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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Aug 17. 2022

자금성의 의도에 휘둘리다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경복궁 2

경복궁에 관한 흔한 오해(https://brunch.co.kr/@storybarista/29)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앞의 글에서 자금성의 높고 두꺼운 성벽이 실제보다 공간을 더욱 커 보이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자금성이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높이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숨겨놓았는지, 경복궁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볼까요?


붉은 담장, 황금색 기와는 자금성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습니다.


자금성 건물의 담장은 붉은색입니다. 빛남과 성대함을 나타내는 ‘화(火)’에 해당하는 붉은 기 도는 자색(홍)은 중국인들에게는 언제나 성공과 행운의 상징이지요. 담장의 붉은색과 대비를 이루는 황금색 지붕은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워낸 황금색 기와 덕분입니다. 유리처럼 반짝인다고 ‘유리와’라고도 부르지요. 황금색은 동서남북 네 방위의 중심인 ‘중(中)’에 해당하는 색입니다. 세상의 중심인 중국을 다스리는 천자의 색깔로 천자만이 황금색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붉은 담장과 어우러지는 황금색 기와는 전체적으로 자금성을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게 보이게 합니다.


반면 경복궁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천자의 색깔인 황금색은 피하고 검은색 기와를 올렸습니다. 점토로 모양을 만든 뒤 가마에서 구울 때 솔잎이나 소나무를 지펴서 표면에 탄소질을 고착시켜 검은색을 띠게 합니다. 대신 지붕 아래 목조 건축물에 청·적·황·백·흑의 5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은 단청을 칠하여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단아한 검정기와(오른쪽)에 비해 자금성 태화전의 황금기와(왼쪽)는 매우 화려합니다. 양쪽 모두 추녀마루 위에는 오종종 귀여운 잡상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습니다.


궁궐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은 정전입니다. 즉위식과 같은 국가의 중요 행사가 치러지고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거나 조회가 이루어지는 가장 핵심 건물이지요. 자금성의 정전은 태화전입니다. 먼저 태화전의 추녀마루를 한번 볼까요? 하늘을 향해 매가 날개를 펼친 듯 유려한 추녀마루에는 다양한 형태의 잡상(雜像, '어처구니'라고도 부릅니다)이 올려져 있습니다. 잡상은 악귀를 물리쳐 황제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합니다. 보통은 홀수로 올리는데 이 잡상의 수가 건물의 계급장입니다. 태화전 추녀마루에는 최고의 계급장인 11개(용머리 제외)의 잡상이 올려져 있어 건물의 권위를  더욱 높여줍니다. 맨 앞에 봉황을 탄 신선을 선두로 용, 봉황, 사자, 천마, 해마, 산예, 압어, 해치, 투우, 행십 순으로 놓이며 맨 뒤에 용머리를 놓습니다. 이들은 모두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상서로운 동물들이지요.   


경복궁의 정전은 근정전입니다. 모두 7개의 잡상이 일렬로 올려져 있습니다. 소설 서유기가 유행했던 탓인지 자금성 잡상의 멤버들과는 달리 맨 앞에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이귀박(머리의 앞과 뒤에 뿔난 짐승), 이구룡(머리에 귀가 두 개 입이 두 개인 짐승), 마화상(말의 형상을 한 서유기의 혼세마왕) 등이 놓였습니다. 기와와 마찬가지로 검은 색으로 구워냅니다.  




자금성과 경복궁의 핵심 건물인 태화전(왼쪽)과 근정전(오른쪽)의 위엄 있는 모습입니다. 기단의 높이와 규모에 있어 차이가 느껴지지요?


자, 이번에는 황금 기와, 붉은 담장의 건물 아래 높이 쌓은 기단을 보겠습니다. 기단은 건물의 격을 높이고 권위를 부여합니다. 물론 경복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복궁 근정전과 자금성 태화전의 기단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단을 만든 돌에 있습니다. 근정전은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그러나 높은 강도로 다루기 어려운 화강암을 사용했습니다. 태화전의 기단은 옥 계열의 한백옥입니다. 한백옥은 불투명하지만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더 하얗게 빛나며 공간을 밝힙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좀 누렇게 보입니다만 예전엔 더 하얗게 빛나 붉은 담장, 황금색 기와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단의 규모 차이입니다. 2단으로 되어 있는 근정전에 비해 3단으로 이루어진 태화전의 기단은 건물의 위치를 매우 높게 만들어줍니다. 우러러 올려다보아야 하니 기단 위 건물과 황제의 존재는 한층 더 높아만 보입니다. 신하들이 황제를 '폐하(陛下)'라고 부르는 것은 폐(섬돌,돌기단)아래에서 우러러 보는 높은 분이라는 의미이지요. 조선 신하들은 왕을 '전하(殿下)'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전(왕이 머무는 건물) 아래에서 올려다본다는 의미가 됩니다.

   



자금성 보화전의 한백옥 답도인 운룡대석조(雲龍大石雕)와 경복궁 근정전의 화강암 답도입니다.


자금성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흔한 용 문양도 자금성의 큰 볼거리입니다. 천자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궁궐 곳곳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외적인 공식행사를 치르는 등 태화전의 보조 역할을 했던 보화전의 답도인 운룡대석조(雲龍大石雕) 앞에 서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답도(踏道)는 황제나 왕이 밟고 지나가는 길입니다. 밟고 지나는 길이라고는 하나 공중부양으로 지나갑니다. 황제나 왕은 가마를 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구름과 아홉 마리의 용이 빽빽이 어우러져 있는 17m 길이의 답도 위로 황제의 가마가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더욱 놀랍습니다. 250톤에 달하는 한 판의 대리석을 5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10리(4km)마다 우물을 파고 한겨울에 도랑을 깊이 파 물을 부어 얼린 빙판 위로 끌고 밀어 운반했다고 하니 이에 동원된 사람과 소, 말이 얼마나 많았을지, 백성의 수고로움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에는 가로세로 약 1m의 답도 두 개가 있고 그 안에 봉황이 새겨져 있습니다. 용이 황제를 상징하기에 조선의 왕은 답도에 용이 아닌 봉황을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종이 황제의 나라를 선포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답도에는 봉황 대신 용을 새겨 넣었습니다. 용과 봉황의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고 황제가 사용하는 문양을 다른 왕이 사용할 수 없게 한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이자 관례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처럼 중국 황제의 절대 권력을 보여주기 위한 수많은 장치들이 자금성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마어마한 착시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자금성을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이게 만듭니다. 심지어 하늘과 땅 등 자연과의 조화가 아니라 자연과 맞서고 넘어서려는 모습으로까지 보입니다. 그러니 자금성은 백성과 외국의 사신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여 강력한 통치와 지배, 그리고 굴복을 받아내기 위한 대표적인 보여주기, 과시용 건축물입니다. 이제야 자금성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스스로 위축되어 우리의 궁궐을 비교하고 비하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금성의 의도와 목적에 제대로 휘둘린 것이지요.


자금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궁전입니다. 대단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지만 건축물의 규모와 화려함으로 우위를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라마다 짓는 방식이 다르고 재료가 다르고 건축 철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가치는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특별하고 독창적인 생각과 정신에서 나오며 그것은 각 나라의 고유한 상황에 맞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압도적이기만 한 궁전은 통치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백성들의 땀과 눈물일 뿐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경복궁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경복궁은 규모나 화려함이 아닌 특별한 생각을 담고 있는 건축물일까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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