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미 순야의 책이 드디어 <문계학부 폐지의 충격>(김승구 역, 소명출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링크 댓글) 기념으로 2019년 4월에 페이스북에 올린 바 있는 서평을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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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부 폐지의 충격>(요시미 순야, 2016년)을 읽고
책 소개에 따르면, 요시미 순야는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에서 대학을 시대 상황과 긴밀하게 연동해 지식을 매개하는 집합적 실천의 구조화된 장, 즉 '미디어'로서 새롭게 정의하고 그 역사를 살핌으로써 미래의 대학상을 제시한 바 있다. 요시미 순야의 저서들을 살펴보니, 시대의 상식을 만들어가는 담론 창출 공간으로서 대학의 역할과 정체성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연속선 상에서 심문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듯하다.
이 책 <인문학부 폐지의 충격>은 그 후속작이다. 책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책의 첫번째 장 "인문학부 폐지라는 충격"은 2015년 우리나라로 치자면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문과성 "의 보도 자료를 계기로 촉발된 '인문학부 폐지'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과연 시대와 긴밀하게 연동하는 지식 매개의 장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이 소동의 연원과 배경을 추적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소동의 근저에는 깔려있는 암묵적 전제, 즉 "이공계는 돈이 되고 인문계는 돈이 안된다"는 생각은 일본 근대 국민 국가에 의해 추동되는 대학의 역사와 공명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잠깐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본 국민 국가의 형성기에 메이지 정부는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이공계 관료 양성에 교육의 초점을 맞췄고, 메이지 후기에는 국가의 유지 및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법조인 양성으로 그 초점이 이동했다가, 1910년대 전시 체제에서 무기 제조를 위한 기술 활용이 필요해 지면서 교육의 중심은 다시 법률에서 이공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인문학부 폐지 소동"이 제시하는 문과와 이과의 불균형은 국립 대학이 법인화 등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에 의해 완전히 잠식된 2015년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일본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이미 형성된 흐름이라는 것. 이 시기에 이미 일본 국립 대학의 70%가 이과계였다고 한다.
요시미 순야의 "도움이 된다"론
문화연구자답게, 저자는 "문송합니다"의 일본식 표현, "문과는 도움이 안된다"를 둘러싼 담론 지형을 분석하고, "인문사회계는 왜 도움이 되는가"를 '목적 수행적 유용성'이 아니라 '가치 창조형 유용성'의 측면에서 재정의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생산되어야 할 지식은 인류의 보편성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인문사회계는 '도움이 된다'는 것. 대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봉사하는 지식 생산의 장이 되지 않을 때, 특히 인문학적 사유가 결핍된 채 발전한 과학 기술이 인류에 어떤 비극을 야기하는가를 일본 역사를 통해 지적한다. 20세기 초반 일본이 일으킨 전쟁,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것이다.
대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론
저자는 대학의 역할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 가치의 중심이 다원화되고, 복잡해지며, 유동하는 사회에서 인문사회학은 매우 중요하며, 대학이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만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흡수하여, 세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의 재구성에 도움이 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교육의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의 일환으로 몇 가지 교육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시미 순야가 대학원 수업에서 오랫동안 해왔다는 액티브 러닝, '나를 공격하라'. 교수의 논의를 비판하는 단계와 방법을 알려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를 공격하게 하는 교육 방법. 교수와 학생 간의 사무라이적 대결을 통해 능동적 학습을 유도한다는 것인데, 아무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배움'과 '놀이'의 관계를 언급한 대목에 밑줄을 긋게 된다. 배움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유용성)'과 '노는 것(유희성)'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매일 실패를 거듭하는 교육현장에 있다보니 즐거운 놀이로서 교육방법을 늘 고민하게 된다.
일본식 "문송합니다", 즉 "도움이 안된다"가 어떻게 국가와 대학간의 공의존적 관계 속에서 상식의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는가를 일본의 맥락에서 비판하면서, 대학이 갈 길을 제시한 이 책, <인문학부 폐지의 충격>이 한국에도 출판되면 좋겠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가,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전면적으로 공유하면서 함께 새로운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