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_05
프린스 윌리엄스 사운드 빙하 지역의 서프라이즈 빙하로 가기 위해 위디어 항구로 간다. 위디어는 앵커리지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위디어는 작지만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서 서프라이즈 빙하와 블랙스톤 빙하로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나는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서프라이즈 빙하를 타기로 마음먹었는데, 서프라이즈 빙하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좀 더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어서였다. 여름의 알래스카는 평균 기온이 영상 16도 정도이기 때문에 겨울옷이 필요 없지만 빙하 유람선을 타러 갈 때에는 너무 두껍지 않은 겨울옷 정도는 필요하다. 빙하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알래스카의 다른 곳에 비해 추울 뿐만 아니라 갑판 위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빙하를 보는 시간이 꽤 길기 때문이다.
앵커리지에서 위디어로 가는 스워드 하이웨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스워드 하이웨이를 따라가면 아름다운 위디어 항구가 나오고 그 길은 스워드, 쿠퍼랜딩 그리고 알래스카의 땅끝마을 호머로 이어진다. 그리고 위디어 항구로 갈 때 조금 독특한 터널을 지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터널은 2차 세계대전 시절에 건설한 것으로, 왕복하는 기차와 차량이 편도 1차선의 비좁은 길을 공유한다. 앵커리지에서 위디어 항구로 갈 때는 매시 30분에 차량 통행이 가능하고 반대로 위디어에서 앵커리지로 향할 때에는 매시 정각에 차량이 진입할 수 있다. 다른 시간에는 기차가 터널을 이용하는데, 자동차가 지나는 길 역시 기차가 사용하는 철길을 이용한다. 터널 입구에 도착하니 터널을 통과하려는 차량 행렬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터널이 열리는 시간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빙하, 그것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환영과 신비처럼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위디어 항구는 소박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항구에 가득한 요트와 한가로운 풍경이 크루즈를 탑승하는 설렘과 함께 어우러지며 묘한 느낌을 갖게 했다. 위디어 항구 일대의 빙하 지역 모두를 ‘프린스 윌리엄스 사운드’라고 부르는데 그 면적은 25,900㎢에 이르며 1만 개의 빙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알래스카 전역에 10만 개 이상의 빙하가 있다고 하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극의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위디어에서 출발하는 빙하 크루즈는 알래스카 빙하 여행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 중 하나이다.
서프라이즈 빙하 크루즈는 블랙스톤 빙하 크루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비쌌지만 항해 시간이 5시간 정도로 더 길고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서프라이즈 빙하 크루즈를 선택했다. 위디어 항구를 떠나 프린스 윌리엄스 사운드의 연안을 항해하는 배는 고요한 바다 위를 흔들림 없이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넓은 바다와 빙하가 번갈아 지나가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안의 바위 위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물개가 느긋하게 오후의 한때를 즐기고 있었고, 수 천 마리의 갈매기가 절벽에 가득한 장면에서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운이 좋으면 고래를 볼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고래는 볼 수 없었다. 빙하 지역으로 가까이 갈수록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빙하에서 전해지는 서늘함이 바닷바람과 함께 한기를 불러일으켰다.
형용하기 힘든 푸른빛을 품은 빙하는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으며 자신의 전존재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위디어 인근의 헤리만 피오르와 칼리지 피오르에는 상당히 많은 빙하가 모여 있다. 서프라이즈 빙하를 비롯하여 카타랙트 빙하, 캐스케이드 빙하, 배리 빙하, 콕스 빙하, 하버드 빙하, 예일 빙하 등이 이곳에 모여 있다. 서프라이즈 빙하로 가는 내내 만년설이 내린 산과 서늘한 바다 그리고 유빙과 빙하수가 사라졌다 보이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환영과 신비처럼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빙하 크루즈는 뷔페식 점심 식사를 포함하고 있어서 빙하로 가는 도중에 배 안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실내에서 연어 스테이크와 비프스테이크가 제공되는 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어느덧 헤리만 피오르에 있는 서프라이즈 빙하에 도착하게 된다.
배는 이윽고 빙하의 절정을 보여주는 서프라이즈 빙하의 웅장한 푸른빛 앞에 멈춰 섰다. 형용하기 힘든 푸른빛을 품은 빙하는 나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으며 자신의 전존재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가끔씩 빙하의 일부가 바다로 떨어지는 소리가 바다의 적막을 깨고 울려 퍼지곤 하였다. 매킨리에서 경험한 만년설과는 또 다른 감동이 그곳에 있었다. 매킨리의 감동이 순백의 시각적인 것이라면, 서프라이즈 빙하는 맑고 투명한 이미지가 시각보다는 청각을 자극하며 다가왔다. 서프라이즈 빙하와 바다의 모습은 분명 시각적인 이미지였지만 빙하의 푸른빛과 바다의 서늘함 그리고 태양빛을 받아 빛나던 유빙의 모습은 시각이 아닌 청각의 신비로운 울림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위디어 항구로 다시 돌아오는 동안 나의 청각을 자극하던 서프라이즈 빙하의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이 내내 잊히지 않았다.
알래스카의 빙하
알래스카에는 다양한 빙하가 있다. 그런 알래스카 빙하를 감상하는 방법은 크게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접근하는 방법과 차량과 도보를 이용하여 육지 빙하는 보는 것으로 나뉜다. 보통 알래스카 여행은 한국에서 모객하여 떠나는 단체 여행이 아니더라도 현지 여행사의 단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보통 한 번의 바다 빙하와 한 번의 육지 빙하를 보는 것으로 여행 일정이 구성되어 있다. 알래스카 빙하 여행을 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는 위디어 항구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곳의 빙하 지역을 프린스 윌리엄스 사운드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출발하는 서프라이즈 빙하 크루즈와 블랙스톤 빙하 크루즈가 유명하다. 블랙스톤 빙하 크루즈는 시간이 짧은 만큼 가격도 저렴하지만 볼거리가 많지 않은 편이다. 반면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서프라이즈 빙하는, 빙하를 비롯한 야생동물 등의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식사 시간을 포함한 5시간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다. 또한 또 다른 빙하 투어로 유명한 곳은 발데즈이다. 발데즈는 주요 여행지로부터 따로 떨어진 곳에 있어서 다른 여행지와 연계하여 방문하기가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7시간이 걸리는 콜롬비아 빙하의 아름다운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발데즈에는 내륙 빙하인 워딩턴 빙하가 있기도 하다. 이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알래스카 최대의 육지 빙하인 마다누스카 빙하가 있고, 트래킹이 가능한 엑시트 빙하와 포테이지 빙하가 있다. 포테이지 빙하는 육로로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여름철에는 빙하 크루즈가 운행되기도 한다.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