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로부터 탈출

망해도 잔망

by 강민정



*

“너 파마했어?”

이 질문은 내가 살면서 백번은 더 들은 말이다. 이제 하도 지친 나머지 이렇게 응수해 준다.
“웬 시비야?”

몇 년을 본 사인데 아직도 내 곱슬머리를 몰라주는 게 서운해서 틱틱거린다. 감히 잠자던 내 머리털을 건드리다니.



내게 곱슬머리는 콤플렉스 그 이상인데, 뭐랄까 태초에 존재부터 잘못되었다는 감각 같은 거다. 7살 때쯤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은 남들과 다르다는걸. 반 친구들은 모두 생머리였는데, 나는 가만있어도 잔머리가 미친 듯이 부풀어 올랐다. 습기 찬 날에는 사자 갈기처럼 방방 떠서 엄마가 꽁지머리로 짜매줘도 소용이 없었다. 잔머리들이 내 이마와 귀 쪽을 가리며 얼굴까지 우그러져 보이게 했다. 책상을 내려다볼 때면 꼭 머리카락도 세트로 같이 보이곤 했다. 한 가닥씩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머리가 컨트롤 안 되니 방 정리도 엉망이었다. 청소를 잘 안 하는 성향도, 알림장을 까먹고 덜렁대는 것도 다 머리 탓.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애들과 잘 못 어울렸던 것도 모두 곱슬 때문이다. 어린애들은 자기들과 다른 특성을 보면 이상하게 여겼다. 곱슬머리는 눈에 확 튀고 잘 보이는 특성이라서 더 소외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애들이 놀리면 마음도 함께 구부러지는 것 같았다. 10살쯤엔 <해리포터> 소설책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내 별명은 ‘해그리드’가 되었다. ‘헤르미온느’가 아니라.



사람에겐 머리빨이란 게 있는데 나는 머리빨이 없다 못해 마이너스였고, 본판인 얼굴로 딴 점수도 머리가 다 깎아 먹었다. 예쁜 긴 생머리 연예인과 친구들을 볼 때마다 박탈감을 느꼈다. 곱슬은 뭐든 투박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남들에게 “아, 곱슬머리 걔?”라고 불릴 때면 다른 특징들은 지워지고 외모만 남겨진 것 같았다. 내 원망은 갈 곳을 잃고 위로 거슬러 갔다. 애초에 곱슬 유전자를 물려준 아빠, 그리고 할머니, 증조부모, 윗대 선조들. 대체 이 망할 유전자의 시초가 누구였을까. 그를 찾아내 저주하리라. 어쩌면 인도 허황후처럼 외국에서 건너온 인물일 수도 있다. 곱슬 인구가 많은 서양에서 태어났다면 괜찮았을 텐데…… 직모가 많은 동북아, 한국에서 태어나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니.



머리를 펴는 매직 시술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미용 도구와 약품도 내 곱슬기를 잠재우진 못했고, 이틀 만에 원상 복구돼서 돈만 수십만 원 날렸다. 이후로 미용실이란 머리 자르러만 가는 곳이 됐다. 그곳의 원장이나 실장들은 내 머리를 볼 때면 한숨을 쉬거나 타박을 했다.

"어머, 손님. 머릿결 관리 너무 못하셨다. 매직해 보는 게 어때요?"


내가 안 해봤겠어요? 바를 수 있는 모든 헤어 제품을 다 써보고 대학생 땐 생머리 가발까지 써봤는걸요. 어디 코스프레하러 가는 사람 같아서 관뒀지만... 아니 우주도 가는 과학 시대에 왜 곱슬은 못 고칠까요? 먼 우주의 물질처럼 심오하게 구불거리는 머리는 내 인생에 펼쳐질 굴곡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머리 한 움큼을 부여잡고 계속 쓰다듬는 버릇이 들었다. 그러면 조금 펴지기라도 할 듯이.




*

곱슬은 머리에서만 나는 건 아니었다. 또 새로운 게 생기고 있었다. 그맘때쯤 생각나는 여름의 장면들이 있다. 춘추복과 하복을 입은 애들이 반반 섞이더니, 우리 반은 어느새 하복 천지가 됐다. 나는 하복 상의 단추를 풀고 안에 티셔츠를 입어서 레이어드 패션을 완성했다. 선풍기 아래에 앉은 아이들은 책상 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선풍기를 껐다 켰다. 점심시간에 축구하고 온 반 남자애들의 땀 냄새가 진해졌고, 여자애들이 얼굴 하얘지도록 바른 선크림은 콧잔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내 등골에도 땀이 흐르는 걸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이는 6월이었다.


월수금 2교시엔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강의 중에 칠판을 손으로 쾅쾅 두드리는 열정적인 교사. 하필 그녀는 짧은 반팔을 입었고, 겨털은 수북했다. 반 애들은 웃음을 참기에 바빴다. 특히 앞줄 애들은 서로 빨개진 얼굴을 쳐다보면서 키득거렸다.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팔뚝과 털을 휘날렸다. 영어 시간 알파벳 모양으로 그려지는 지휘 같았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면 애들이 낄낄댔다. “오늘 더 많아진 거 같지 않냐?” “폭포수 같애.” “아마존 여전사다.” 아직 겨털이 한 번도 안 나본 것처럼 굴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중2, 열다섯 여학생인 내 겨드랑이에도 그것이 한창 자라고 있었기에. 없애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지, 제모 크림을 바르면 되는 건지, 그건 얼마나 아플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엄마, 겨털 어떻게 없애?” 하면 엄마는 “음, 나는 안 깎는데? 너도 그냥 있는 채로 살아.” 했다. 다른 애들을 관찰했지만 나처럼 많아 보이는 여자애는 없었다. 쟤는 눈썹도 얇고, 쟤는 다리털도 없네 부럽다. 오직 털, 털! 만이 눈에 보였다. 내 털은 더 자라 반팔 밑으로 삐져나오려 했다.


어느 날 교실 뒤편 거울을 보며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팔을 너무 올렸나 생각이 들 때쯤, 반 남자애 김준희와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홱 고개를 돌렸다. 뭐야, 찝찝하게. 목격자를 처단하고 싶었지만, 내 교복 반팔만 밑으로 쭉 당겼다. 다음 교시엔 뒷자리 남자애가 내 등을 샤프 끝으로 콕 찔렀다.

“아씨, 왜?”

“야. 너도 겨털 있다며? 개웃겨.”

“뭐? 누가 그래.”

“좀 깎고 다녀라.”


나는 뒷자리 놈을 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옆 분단 김준희를 째려봤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걸 소문내다니! 이글거리는 내 눈을 김준희는 피했다. 이후로 체육 시간이나 리코더 부는 음악 시간에 유심히 그의 드러난 살을 지켜봤지만 겨털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고, 남자 하복 바지는 길어서 다리털도 안 보였다.


하루는 여성 잡지 ‘쎄씨’를 읽고는, 로드샵에서 제모 크림을 샀다. 방바닥에 앉아 땀을 삐질 흘리며 사용법을 읽었다. 크림을 겨드랑이와 다리에 덕지덕지 바르고 심호흡을 한 다음, 털이 붙은 테이프를 쫙 뜯었다. 아 따거! 여름이 올 때마다 이 짓을 해야 한다면…… 난 망했다. 곱슬 머리카락도 뜯고 싶었지만 참았다. 며칠은 벌긋해진 종아리와 겨드랑이에서 화한 감각이 느껴졌고 선풍기 바람에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김준희와 가끔 눈이 마주치면 나는 티 나게 쌩하고 지나쳤다. 화장실을 같이 가는 친구는 냉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시기엔 학교 매점에 매일 갔다. 아이스크림 종류는 몇 개 없었지만 우리의 유일한 피서지였다. 한번은 쉬는 시간에 줄을 서는데 간식을 사고 나오는 김준희랑 마주쳤다. 걔는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뽕따 두 개 중 하나를 내 손에 던졌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물었다.

“너 쟤한테 뭐 해줬어? 왜 아이스크림을 주는 건데?”


해준 거라면…… 좋은 구경거리를 준 거겠지. 운동장으로 걸어가는 찰나에 아이스크림이 녹으려고 해서 벤치에 앉아 급하게 뜯었다. 꽁다리를 꺾어 친구의 빠삐코 꽁다리와 바꿔 먹었다. 벤치는 나무 아래에 있어 빼곡한 잎새들 틈으로 햇살을 쬐었다. 여름만의 부끄러움과 짜증도 조금 녹아 내렸다. 하늘 맛의 소다 색으로.


그 후로 김준희 얼굴이 종종 떠올랐다. 털 없이 깨끗하고 해사한 얼굴. 걔는 나한테 왜 아이스크림을 준 걸까? 며칠 후 김준희는 드디어 내게 말을 걸었다. 내 눈을 안 쳐다보고 책상 모서리를 본 채로. 혹시 오해하는 거면 자기가 소문낸 거 아니라고. 그럼 날 왜 쳐다봤어? 따져 물으려다가 알겠다고 얼버무렸다. 그 후론 접점이 없어서 계속 어색하게 피해 다녔고, 나는 종종 겨드랑이를 밀었다. 매점에 다닐 때마다 거울을 보았지만 어쩐지 걔와는 잘 마주치지 못했다.


개학하고 더위가 물러갈 무렵이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저녁쯤 친구 몇 명과 교실에서 분신사바를 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하고 귀신에게 물었다. 나와 친구가 맞잡은 손이 천천히 미끄러지며 원을 그렸다. 구불거리는 선으로 넉넉하게. 내 마음은 구불거리지 않고 제대로 전달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그만 손을 삐끗해서 선이 원 밖으로 탈출해 버렸다. 나와 친구는 어두운 교실 밖 복도를 걸으면서 내내 찝찝해했다. “그거 무슨 의미일까?” “너가 일부러 그랬지?” “아니라니까.”




물론 이때는 전혀 몰랐다. 분신사바 때문인지 김준희와는 영 멀어진다는 것을, 먼 훗날 내 구불거리는 털들을 좋아해 주는, 해사하고 털 많은 남편이 생긴다는 것을, 뽕따 같이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건강을 생각해서 안 먹게 된다는 것을, ‘모아나’ 라는 예쁜 곱슬머리 레퍼런스가 나타난다는 것을, 훌라 댄스를 배우며 내 몸을 좀 더 긍정하게 된다는 것을. 아무것도 몰랐던 사춘기 때는 모든 굴곡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었다. 곧게 뻗은 것들만을 갈망했다. 곱슬 털들이 정리 안 되는 것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는 것도 어려웠고, 미래에 발명될지 모를 곱슬 치유 약만을 원하고 기다렸다. 10대의 나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은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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