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훈육관들이 위치한 1층에는 전 후보생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CCTV 감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파놉티콘'을 연상시키는 시스템이었다.
훈육관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복도에서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는 후보생들을 발견했고, 방송으로
수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후보생들을 응징하기 위해 직접 샤워장에 온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몇몇 후보생들은 샤워장에 틀어 놓은 물소리 때문에 못 들었지만, 그건 훈육관들의 알 바가 아니었다. 끝내 아무도 자수하지 않았고, 훈육관은 '너네 두고 보자.'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이번엔 똑똑히 들었다. '두. 고. 보. 자.'라는 네 글자를.
씻고 들어와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조금 전 '사자후'의 여파 때문인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은 주말이니깐, 별일 없겠지.’
눈 감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요란한 방송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전 후보생은 전투복 복장으로 대연병장으로 집합할 것. 5분 준다.'라는 방송과 함께 '튀어나와!', '빨리빨리 안 튀어나오냐!’ 등 어젯밤의 사자후가 데자뷰로 들렸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까지는 가입교 기간 아니었나?'
비몽사몽으로 뛰어나가는데, 한 훈육관이 나타나서는 '누가 전투복을 이 따구로 입어! 엎드려.', '내
려가, 내려가 내려가!!!' 하면서 다짜고짜 기합을 주기 시작했다. 내려오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흙먼지 휘날리며 뒹구는 사람도 있고, '악... 악!! ' 거리면서 괴상한 기합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한 훈육관이 구령대 위로 올라섰다. 그는 마이크로폰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후보생들. 그동안 우리가 대우해 주니까 좋더나? 그때는 너네가 민간인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준 거고.. 이제 너네 신분은 군인이야.'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어서 말했다. '지금부터 경어를 폐지한다. 다 엎드려!'
정확히 몇 분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구토하는
후보생. 쓰러지는 후보생들이 속출했다. 그때마다 훈육관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들을 처리했다. 아마도 늘 봐왔던 광경임에 틀림없다.
강도 높은 기합과 얼음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도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아니. 솔직히 쓰러지고 싶었다. 단언컨대, 저들 중 몇 명은 거짓 환자였을
테다. 내 앞에 있던 후보생은 키가 190 가까이 되는 거구였는데도 '픽’ 하며 쓰러졌다. 그때였다.
'지금 당장 방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가져온 짐을 들고 나온다. 5분 준다.’
전 후보생이 점호장에 나와서 자신의 짐을 풀어헤쳤다. 내가 가져온 물품들은 모두 허용 물품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는데, '사진'이었다.
1인당 3장의 사진만 허용되는데, 나는 나름대로 짱구를 굴려서 사진을 앞 뒤로 3장 인쇄해 갔었다.
그런데 소지품 검사를 하던 훈육관이 내 사진을 보고는, '야, 너 이거 몇 장이야.'하고 물어보았다.
나는 ‘3장입니다!’라고 재빨리 대답했다.
그랬더니 훈육관은 사진을 앞뒤로 뒤집으며 나에게 따지듯 말했다. '3장? 너는 이게 3장이냐?' 나는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6장입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기합을 받고는 사진을 집으로 반송하게 되었다. 이때 기합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저께 몰래 써놓았던 쪽지도 미처 집에 부치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은 소지품 검사로 인해 두 가지 아픔을 겪었다. 첫 번째 아픔은 '나의 아픔'이었다. 특별외박을 나가기 전까지 자그마치 '8주'동안이나 가족사진을 못 봤다는 것이다. 고된 훈련을 받다 보면 부모님 사진도 보고 싶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볼 수 있는 사진이 없었다. 동기들은 모두 힘들 때마다 또는 자기 전에 가족사진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다는데 나는 혼자서 외롭게 훈련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아픔은 '가족들의 아픔’이었다. 내 소지품은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 어디에도 나에 대한 소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다섯 번이나 더 뒤져보았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막 '신분전환식'이 끝났을 뿐인데, 큰일 났다.
이런 곳일 줄은 미처 몰랐다.
얼른 탈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