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선재도 카페 <뻘다방>
빛을 잃어버린, 눈이 멀어버린 대장장이가 있다. 평생 대장장이와 목수로 삶을 일궈온 이가 앞을 볼 수 없게 됐다는 건 앞으로 남은 모든 삶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큰 고통이었을 것이기에 우리가 그 절망의 깊이와 크기를 헤아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평생을 가까이 두었던 쇠와 불을, 나무와 톱을 볼 수도 다룰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서해의 작은 섬 선재도에 살던 그가 바닷가 집 마당에 앉아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다의 소리와 바람뿐이었을 것이다. 막막한 어둠의 저편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는 수평선 너머를 떠올렸을까?
그런 그가 어부가 되었고, 그의 곁에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이 있다. 아들은 어부가 된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앞을 볼 수 없는 어부는 바닷물이 빠진 갯골을 따라, 아득한 수평선이 있던 곳까지 걷고 또 걷는다. 눈이 먼 어부가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해변으로부터 이어진 줄과 줄에 건 갈고리뿐이다. 그물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 줄이 길이고, 그것이 곧 그의 눈이다. 그는 아들이 만들어준 줄에 갈고리를 걸고 갯골을 따라 나아가 바다 한가운데 쳐놓은 그물의 물고기를 잡는다. 그가 그물에서 거두어들인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놓을 수 없는 애착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천 옹진군 선재도에서 <뻘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진작가 김연용 씨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일이고 이제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그들이 키우던 ‘바다’, ‘향기’, ‘소리’ 세 마리 개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후 김연용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꾸리던 작은 식당과 민박집 <바다향기>는 <뻘다방>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김연용 작가 가족의 사연은 2000년대 초반 한 방송사에 의해 <아버지의 바다>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송된 적이 있는데,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출간된 김연용 사진 산문집 『아버지의 바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그가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던 <바다향기>에도 다녀온 적이 있다. 오래전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소박한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던 일도 떠오른다. 얼마 전 불현듯 <아버지의 바다>가 생각났고, <바다향기>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궁금하여 선재도 <뻘다방>엘 다녀왔다. <바다향기>와 <뻘다방>은 이름은 물론이고 분위기까지 판이하게 달라졌는데, 그런 변화의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바다향기>의 기억을 가지고 <뻘다방>을 다시 찾은 날 김연용 작가를 만나 진솔함이 담긴 지난 이야기를 듣게 된 건 큰 행운이었다.
<바다향기>가 <뻘다방>으로 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듯싶었다. <뻘다방>의 이국적인 모습은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이기도 한 김연용 씨의 의지와 취향이 투영된 것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바다’의 사연이 매스컴과 대중들에 의해 소비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던 것 같았다. 자신에게 덧입혀진 효자 프레임도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자꾸만 신파로 몰아가는 매스컴의 시선에 거부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느꼈을 마음의 불편함과 무거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연용 작가는 <바다향기>가 <뻘다방>의 시작임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바다향기>의 바다와 <뻘다방>의 바다가 다르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그에게서 20여 년 전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 세월 속에 <바다향기>와 그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뻘다방>에서 바라본 바다는 오래전 그때와 다를 바 없이 먹먹하게 펼쳐져 있었다. 지척에 있는 목섬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작년 겨울 선재도 여행 중에 목섬까지 이어진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썰물이 되면 길이 열리는 섬. 목섬을 지나쳐 수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듯 펼쳐진 모랫길이 무척 아름다웠다. 갯벌을 양 편에 둔 모랫길을 걸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의 숲을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그 너머, 더 먼바다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마 김연용 작가의 아버지는 모랫길 옆 갯골을 따라 바다가 물러난 저 너머 어딘가까지 걸었을 것이다. 빛을 볼 수 없는 암흑의 바다에서 그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선재도의 핫플레이스가 된 <뻘다방>의 성공은 몇 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시력을 잃은 아버지를 위한 김연용 작가의 헌신과 사랑을 알기에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20대 청년이 고향인 서해의 작은 섬 선재도로 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뻘다방>의 모습은 예전 <바다향기> 때와 많이 달랐지만, 그곳이 ‘아버지의 바다’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이기에 그저 좋았다.
집에 돌아와 김연용 사진 산문집 『아버지의 바다』를 다시 읽는다. 2003년 출간된 이래 늘 곁에 두고 읽은 책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반복해서 읽은 책이 있었던가. 사진 속 앞을 볼 수 없는 아버지는 캄캄한 바다를 걷는 중일 테지만, 저편 어딘가에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행복해 보인다. 『아버지의 바다』는 정직하게 ‘아버지의 바다’를 기록한 책이다. 그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선재도 바닷가에는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 바다와 누군가가 있다. 선재도 바다의 윤슬을 떠올릴 때면 『아버지의 바다』가 기록한 20여 년 전의 먹먹한 아름다움이 먼저 생각난다. 겨울이 물러가면 또다시 봄날의 ‘아버지의 바다’를 보러 가려한다. <뻘다방>, <바다향기> 그리고 언제나 아련한 ‘아버지의 바다’를 만나기 위해.
-이 글은 월간 <해군> 2022년 3월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카페 <뻘다방>
주소: 경기도 옹진군 영흥면 선재로 55(선재도)
전화: 0507-1319-8300
매주 화요일 정기휴무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