. 책으로 아이리스 장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2003년에 중국계 미국인의 구술에 기반한 책을 출판하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다가 2004년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이리스 장의 죽음 이후 이 작가가 <난징의 강간> 출판 이후 일본 극우 세력의 스토킹, 살해 협박에 시달리며 신경쇠약과 우울로 고통받았다는 점에 세상에 알려졌다.


아이리스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통해 작가의 죽음과 관련하여 내가 이해한 바는 가의 영혼이 일본 극우 세력의 공격이 있기 전부터 난징의 비극과 선대의 집단적 고통에 압도되어 있었다는 점, 일본 극우 세력의 공격은 작가를 무너뜨린 트리거였다는 점이다.


아이리스 장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나는 이런 상태였다. 여성 대상 폭력과 싸우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하고 나서 많이 아팠고, 회복 기간을 거치면서 대학원 학위 과정을 염두에 두던 때였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듣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현실을 바꾸는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그 일이 그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그 일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었다.


나는 작년에야 비로소 자각했던 것 같다. 2018년 이후 다양한 인권 침해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하면서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고, 타인의 고통에 압도되어 절망적 감정에 사로잡혔으며, 살아갈 힘이 고갈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줄곧 해왔던 생계 노동을 하던 와중 갑작스레 몸과 마음이 컴퓨터가 '뻑'나는 것처럼 작동하지 않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런 일이 더 자주 더 짧은 주기로 발생하다가 완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소진'이라고 불리는 것이 내게 그렇게 찾아왔다.


내가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첫 시작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생계 노동을 확 줄였고, 인터넷도 줄였고(? 줄이려고 노력하고!), 종이 신문을 보고, 일상 노동을 하고, 평소 읽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천만년 만에 운동도 시작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이렇게 살 생각이다. 무엇인가 하고 싶어질 때까지.


김승섭 교수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 관한 포스팅을 읽고,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언젠가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다시 품었다. 김승섭 교수의 글을 읽고 크게 위로받았다. 김승섭 교수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을 강하게 품었다. 타인의 고통을 듣고, 기록하고, 응답하는 일을 하면서 고통받고 때로 무너지는 사람들의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리스 장이 기록과 집필 작업을 하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다면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 공명하는 많은 사람에게서 희망을 발견했을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사람들'에 관해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아마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 <난징의 강간> (원제 : 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 ,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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