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 참 쉽다
가을 환상의 커플, 군고구마와 커피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지금 참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람마다 행복의 스위치를 갖고 있다는데, 나는 군고구마다. 군고구마는 겨울이 제철이라지만, 갓 수확한 가을 햇고구마를 프라이팬에 구워 먹어 보면, 가을 찬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역시 고구마의 제철은 가을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류준열이 연기한 재하는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고 했지만, 쌀쌀한 날에는‘온기가 있는 음식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고 말하고 싶다. 뜨거운 고구마를 오른손 왼손 옮기며 껍질을 벗기다 보면, 손끝에서 시작된 온기가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한입 베어 물고 뜨거워 ‘호호’ 거리다 보면, 내 마음의 상처에 ‘호호’ 거리며 치료되는 거 같다.
가을은 아직 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지 않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해 먹는다. 갓 수확한 가을 고구마를 프라이팬에 구워 군고구마를 만드는데, 나는 꼭 밤고구마로 한다. 목이 막힐 것 같은 먹먹함과 듬직함이 좋아서다. 밤고구마를 한입 가득 먹고 넘겼을 때의 먹먹함처럼, 가을 찬바람이 불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이 우울함이, 군고구마 때문인 양 핑계 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군고구마를 넘기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먹먹함이 쑤욱 내려간다. 구수한 맛과, 쓴맛이 입안에서 하나가 된다.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두 가지 맛이 묘하게 어우러져 꿀꺽 목을 타고 내려간다. "아! 맛있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낯설어진 행복이, 어느새 익숙하게 스며든다. 자고 나면 어떤 내일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군고구마와 커피 한잔으로, 오늘은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