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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May 04. 2022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 1

덴마크 옛사람들이 전승한 ‘버림받은 남자 인어’ 이야기

안데르센이 ⟨인어 공주⟩를 쓸 때 저본으로 삼은 설화들을 찾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이야기가 덴마크의 민요인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이다. ⟨인어 공주⟩가 푸케의 ⟪운디네⟫, ⟪아라비안나이트⟫에 실린 ⟨바다에서 태어난 쥬르나르⟩의 영향을 받은 사실은 알았지만, 덴마크 민요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와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인어 공주⟩(1837년)를 쓰기 몇 년 전에 안데르센이 인간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 인어 이야기를 시(1833년)와 희곡(1834년)으로 발표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안데르센이 유명한만큼,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의 영역본이 있을 법도 한데, 인터넷을 아무래 검색해보아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는 민요로 전승된 이야기로서, 19세기 유럽의 남성 시인들에게 무척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옌스 바게센, 애담 욀렌슐레게르, 조지 바로우, 매슈 아놀드 같은 덴마크와 영국의 유명 시인 들이 그 민요에 영감을 받은 시를 썼다. 이러한 시인들의 시를 영역한 텍스트는 쉽사리 구할 수 있었는데, 안데르센 시의 영역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안데르센의 시와 희곡이 당대에 모두 졸작 내지 망작으로 평가받아서 아예 번역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안데르센이 시와 희곡으로 쓴 ‘남자 인어’ 이야기를 읽지는 못했지만, 안데르센의 자서전에는 유년기에 들었던 민요의 줄거리가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다. [1]


아그네테가 해변가를 외롭게 방황하고 있을 때 남자 인어가 파도에서 솟구쳐 그녀를 달콤한 말로 유혹했다. 그녀는 인어를 따라서 바다 밑으로 내려가서 일곱 해를 살았고, 일곱 아이를 낳았다. 어느 날, 아그네테가 요람 옆에 앉아 있을 때 교회 종소리가 바다 깊은 곳까지 울렸다. 그녀는 교회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아그네테는 윗세상으로 가려고, 기도와 눈물, 그리고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으로 인어 남편의 마음을 흔들었다. 인어 남편은 아이들을, 특히 요람에 있는 갓난아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나서, 그녀의 귀와 입을 막은 후 위로 솟구쳐 해변가로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아그네테가 교회로 들어간 순간, 모든 성스러운 상들이 벽으로 몸을 돌려 깊은 바다에서 온 죄의 딸을 외면하였다. 그녀는 너무도 두려워서 바닷속 집에서 어린아이들이 흐느껴 울어도 돌아가지 않았다. 


안데르센이 언급한 민요의 줄거리가 너무 간단해서 여러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그네테는 외로워서 남자 인어의 유혹에 넘어간 것일까? 일곱 해 동안 일곱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그네테는 바다 세계에서 행복했을까? 갑자기 교회 종소리가 왜 바닷속까지 울린 것일까? 아그네스가 남편과 아이들을 저버리고 홀로 지상에 남은 것은 하나님이 벌하실까 두려워서인가? 우리나라 여자였다면 아이들의 울음에 냉담하지 못했을 텐데, 유럽 여자들은 모성애가 한국 여자들과는 다른 것일까? 따위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의 결혼식 장면을 그린 천장 프레스코. 덴마크 롤란섬 푸글상 저택(Fuglsang Manor) 소장.

 

여러 자료를 찾다가 1818년에 덴마크 민속학자 유스트 티엘레(Just Thiele)가 ⟪덴마크 민속⟫에 산문으로 소개한 각편을 읽을 수 있었다. [2]


옛날에 유트란드 오르후스 지방에 있는 프리센보 근방에 어떤 부부가 살았다.  부부는 그레테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부부는 딸에게 모래를 좀 가져오라고 바닷가로 심부름을 보냈다. 바닷가에서 그레테가 앞치마를 씻고 있을 때 남자 인어가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염은 소금 바다보다 더 초록빛이었고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인어는 소녀에게 상냥하고 정겨운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이리 오렴, 그레테. 나는 네가 원하는 만큼 금과 은을 줄 수 있어.” 

“그거 나쁘지 않은데. 우리 집에는 그런 것 없어.” 

그레테가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자, 인어는 손을 잡고 그녀를 바다 밑으로 데려갔다.


 어느덧 바닷속에서 세월이 흘러서 그레테는 다섯 아이를 가진 어머니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종교에 대한 모든 기억을 거의 잊어버렸을 즈음, 어느 축일 아침 그녀가 무릎에 막내 아이를 앉혀 놓고 있을 때, 저 먼 위에서 교회 종소리가 울렸다. 불안감이 엄습해서 그레테는 교회에 가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그레테가 아이들 곁에 앉아서 길게 한숨을 쉬자 인어는 아내의 고통이 느껴져 왜 그렇게 우울한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레테는 인어를 구슬려서 한 번 더 교회에 가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인어는 아내의 눈물과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그녀를 다시 육지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레테에게 서둘러 아이들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엄하게 명령했다.  


교회에서 그레테가 설교를 듣고 있는데, 인어가 문밖까지 와서 “그레테! 그레테!”라고 외쳤다. 그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지만, 그녀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교가 끝났을 때 인어가 다시 교회에 와서 “그레테! 그레테! 빨리 오지 않을래?”라고 외쳤지만, 그녀는 꼼작하지 않았다. 인어가 다시 한번 와서, 세 번째로 외쳤다. “그레테! 그레테! 빨리 오지 않을래? 네 아이들이 너 때문에 울고 있어.” 그래도 그녀가 오지 않자, 인어는 몹시 울면서 바다 밑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레테는 죽 부모와 함께 지내면서, 인어 남편이 못생긴 어린아이들을 돌보게 하였다. 지금도 종종 인어의 울음과 한탄이 깊은 바다에서 들려온다. 


이 이야기는 안데르센이 소개한 민요 개요보다는 많은 정보를 주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아그네테가 아니라 그레테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레테가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는 것, 인어가 재물과 용모로 그레테를 유혹한 것, 그레테가 현실 자각을 한 것이 교회 종소리 때문인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인어 남편이 세 번이나 찾아와서 애타게 불렀는데도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은 그레테의 태도가 아리송했다. 안데르센이 기억하는 민요와는 달리, 교회의 성스러운 상들이 그레테를 보고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는데도, 부모가 그녀를 붙잡지도 않았는데도, 그녀는 지상에 남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레테의 생각인지 구연자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심지어는, 이류교혼으로 태어난 자기 아이들을 ‘못생겼다’고 묘사하였다.


민속학자  티엘레가 소개한 이 각편은 내게 안데르센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했다. 특히, 안데르센과 티엘레가 소개한 이야기에는 공통으로 통편집된 시간이 존재한다. 아그네테(또는 그레테)는 다섯 또는 일곱 아이를 낳을 정도로 인어 남자와 오랜 세월 함께 살았지만, 그 이류교혼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그 낯선 세계에서 자기와 다른 존재와 살면서 아그네테는 행복했던 것일까?



[1] The True Story of My Life: A Sketch, Hans Christian Andersen, trans. Mary Howitt, 1847, 104.

[2] The Poetry Of Matthew Arnold by C.B. Tinker and H.F. Lowry,  1940, London, Oxford UP,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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