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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Sep 24. 2023

26. 마음챙김 (1)

- 보통의 의미

마음챙김의 전제


마음챙김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아마도 방송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통해 이 ‘마음챙김’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단어가 되었다. 단어는 알지만, 뜻은 잘 모르는 그런 단어가 ‘마음챙김’이라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단어는 먼저 2개의 자아를 전제하고 있다. 하나는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자아’, 다른 하나는 ‘마음을 챙기는 자아’, 이렇게 내 안에 2개의 자아가 존재한다고 본다. 이 2개의 개념이 없으면 마음챙김이라는 단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자아


먼저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자아’는 무엇인가? 이것은 ‘일상의 자아’를 의미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여러분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보냈는가?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보냈는가?

하루 종일 보낸 일상이 전부 기억나는가?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가끔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보낸다. 하지만 만들어놓은 일상에 내가 살고 있을 뿐,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으며, 그제가 지난주의 어느 날인 것 같다. 일주일만 지나면 기억이 엉켜서 그날이 그날 같아지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동료나 가족과 일상적인 얘기들을 나누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중간중간에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생각들을 하루 종일 하고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생각들 속에 일상을 살아가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삶의 패턴이 생기고, 그렇게 반복되는 패턴 속에 내가 살아간다. 마치 기차가 레일 위를 반복해서 달리는 것처럼 나의 삶은 패턴에 따라 진행된다.

처음엔 다양한 길을 탐색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길만을 살게 되고 다시 기차 레일처럼 고착화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살아가는 자아가 바로 ‘일상의 자아’이고 ‘관성의 자아’이다. 반복된 패턴의 삶이기 때문에 패턴을 따라서 갈 뿐, 구체적인 기억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괴로움이 싹튼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처음에는 인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성장하여 갑자기 나의 인식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인식에 들어온 것 중에, 어떤 것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나아가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처음엔 무시할 정도로 작은 것들이 어느새 덩치를 키워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황량한 고독감, 무거운 우울감, 이유 없는 불안감, 깊은 슬픔, 알 수 없는 분노, 힘없는 무기력함 그리고 복잡해진 생각 등이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일상적인 괴로움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모르면서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괴로움은 점점 성장하여 어느새 나 자신을 위협하게 되면서, 일상이 더 이상 일상이 되질 않고 탈출해야만 하는, 아니 최소한 숨은 쉬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마음을 챙기는 자아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이 들어야만, 두 번째 자아인 ‘깨어있는 자아’를 찾으려는 마음이 생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괴로움이 생기질 않으면 ‘절대로’ 일상에서 벗어나려 하질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에 익숙해져서 그저 살아갈 뿐인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희로애락 속에서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일상적인 삶에 틈이 생기고 괴로움이 조금씩 밀려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오는 삶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되고, 이 회의감이 자신에 대해 자각하는 기초가 된다. 이렇게만 보면 ‘괴로움’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장치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서 ‘깨어있는 자아’를 찾으려는 마음이 ‘마음을 챙기는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이 ‘깨어있는 자아’는 이렇게 자기 삶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한다. 앞에서 말한 질문들,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면 하루를 살아가다가 문득 일어나는 생각, ‘아~! 사는 게 뭘까?’, 혹은 ‘아~! 이렇게 살아도 되나?’ 같은 자신에 관한 질문들을 말한다. 이렇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삶에 의문을 가지며 스스로 객관화하는 자아를 ‘마음을 챙기는 자아’라고 한다.     


마음챙김이란 쉽게 말하면 ‘마음을 챙기는 자아’를 가지고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자아’를 확립해 나가서 ‘깨어있는 자아’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인식의 중심을 '일상의 자아'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자아'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마음을 챙기는 자아’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고, 이 문제 또한 풀어내야 하는 숙제이지만, 처음 명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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