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도 잔망
나는 꽉 막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코와 소화기관도, 혈액순환도 다 막혀있기 때문이다. 비염 때문에 공기가 온전히 들어왔다 나가는 것, 편하게 호흡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휘어진 코뼈가 주원인이라 수술해야 나아진다는데, 어차피 재발이 높다 해서 포기했다. 산소가 적으니 쉽게 피로해지고 머릿속도 희뿌연 안개로 막힌 듯하다. 요가 유튜브 같은 데서 상쾌한 공기를 훅 들이켜세요- 를 따라 하면서도 갸우뚱한다. 원래 이런 느낌인가? 뼛속, 내장까지 뻥 뚫린다는 묘사를 체험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고산 지대에서 태어나 고산증에 걸려있거나 심해에 살고 있는 인어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외계에서 왔기 때문에 지구의 공기와 싱크가 안 맞는걸 지도.
최초의 기억은 4살 때의 구슬이다. 어릴 때는 반짝이고 어지러운 것들을 좋아했다. 야광별, 매직아이, 만화경, 반짝이 홀로그램 스티커, 그리고 구슬. 동생이 태어나기 얼마 전쯤, 아이가 나 혼자일 때. 엄마 아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침대 옆 바닥에 요와 이불을 깔고 잤다. 웬일로 그날은 공주 옷을 입고 누웠다. 롯데월드에서 팔던 연분홍색, 퍼프 소매에 실크 소재의 드레스를 엄마가 사줬었다. 그 요정 옷을 입고 있는 게 좋아서 벗기가 싫었다. 그 날따라 휘황찬란한 걸 많이 봐선지 잠은 안 오고 똘망똘망 또렷해지기만 했다. 내 몸은 쪼만한데 벌써 생각이 자라나다니. 천장을 보며 어둠에 눈을 익혀갔다. 높이 솟은 옷장, 화장대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이 안 오니 심심해서 만질 게 필요했다. 원피스를 쓸어보니 구슬 장식이 잡혔다. 진줏빛 펄이 살짝 섞인 회백색 구슬.
매끈한 구슬을 옷에서 떼어내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굴리며 탐욕스럽게 보았다. 쪼그만 것에 초점을 맞추느라 눈이 사시로 몰릴 지경이었다. 손으로만 만지는 건 뭔가 부족했다. 입에 넣어볼까 귀에 넣어볼까 하다가 코에…… 그만 구슬이 미끄러졌다. 손이 작고 엉성해서 그 것을 놓치고 말았고, 콧구멍으로 쏙! 왼쪽 코가 막히며 비강 안쪽으로 (그땐 설명할 수 없었지만) 꿀렁하고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간질간질하고 낯선 느낌에 으앙-하고 울어 젖혔다. 놀란 엄마 아빠가 깨서는 무슨 일인지 살폈다. 나는 코 안쪽을 가리켰고, 부모님은 딸을 응급실에 데려 갔다.
병원 건물은 온통 하얬다. 의사 어른 남자와 간호사 여자는 우는 나를 달랬다. “공주 옷 입고 왔네?” 하는 다정한 말투에 안심이 됐다. 방심한 사이 간호사가 내 팔을 잡았고 의사의 얼굴은 무서워졌다. 그는 핀셋으로 내 코를 깊이 후볐다. 쉭쉭 소리가 들리도록. 구슬 한 개는 허무할 정도로 금방 쑥 나왔다. 콧물에 오염이 된 그것은 빛을 잃은듯 보였고 나는 이제 그걸 갖고 싶지 않아졌다. 구슬은 원하는 이 없이 병원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다음 장면, 엄마 아빠가 아마도 병원비를 내는 동안 난 의자에 앉아 바닥을 봤다. 두 볼엔 눈물 자국이 말라서 버짐처럼 일어나있었다. 예쁜 구슬이 날 아프게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내 콧속에서 빠져나갔다는 것도. 사실은 빠져나가지 않고 안으로 깊이 들어간 것 같았다. 의사가 발견 못했던 거야. 어린 나는 콧구멍을 무엇이든 지나가는 통로로 이해했다. 구슬은 코를 지나 뱃속에서 영원히 녹지도, 흩어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도 얼마간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다고 어디서 본 것 같다.
나는 그 조악한 구슬과 화장대에 놓여있던 엄마의 귀고리를 비교해보았다. 옷에 달린 구슬에 비하면 엄마 귀고리는 더 크고 진짜 진주 같았다. 우리 엄마는 예뻤고 그 귀고리를 달면 한층 반짝이고 비싸 보였으니까. 만약 엄마의 진주를 내 코 안에 떨어트렸다면 뭐가 달랐을까? 점막에 바로 흡수되고 나와 한 몸이 되어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을까? 내 구슬은 가짜 진주여서 이물질로 느껴졌던 걸까? 나는 이제 진짜를 갖고 싶어졌다. 코에 빠질 걱정 없이 안전하고 더 큰 것을.
내가 성인이 됐을 무렵 엄마는 비밀을 하나 말해주었다.
“원래 너 전에 아이가 있었어. 허니문 베이비로 아들이 생겼는데 준비가 안됐어서 지웠거든. 근데 얼마 안 가서 너를 가졌고 얘는 낳아야겠다 싶어서 낳은 거지.”
당황한 나는 그렇구나- 정도로 대꾸했다. 엄마는 그 얘기를 왜 했을까? 말하지 않고 부부만 알고 있기엔 죄책감이 들었을 수 있다. 아니면 나는 운이 좋게 태어난 거니 감사하라고? 물론 그런 질문들로 엄마의 상처를 헤집고 싶진 않았다. 지우지 않았다면 나보다 먼저 나왔을, 영원히 태어나지 않은 오빠. 그는 나보다 오빠인가 아니면 내가 세상 선배인가. 사실 상관없는 일인데 기분이 묘했다.
아무튼 그 후로도 종종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살아남은 존재로서의 이물감 또는 우연히 존재하는 느낌. 그가 예정대로 태어났다면 나는 없었을 테니 보너스 같은 삶인 걸까. 왠지 오빠는 태어났다면 나보다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다. 그는 진짜 귀한 존재였고 나는 가짜일지도 몰라. 어쩌면 그는 고래 뱃속 같은 엄마 배 안에 아직 세포로써 존재할 수도. 그의 누적된 일부를 포함해서 내가 태어난 것일 수도. 한번은 무당에게서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너 위에 오빠가 있었네. 걔가 니 어깨에 가끔 앉아.” 나는 움츠린 어깨를 털어내면서 그가 나를 지켜줄지 미워할지 궁금해했다.
은밀한 비밀 같은 건 어떤 이에겐 아무것도 아니고 어떤 이에겐 남는다. 엄마는 그저 좀 부대껴온 것을, 말할 상대가 없어서 나한테 전달했다. 나는 그걸 또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럴 대상이 없었다. 뭐 누가 있더라도 딱히 말하진 않았겠지만. 항상 이런 식으로 나만 부대낀다. 인풋만 있고 아웃풋으로 나가질 못하는 영원한 정착지 같다. 기차는 종착역에 다다르고 정비 후 다시 출발하지만 내가 다시 출발하는 시간은 묘연하다. 녹슬고 멈춰있는 채로 손에 쥔 걸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어른이 된 나는 진주를 꽉 잡고 있는 조개처럼, 뭔가를 토해내거나 가래를 잘 뱉지 못한다. 술을 많이 먹어도, 크게 체해도 토하지 못하고 안에서 꽉 붙들고 있다. “너는 왜 토하지 못해? 목이랑 배에 힘줘서 뱉어봐!”라고들 주변에서 말한다. 다들 게워 내는 방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내게 그건 본능적인 행위가 아니라서 배워야 하는데, 남이 토하는 걸 따라 해보려 해도 잘 안된다. 나 한정, 본능이란 건 놓는 것이 아니고 붙잡는 것이다. 절벽 끝에 매달린 양손을 놓지 못하듯 뭐든 필사적으로 잡고 있다. 구슬이 빠져나간 콧구멍엔 만성 비염이 자리 잡게 됐으니, 아직 그 구멍은 막힌 셈이다. 언젠가 정체된 통로를 확 뚫어서 틈을 벌리고 싶다. 그렇게 이물감 없이 소통하고 삶에 녹아들어 편해지고 싶다. 어떤 존재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일 거라고 편히 생각해 버리고 싶다. 굳은 손가락을 핀셋으로 하나씩 떼본다. 하나,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