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서사, 여자의 서사
내가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옛이야기의 서사에는 답을 특정할 수 없는 틈새가 많아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옛이야기가 단순한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공부할 거리가 있나 하는데, 내게 옛이야기는 수수께끼, 미스터리, 비밀스러운 상징 따위로 가득한 숲이다. 자료 조사를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옛이야기이다. 완성도가 높은 문학작품은 독자를 수동적인 감상자로 만들지만, 훌륭한 옛이야기는 독자를 제2의 작가로 만든다. 옛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독자나 청중은 자신의 심리와 삶의 체험을 이야기에 투사해서 그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받아들인다. 모범답안이 없다는 것이 옛이야기를 공부하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어려움이기도 하다.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란 민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사는 간단하지만, 디테일이 조금만 달라져도 해석이 확연히 달라진다. 18세기와 19세기에 덴마크와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된 이 민요를 전승한 가수는 대부분 여자였다. 하지만 그것을 시 또는 연극으로 개작한 작가들은 거의 모두 남자들이었다. 여자 민요 가수들의 서사와 남자 시인들의 서사는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같지 않다.
19세기 초에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를 개작한 덴마크의 남자 시인들은 다른 세계에 속한 두 남녀의 사랑과 행복, 그들을 갈라놓은 기독교 신앙, 여자의 갑작스러운 변심, 죽음 또는 자살에 초점을 맞추었다. 덴마크 시인들은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의 이류교혼을 비극으로 끝맺었지만, 그들의 바닷속 결혼 생활을 행복과 사랑이 충만한 삶이었던 것으로 서술한다.[1]
두 해가 넘도록
아그네테는 그곳에 살았네.
그들은 서로에게
따스하고, 지칠 줄 모르는, 성실한 사랑을,
그러한 사랑을
베풀었네.
(옌스 바게센)
팔 년의 행복한 세월 동안
어여쁜 아그네스는 초록빛 바다 물결 아래 살면서
인어 남편에게 아름다운 일곱 아이를 안겨주었네.
(애담 욀렌슐레게르)
영국 시인 조지 바로우의 ⟨배신당한 인어⟩(Deceived Merman, 1826년)라는 시에서도 이류교혼을 비슷하게 서술한다. 아그네스가 지상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그네스, 아그네스, 내 사랑스러운 딸아, 그 긴 세월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니?”하고 묻는다. 어머니의 질문에 아그네스는 “저는 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인어와 함께 사랑과 기쁨 속에서 살았어요.”라고 대답한다. 남자 시인들은 인간 여자와 인어 남자의 결혼 생활이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상상하였다. 아그네스가 지상에서 갑작스럽게 변심한 것은 교회에 갔을 때 성인들의 상이 얼굴을 돌리는 것을 보고 느낀 종교적 두려움과 어머니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남자 시인들과는 달리, 덴마크의 여자 민요 가수들은 아그네테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그 어떤 구체적인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연 아그네테의 결혼 생활이 행복한 것이었는지 아닌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스벤 그룬트비(Svend Grundtvig)라는 덴마크 민속학자가 1882년에 출간한 민요의 영역본 가사를 보면[2], 아그네테의 바닷속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했던 것 같지 않다.
이 민요에서 아그네테는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매력적인 남자 인어에게 반해서 바다 세계로 내려가, 8년 동안 인어와 함께 살면서 7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는다. 인어 남편은 영국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고향의 교회에 가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몇 가지 금기를 부여한다. 교회에 들어갈 때 붉은 금 신발을 신지 말고, 교회에서 금발 머리를 풀지 말고, 교회 현관으로 걸어갈 때 주홍빛 가죽 아래에서 웃지 말고, 교회 마루를 걸어갈 때 어머니가 앉은자리로 가지 말고, 목사가 하나님을 부를 때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금기를 부여한다. 하지만 아그네테는 지상에 이르자마자, 인어 남편이 부여한 그 모든 금기를 곧바로 위반한다. 그리고 인어 남편이 교회에 나타나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자, 아그네테는 단호하게 자기 의사를 밝힌다.
아그네테, 아그네테, 나와 함께 바다로 가자.
당신의 어린아이들이 당신을 그리워해.
그래, 그럼, 그리운 만큼 그리워하라고 해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오, 큰 애들을 생각해 봐, 작은 애들을 생각해 봐.
무엇보다 요람에 누워 있는 막내를 생각해 봐.
아니, 나는 큰애들도, 작은 애들도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 요람에 누워 있는 막내를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이 민요에서 인어 남편은 아내가 결별을 선언하자 분노해서 세상을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는다. 아그네테는 어둠 속을 헤매면서 어머니의 농장으로 가려다 길을 잃고 다시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후, 아그네테는 바다 밑에서 하프로 슬픈 노래를 연주하면서 초록빛 대지도 자기 자식도 볼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산다. 어떤 민요에서는 인어 남편이 자신을 배반한 아내를 죽이기도 하고, 어떤 민요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결별을 선언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덴마크 민요를 연구한 린다 테일러(Lynda Taylor)는 ⟨아그네테와 남자 인어⟩ 유형을 수용자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로 보았다. 하지만 그가 특별히 역점을 둔 해석은 이 노래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눌려 살았던 여성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3] 19세기 유럽에서도 옛 여성들은 가난과 노동에 시달리면서,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한 후에는 남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삼종지도(三從之道)로 요약할 수 있는 옛 여성의 삶은 비단 유교문화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테일러는 아그네테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인어를 따라 바다 세계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육지 여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절망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테일러는 아그네테가 남편과 자식을 버린 것이, 오늘날의 시각에는 이해하기 힘든 비정한 모성으로 비칠지 몰라도, 당대의 덴마크 청중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승리로 받아들여졌을 거라고 보았다. 아그네테가 부모와 교회를 등지고 택했던 새로운 삶은 아버지 대신에 남편의 뜻에 순응해야 하는, 자유와 출구가 없는 여성의 삶이었던 것, 가부장제 가치관과 기독교의 도덕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아그네테는 '돌아온 탕자'에 비유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지적하였다. 아그네테의 일탈과 귀환을 담은 민요는 낭만적 사랑과 자립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경고라고 보았다.

✽ 영문판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표지 그림의 서지 정보: Sjökungens drottning (1911) by John Bauer, published in Bland tomtar och troll to illustrate Helena Nybloms retelling of the ballad.
[1] Heiner, Heidi Anne. Mermaid and Other Water Spirit Tales From Around the World. Kindle Edition.
[2]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민요를 현재도 ‘비를레’ (Virelai)라는 그룹이 전승하고 있었다. https://youtu.be/-aL2VCf7oR4
영어 가사는 ⟨lyricstranslate.com⟩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lyricstranslate.com/en/agnete-og-havmanden-agnete-and-merman.html
[3] Lynda Taylor, “The Agnete Ballad of Denmark: Cultural Tool or Protest Song?,” Straubhaar, Sandra Ballif. Ballads of the north, medieval to modern. Michigan: MIP, 2019. 160~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