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수현 Oct 11. 2022

K콘텐츠의 세계 시민 의식 결핍증

1. 영웅 서사로서 '베트남 전쟁'


내가 처음으로 역사책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 입시를 치르러 서울에 온 지인이 자칭 참전 군인인 택시 기사한테 들었다는 '영웅담'이었다. 택시 기사는 지인에게 자기 부대가 주도한 어느 '베트콩 마을' 몰살 현장에서 부대원들이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고문했고, 어떻게 죽였고, 가족과 이웃이 그렇게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떻게 '미쳐갔는지'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들려주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여부를 떠나서 화자인 택시 기사의 우쭐대는 태도, 신이 난듯한 태도, 승객이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잔혹한 내용에 충격을 받는 것을 즐기는 듯한 태도, 그것이 두고두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인간으로서 상상도 못 할 그런 잔인한 일이 어떻게 자랑이 될 수 있는가.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한국군들의 '다른'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어떤' 한국군들은 잔혹한 전쟁을 치르면서 몸과 마음이 산산이 파괴되었고, 돌아온 후 '어떤'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흔히 상상되는 '영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는 그들의 목소리는 한국 사회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한편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이후 한국의 역사에서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광주 학살의 원흉들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에서 잉태되어 만들어진 괴물이 되어 돌아온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광주학살의 원흉들은 베트남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죽인 경험들로 만들어진 괴물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온' 베트남 참전 군 장성을 '악의 축'으로 설정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플롯 자체에는 별다른 의문이 들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설정된 '악의 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돌아온'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느 정도 재현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베트남전'에서 잉태된 '악의 축'이라는 플롯은 그냥 스릴러 장르를 위한 어설픈 설정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문제가 된 장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등장인물이 "한국군 1인당 베트콩 스무 명을 죽인", "(베트남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한) 그 사람들은 100대 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한국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삽입된 것은 베트남 국민들에게 엄청난 모욕이다. 한국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2. 동시대성 불감증


어떻게 웰 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이런 장면이 포함될 수 있었을까. 한국일보 기사(댓글 링크 삽입)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와 같이 다른 나라 국민의 분노를 촉발하는 설정이나 장면이 한국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현상을 '문화제국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은 아씨들>의 경우에 한하여 몇 가지 분석을 해보자면 두 가지 정도 원인을 짚을 수 있겠다. 


첫째, 드라마의 핵심 제작자인 작가와 감독의 역사에 대한 무지다.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다루려면 그 역사와 그 엄청난 무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베트남과 한국에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비극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작가와 감독의 이러한 무지와 무책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둘째,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 드라마가 베트남 사람들을 시청자로 의식하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베트남 전쟁과 '베트콩'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가 문제의 (베트콩) 발언을 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차용한 시선은 그 자체로 일종의 영웅 서사이며, 그 서사 안에서 '베트콩'은 박멸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 장군과 소속 부대원들의 베트남 전쟁 경험은 모호하게 처리되어 그 구체적 실체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마치 '피해자'처럼 그려진다. 그리하여 소모품처럼 쓰고 버려진 '불쌍한' 군인들이 난초와 만나면서 악의 축이 잉태되는 결정적 장면은 가해자의 자기도취적 시선으로 시청자를 초대한다. 


베트남에서 이 드라마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와 감독이 베트남 사람들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이라고 여겼다면, 드라마에서 베트남 전쟁과 베트남 사람들을 플롯의 재료로만 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세계 시민 의식의 핵심 요소는 자국/자민족/자기중심 주의에서 벗어나는 것, 타국/타국민/타자와의 동시대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은 세계 시민 의식이 현저히 결핍된 인간성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살아있는 '외부'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피와 살'을 가진 물질적 존재로서, 인격과 감정을 가진 정동적 존재로서, 낯선 타자가 내 눈앞에 보이는 것 자체가 '동시대성' 감각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이다. 한국인에게 세계 시민 의식이 도전적인 결핍이 되지 않으려면,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는 이 시대에, 한국의 지리적 조건보다 K-POP, K-드라마의 약진에 대한 한국인의 자기도취가 K콘텐츠의 세계 시민 의식 결핍증의 핵심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족. <작은 아씨들> 애청하였음. 나는 본방 사수한 사람.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