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작가 Dec 13. 2020

첫 번째 이야기. 저는 어렸을 때부터. -1-

31살 신입사원이 되기까지... 학창시절.

『그동안 본인의 삶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을 가급적 상세하게 적어주세요.』


『본인이 지원한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발휘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던 일을 상세하게 적어주세요.』


 처음, 자소서를 쓸 대 나를 가장 멘붕에 빠트리게 만들었던 항목. 바로 지금까지 겪은 경험들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은 많았지만 그 많은 기억들 중 내가 지원한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을 서술하는 것이 처음에는 막막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취준과 관련된 여러 영상과 정보 글을 통해 서술하는 방법을 알고 나서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처음 접했을 때는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질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글을 쓰는 지금. 이 질문을 조금 바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신입사원이 되기까지 본인은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1988년. 경상북도 어느 작은 군소도시. 지금은 여러 매체를 통해 그리고 교과서를 통해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울산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경상북도의 어느 작은 곳에서 처음 세상을 마주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내겐 훌륭한 경쟁가 곁에 있었다. 그 훌륭한 경쟁자는 나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마주한 형이었다.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났던 형제였지만 나는 형이 하는 것이면 나도 해야만 했고 뭐든지 형보다 잘하려고 했었다. 때문에 연년생인 형제 또는 자매가 싸우듯 엄청 싸웠다.


 훌륭한 경쟁가 있었던 덕분에 어디를 가나 '누구 동생'으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고, 더구나 같은 학교를 다녔기에 선생님들도 나를 '누구 동생'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형에게 알게 모르게 경쟁심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그런 형에게 뒤지기 싫어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 덕분에 나도 동창들 사이에서는 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기대와 생각대로 형이 그러했던 것처럼 중학교 생활을 끝으로 나는 포항에서 홀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미지의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3년을 지내는 것이 두려웠고, 그냥 이 곳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형을 바라보며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부모님 앞에선 차마 그 생각을 겉으로 내비칠 수는 없었다.


"안녕, 나는 OO중 나온 OOO라고 해.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입학식 전 날. 부모님과 함께 앞으로 3년 동안 지낼 기숙사에 도착해 처음 보는 친구들과 짧은 인사를 나눴다. 부모님과 떨어진 첫날. 나는 학교 식당에서 홀로 저녁밥을 먹으며 3년의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한 학기 동안은 갑작스레 달라진 환경과 밤 11시 30분까지 의무적으로 자습을 해야만 하는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몸이 고생을 많이 했었다. 중학교 때에도 밤늦게까지 공부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시간까지 졸음을 참으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다. 더구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점호를 하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었다. 때문에 여태 한 번도 흘러보지 않았던 코피는 멈출 줄 몰랐고, 처음으로 스스로 쓴 한약을 찾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여태껏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숫자를 눈 앞에 마주하는 것이었다.


'50'


 아무리 망쳤다고 생각했던 시험에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등수였다. 나름 중학교 때 공부 좀 했다는 아이들이 모인 이 곳에서 치른 첫 시험에서 '50'을 가뿐히 넘어간 숫자에 충격을 먹었다. 그리고 이 숫자를 보며 처음으로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동안 이 벽을 부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그때마다 나를 맞이한 건 실패에 따른 좌절감이었다. 하지만, 17살 당시의 나는 그 좌절감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0'


 반갑지 않은 손님인 좌절감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숫자였다.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의 경우 모의고사든 내신시험이든 시험을 볼 때마다 상위 10명의 이름을 게시판에 게시하여 전교생이 지나다니며 볼 수 있게 했다. 게시판을 앞을 지나다니며 나도 그곳에 이름을 걸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자연스레 고등학교에서 첫 번째 목표는 '10'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목표는 예상과는 달리 첫 중간고사에서 달성할 수 있었다. 불과 1~2개월 만에 세웠던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한 덕분에 모의고사 때마다 나를 찾아온 좌절감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를 통해 앞으로 모의고사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지금보다 더 노력한다면 처음 마주 했던 그 벽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고등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 니 성적으로는 자연계가가 수시를 노리는 게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끼다."


 첫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한 학기 동안 치른 여러 번의 시험 결과들을 바탕으로 담임선생님과 진로상담을 했었다. 아직 모의고사에 400점 이상 넘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대로 자연계로 가는 게 여러모로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인문계를 가야만 했고, 자연계를 가기에는 '과학'을 너무나도 싫어했었다. 그리고 내신시험을 통해 나는 충분히 수능으로도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다.


"저는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는 게 목표예요. 선생님"


 사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서울대가 아니었고, 애초에 목표로 삼고 있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전화까지 하면서 나를 자연계를 보내려는 담임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을 꺾기 위해선 나도 강하게 나가야만 했었다. 내 입에서 '서울대'라는 말을 들은 선생님은 결국 내 고집을 꺾는 걸 포기하였고,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에서 터닝포인트가 된 첫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또 니가? 뒤에 나가서 잠 좀 깨라."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보충 수업 때마다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말. 4박 5일간의 짧은 여름방학이 끝난 후, 나는 학교에 아무도 없을 새벽 2~3시 까지 교실에 홀로 남아 공부를 했었다. 3시간 남짓 안 되는 수면시간에 나는 부족한 잠을 오전 수업시간.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자는 쪽잠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늘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혼나는 게 일상이었고, 체벌이 아직 남아있었던 2004년. 나는 맞기도 많이 맞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름방학 내내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생활패턴을 계속 유지했고, 이 노력은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치른 모의고사에서 나는 처음으로 400점을 넘어섰다. 그리고 거기에 더 나아가 모의고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내 이름이 게시판에 떡하니 걸렸다. 이렇게 확실한 결과를 얻자 수업시간에 맨날 졸던 학생으로 바라보던 선생님의 시선도 새삼 달라졌고, 다른 과목에 비해 낮았던 '수학'은 선생님이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니가 말했던 대로 잘하고 있네. 계속 노력하면 서울대 법대 갈 수 있을 거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수학 선생님의 관리를 통해 내 수학 점수는 시험을 치를 때마다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공부 잘하는 친구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9월. 조금씩 올라가던 점수는 이때 정점을 찍게 되었다.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나는 처음으로 전교 1등이라는 등수를 받아보게 되었고, 체육시간 때 1학년 담임선생님이 나를 잠깐 불러 말을 건넸다. 1년 전 여름방학 때 터무니없던 말을 꺼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에게 성적으로 그 말이 마냥 헛된 말은 아니라는 걸 증명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게 건넸던 말은 나를 기쁘게 했고, 이대로라면 호기로 내뱉은 내 말이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게 그리 만만하지 않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그냥 흔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