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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Aug 31. 2022

경복궁은 자금성보다 훌륭하다.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경복궁 3

자금성의 의도에 휘둘리다.(https://brunch.co.kr/@storybarista/30)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경복궁은 그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는 자금성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요? 경복궁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하나하나 짚어가 볼까요?


첫 번째는 자연스러움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니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따뜻함과 겸손함에 있습니다. 경복궁은 인공적인 손질을 가한 대칭의 구도가 아닌 비대칭, 비정형을 선호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그러하듯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비대칭인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도시를 둘러싼 자연 지형과 궁전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건축물은 외국에선 의외로 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연과 하나가 된 경복궁은 조용히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를 위압하는 것이 아니라 걷고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 편안히 휴식하게 합니다.  


경복궁은 자연의 일부인 양 그 속에 스며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두 번째로는 경복궁이 매우 효율적으로 운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온돌, 아궁이, 굴뚝이 설치된 겨울용 전각과 마룻바닥으로 된 여름용 전각을 구분해 땔감의 낭비를 막았습니다. 왕의 사무실인 편전(便殿)만 해도 여름철 사용하는 마룻바닥으로 된 사정전과 함께 사정전 양 옆으로 사정전보다 약간 작은 규모의 겨울용 사무실, 만춘전과 만추전이 온돌로 지어져 있습니다. 또 이들 전각들은 각각 분합문(分閤門,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하여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을 사용해 여름에는 문을 들어 올려 통풍이 잘 되도록 한 반면 겨울에는 내려서 차가운 바람을 막았습니다. 효율적이고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여름철에는 원활한 통풍을 위해 분합문을 들어 올려 등자쇠에 걸어둡니다.


세 번째는 생활의 편의성입니다. '경복궁 배치도', '북궐도', '궁궐지' 등에 의하면 경복궁에는 다수의 화장실이 존재했습니다. 2021년에는 동궁전 권역에서 대형 화장실 유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왕이 아닌 궁궐 직원들이 사용하던 공중화장실이었지요. 용변을 보면 아래에서 분뇨와 물이 만나 정화되는 시스템으로, 물이 들어오는 곳보다 나가는 곳을 높여 잠시 머물게 하면서 분뇨를 자연 발효시키는 친환경 정화시스템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자금성에도 베르사유궁에도 화장실은 없었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베르사유궁에서 패션의 용도가 아니라 옷자락에 분뇨가 묻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이 처음 고안됐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요.        

경복궁 동궁전 권역에서 발견된 대형 화장실 유구입니다.(문화재청 제공)


네 번째로는 예술성입니다. 개인적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단연코 하늘을 향해 살포시 들려 올라간 단아한 지붕의 곡선화려한 단청 문양, 그리고 아기자기한 꽃담을 꼽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산 능선과 지붕의 용마루(건축물의 지붕 중앙에 있는 주된 마루)는 그 곡선이 매우 닮았습니다. 처마가 그려내는 곡선도 그렇습니다. 과장됨이 없으니 보고 있으면 그저 따뜻하고 푸근합니다. 미적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곡률입니다. 중국 창장강(양쯔강) 이남의 하늘을 찌를 듯 과장되게 들어 올려진 처마나 일본의 무뚝뚝한 직선 처마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청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창적이고도 예술적인 장식으로, 오방색인 청, 적, 백, 흑, 황색을 기본으로 사용해 목재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을 말합니다. 궁궐이나 사찰, 서원 등 격식을 갖춘 건물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장엄과 예술의 목적 외에도 단청은 목재를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도 있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겠지요.  


한편 여성들이 기거하는 공간을 아름답게 꾸밀 목적으로 담장, 굴뚝, 합각(지붕 측면의 박공으로 ‘ㅅ’ 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각으로 합각지붕 위에 생기는 삼각형 벽의 윗머리) 등에 다양한 무늬를 넣어 장식한 것을 꽃담이라 부릅니다. 경복궁에서 여성들의 공간인 교태전(交泰殿, 중궁전)과 자경전(慈慶殿, 대비전)의 담장과 굴뚝을 치장한 꽃담은 보물로 지정될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단청과 꽃담은 경복궁의 가장 호사스러운 단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버선코처럼 살짝 들린 지붕의 처마와 화려한 단청이 잘 어울립니다.
자경전은 대비전으로 바깥 담장은 화사한 꽃담으로 꾸미고 굴뚝은 장수를 염원하는 십장생 문양들로 장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경복궁의 가장 큰 가치는 이상적이고 상식적인 정치, 이른바 덕치(德治)를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궁궐 건축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조선 개국 공신이자 경복궁 창건의 주역인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자신의 시문집인 <삼봉집(三峰集)>(1397)에서,     

  

궁궐을 사치하게 지으면 백성이 힘들고 나라의 재정을 손상시키게 되며,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위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않게 짓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라며 유교적 이상주의에 의해 건설된 경복궁에 대한 건축 철학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애민과 덕치의 마음을 담은 궁궐이 경복궁이었으니 철저히 스케일로 무릎을 꿇리려는 건축물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요. 이것이 바로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훌륭한 이유입니다.


궁궐에 민본(民本)과 인(仁)의 정치 철학을 담아낸 선조들의 마음을 되돌아보면서, 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크고 호사스러운 청사를 짓는데 열을 올리며 높은 부채와 민생은 나 몰라라 하는 지금의 세태를 경계하여야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짓는 건축물이 수십 아니 수백 년이 지나서도 의미와 가치를 저버린 부끄러운 건축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경복궁>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경복궁의 진면목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이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한일 병합 이후 일제에 의해 지속적으로 훼손당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까지 입으면서 전각의 90%를 소실하게 되었으니 원래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가 경복궁을 초라한 궁궐로 오해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해방 직후 경복궁의 모습입니다. 광화문을 밀어내고 조선총독부 건물이 위세 좋게 주인 노릇을 하고 있군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충격적이고도 가슴 아픈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이제 경복궁은 다시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1996년 조선총독부 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2022년 현재 약 40%가 회복되었고, 2045년에 76%의 복원을 목표로 발굴과 복원 공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더이상 자금성의 아류라 오해받지 않을 경복궁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경복궁> 연재를 마칩니다! 긴 글 읽고 응원해주신 브런치 작가님들과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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