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아무것

by BOKI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주말이 즐겁지 않게 된 것이.

직장인이 주말에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행복한 삶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과 무엇이 다를까.


고민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혼자서 늙어가도 되는 것일까, 라는. 결혼과 비혼, 그 이분법적 선택보다는 훨씬 어려운 얘기다. 적어도 나한테는.

코로나19 때문에 깊고 얕은 관계와 만남이 일순간 잠정 중단되고 또 장기화되면서 '혼자 사는 삶'에 대한 고민, 정확히는 '혼자 사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해답 없는 인생 고찰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계획할 수 없고, 문화생활이 삭제된 내 일상은 업로드가 끊겨버린 인스타그램처럼 정지되었는데 결혼한 친구들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 발현되는 풍성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주관식이었던 인생은 나이가 들면서 오지선다형 객관식이 되고 이내 양자택일이 되었다가 종종 답정너가 되기도 한다, 결혼은 그 흐름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결정타라고 믿었던 나는 내 인생을 가능한 오랫동안 주관식으로 남겨놓기 위해 혼자를 선택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그다지 다양하지가 않았다.


고민이 어느 날은 결혼을 부추겼다가 어느 날은 때늦은 후회라는 반성으로 몰아붙였다가, 또 어느 날은 비극적인 인생의 결말에까지 이르러 두려움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 쓸데없는 일련의 과정이 매 주말마다 침대 위에 웅크린 채 반복되니 즐거움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늘도 여느 주말과 다르지 않았다.

새벽까지 잠 못 든 탓에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으로 밀린 예능과 드라마를 찾아보고 끼니를 챙긴 후 다시 침대로 갈까 말까 고민을 시작한, 바로 거기까지는.


그런데 갑자기 너무 걷고 싶어진 거다.

첫 혼자여행에서 런던 템즈강을 걷고 걸었던 그 때처럼 말이다.유난히 화창하고 가을바람이 딱 알맞게 불던 날이었다. 런던에서 신으려고 장만한 운동화가 참 예뻐서 한참을 발을 보면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을 같은 길을 오가며 북마켓도 보고 자전거를 나눠타는 커플도 보고 핫도그 트럭 앞에 모인 아이들도 보고 강도 보고 하늘도 보고 바람도 보고 행복한 나의 얼굴도 봤다.

그렇게 북적였던 길거리가 한산해지고 강 위로 붉은 노을이 졌다가 아주 깜깜해질 때까지 템즈강을 걸었다.


그리고 오늘은 템즈강 대신 거리로 나왔다.

그날처럼 바람과 볕이 좋은 날이다.

눅눅한 기분이 말라 가니 곰팡이처럼 엉겨있던 고민덩어리도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책 한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거리를 걸었고, 주말마다 찾던 카페에 들러 아이스 라떼와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곤 작년 겨울 아이슬란드 여행 전에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 ,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을 폈다.


책의 작가는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해 30년간 노가다로 입에 풀칠하며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나이 쉰을 앞두고 노안으로 돋보기안경을 쓰면서 '인생 볼 장 다 봤다'라는 절망감에 절필을 선언, 이후 4년을 또 다른 꿈에 매진했는데 바로 '아이슬란드 여행'이라는 꿈이었다. 평생 반 백수로 살아 모아놓은 돈이 없는 그는 보험을 깨고 공사장에서 돈 번을 합쳐 아이슬란드로 떠난다.


71일간의 히치하이킹 여행 동안 얻어 탄 차가 60여 대, 하루에 496킬로미터를 이동한 적도 있다. 히치하이커들은 대개 서양 젊은이었고 그 나이대의 히치하이커는 거의 아니 아예 없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몇 번, 다행히 살아 돌아와 원고지 1,700매의 여행기를 완성했지만 서른두 군데 출판사가 원고를 거절했다. 내 두 손에 펼쳐진 책은 그가 서른세 번의 투고 끝에 출간한 그의 첫 책이다.


그는 쉰이 넘도록 '아무 것도 되지 못한 낙오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았다. 책을 출간하였으니 갑자기 성공한 무엇이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난할지도 모르고 두 번째 책을 출간했을 지도 미지수다. 세상은 여전히 그를 낙오자로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인생의 축소판 같았던, 악몽인 줄 알았지만 결국 길몽이었던 그 여행을 통해 꿈 없이 산다는 게, 실패자 아닌 실패자로 산다는 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산다는 게,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알게 되었다고.


어쩌면 나의 고민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삶'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 사는 삶이 의미가 없다면,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낙오자 취급받는다면.

그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와는 맞지도 않는 남의 인생에 빗대어 내 인생을 후회하고 반성했을 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삶이 꿈이라고 말하면서 누구보다 많은 짐을 쥐여준 것은 나였다.


이제는 고민 대신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의미를 덜어내는 연습, 시선에 무심해지는 연습, 지금을 바라보는 연습. 연습이 습관이 되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도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왠지 다가올 주말은 즐거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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