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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솔 Nov 17. 2024

제가 왜 칭찬을 해드린 것 같나요?

지금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


심리 검사 해석을 검토받기 위해 슈퍼비전을 신청했다. 지난주에도 받고 2주 연속으로 신청드린 거였다. 일주일 전 처음으로 심리 검사 슈퍼비전을 접하고, 검사 해석의 깊이에도 단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검사 결과를 능력껏 읽어내면 깊이 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게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빨리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슈퍼 비전을 한번 더 요청드렸고 보고서를 후다닥 써서 제출했다.


첫 슈퍼비전에서 보고 들은 걸 이번 보고서에 모두 녹여냈다. 당연히 지난주 제출했던 검사 해석 보고서보다 더 그럴싸한 보고서가 완성됐다.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는 이번 보고서를 읽으시더니 너무 잘 써줘서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더 보완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교정을 해주겠지만 이미 충분하다는 말씀을 거듭해 주셨다.


그러면서 내 보고서가 어떤 부분이 잘 작성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주셨다. 초심 상담자로서 나름의 여러 검사 결과의 간극을 비교했던 시도들, 내담자 무의식의 면까지 읽어내려고 했던 몇 줄, 내담자의 특성을 반영하여 검사 결과를 받아들인 부분. 잘 쓴 한 줄 한 줄을 놓치지 않고 짚어주셨다.


십 여분이 지났을까. 말을 마치신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이렇게 칭찬만 쭉 들으니 어때요?”


나는 대답했다.


“감사하지만, 조급한 마음도 들어요. 더 나은 단계의 해석이 있다는 걸 아는데 지금 수준에서 잘한 부분만 짚어주시는 것 같아서요.”


슈퍼 바이저 선생님께 칭찬을 받는 건 초심 상담자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말들이 나의 수준을 한계 짓는 것 같이 느껴졌다. 구체적으로 한 줄 한 줄 짚어주실수록 “이쯤 하면 잘했어.”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아쉬움도 커졌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다시 되물으셨다.


“제가 왜 칭찬을 해드린 것 같나요?”


음.. 격려해주고 싶으셔서일까요?


“기초를 튼튼히 하라는 뜻이에요. 지금 배우고 있는 기초들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머리를 텅하고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기초 문제는 빠르게 건너뛰고 싶어 하면서, 더 어려운 문제만 풀고 싶어 하는 내가 보였다. 그제야 선생님이 앞서해 주셨던 칭찬들이 마음에 소중하게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가지 말고 바르게 가자. 상담 공부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지금 단계에서 내가 해야 하는 건 어렵고 멋진, 더 깊은 해석을 해내는 게 아니다. 기초를 잘 쌓아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더 이상 기본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기초를 쌓는 게 느린 일이 아니라 기쁜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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