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보다가 하게 된 인생고민
오늘도 루틴은 비슷하다. 아이들 등원, 등교를 도와주고 운영중인 렌탈스튜디오로 가서 청소를 한다. 그리고 집으로 와 간단히 집안 청소를 하면 점심 시간. 넷플릭스를 켜고 좋아하는 미드를 한편 보면서 점심을 먹는다. 대부분 웃긴 시트콤 미드를 좋아해서 밥 먹다 말고 웃어서 밥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한 편 더 보고 싶지만 꾹 참을때도 있고, 정말 궁금할 때는 한 편 더 보기도 한다. 나의 미드 사랑은 꽤 오래된 것이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때부터 열심히 봐온것 같다. 미드의 고전인 프렌즈를 시작으로 정말 열심히 이어서 보는 중이다. 때로는 나한테 딱 하루만 주면 하루종일 미드만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한때는 영어 공부 삼아 무자막과 영어자막으로도 보다가, 나는 미드를 즐기는거지 공부하는게 아니라며 때려치우고 한글 자막으로 편하게 보고 있다.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미드를 열심히 보는지 궁금한 적도 있다. 그냥 스토리 자체가 궁금한거면 요즘 위상을 떨치는 K드라마에도 훌륭한 시리즈가 많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미드, 그중에서도 때로는 천박하고 때로는 솔직한 B급 유머코드가 있는 미드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막 배우 정보를 파거나, 열렬하게 어디 리뷰를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정말 단순하게 재밌으니까 본다. 킬링타임용으로 최고의 콘텐츠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미드이다. 볼 시간이 다 없어서 그렇지 나중엔 꼭 봐야지 하고 쌓아둔 미드가 한 두 편이 아니다.
요즘 글을 꾸준히 쓰다보니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나의 미드 사랑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궁금함이 들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정확하진 않아도 하나의 결론을 냈다. 내가 미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하고 너무 달라서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기 때문이지.'
같은 맥락으로 맨날 말만 하고 떠나지 못하는 '여행'이 있다. 여행 또한 늘 익숙한 환경을 떠나 잠시라도 다른 현실을 맛볼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못가니까 미드라도 보는걸까? 미드를 보면서 더 좋은 점은 늘 궁금했던 세계를 간접체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드라마라 과장된 이야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프렌즈를 보면서 뉴요커가 다 됐고, 닥터 하우스를 보면서 천재 의사도 되어봤다가, 굿 플레이스를 보며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30ROCK을 보면서 미처 다 펼치치 못했던 방송작가의 미련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요즘은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보면서 뉴욕 경찰도 되어 보고 있다.
뭐 재밌으니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현실이 깝깝하거나 할 때 고민하기 보다는 에라이 하고 도망가는 수단이라는게 문제다. 살면서 스트레스 안받고 고민없이 살 수 있다면야 제일 좋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아주 큰 스트레스는 없었던것 같은데, 다르게 말하면 스트레스 받을 일을 그냥 피했기 때문에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을라 치면 도망치는게 습관이 된게 아닐까?
살면서 한번쯤은 진지한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몰라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쳐도,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또 그러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괜한 번아웃이나 기분이 다운될 때 다시 치고 올라올만한 힘이 되줄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도 아직은 미드 보는 시간이 더 좋지만... 하루에 1분이라도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