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우면서도 그립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이 “그 남자네 집”이란 단편 소설에서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라고 했듯이, 아무리 꽃다운 나이가 부러워도 수험생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체력과 열정이 그립지만 정중히 사양한다고 말할 겁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TV에서 방영해주던 ‘특선영화’도 그런 느낌입니다. 어릴 때는 이번 연휴에는 또 어떤 영화를 ‘테레비’에서 해줄까 설레면서 기다렸습니다. 평소 볼 기회가 없었던 “슈퍼맨”, “스타워즈”, “007” 등 미국 영화는 물론 “취권”, “용쟁호투”, “폴리스 스토리” 등 홍콩 영화들도 특선영화 시간을 통해 세례받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가 명절 TV편성표에 잡히면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이번 명절 때 어느 방송사에서 무슨 영화한대”라며 소식을 공유하면서 서로들 무슨 영화를 꼭 봐야 하는데 방송시간이 겹친다며 장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절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명절 때의 ‘특선영화’뿐 아니라 평소 지상파TV 영화 프로그램들은 돈도 없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도 제한됐던 ‘영화 고팠던 시절’을 달래주고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해주던 아련한 추억이었습니다.
“밤빰~빠밤빠밤~”
매주 일요일 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OST를 편곡한 클레바노프 스트링스의 ‘타라의 주제’가 안방 TV에 울려 퍼지면 식구들은 “아, 영화 시작하나 보다’하고 알아차렸습니다. 이 음악을 타이틀 시그널로 쓰던 KBS ‘명화극장’은 흑백TV 시절인 1969년 9월 첫 방송을 시작해 무려 45년간 방송됐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고전 명작 영화나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을 방영했는데 전성기에는 시청률 20~30%를 찍었다고 합니다.
명화극장과 같은 해 시작한 MBC ‘주말의 명화’도 타이틀 음악인 영화 “엑소더스” 주제곡을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영화 프로그램입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메인 뉴스 바로 뒤에 편성될 정도로 광고가 많이 붙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광고를 보다 지쳐 까무룩 잠들어서 깨어보니 일요일 아침이더라는 얘기도 많았습니다. 이 프로그램 역시 41년간 방송된 장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주말의 명화’와 함께 주말 밤 영화 프로그램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게 KBS2의 ‘토요 명화’입니다. 타이틀 시그널 음악은 “따라단~ 따라다라다라따라단~”하고 시작되는 호아킨 로드리고 작곡의 ‘기타를 위한 아랑훼즈 협주곡’. 이 프로그램은 언론통폐합으로 KBS2TV가 출범하던 1980년부터 27년 동안 방영됐습니다. SBS도 개국 당시 ‘영화특급’을 편성해 20년간 영화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 나갔습니다.
영화의 경쟁 상대라고는 TV밖에 없던 시절. 영화는 TV의 출현에 위기감을 느꼈지만 차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생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영화 프로그램들로 영화 보기를 생활화한 관객층이 있었기에 어쩌면 지금 한국이 세계 5위권의 영화시장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평론가 정영일(1928-1988)입니다.
검정색 뿔테안경에 손으로 대충 빗어넘긴 듯한 헤어스타일, 노타이 재킷 차림을 트레이드 마크로 한 그는 매주 KBS ‘명화극장’ 예고편의 한쪽 구석에 등장해 간단하게 영화를 소개하고 에둘러 ‘강추’인지 ‘비추’인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강추하는 영화를 소개할라치면 “이 영화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또는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나지막이 힘주어 말했고, 그저 그런 영화를 소개할 때는 “배우들의 연기는 볼만합니다” 내지는 “바쁘면 보시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야 영화 평론가와 유튜버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각각의 개성으로 영화를 평가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다 할 영화 평론가도 없어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영화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절대적’이라고까지는 못해도 그 비스무리한 것이 있고.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하며 대화를 트던 시대였습니다. 또 ‘명화극장’이라는 이름이 있었기에 그 절대적인 기준에 부합할만한 무엇을 틀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제작진에게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물론 뒤로 갈수록 ‘명화극장’의 선구안은 엉망이 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마는…)
시대를 풍미하던 지상파 3사의 영화 프로그램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청률이 떨어져 편성 시간도 심야로 밀려나고 영화도 마구잡이로 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다가 2014년 12월 ‘명화극장’을 끝으로 완전히 막을 내립니다. (EBS의 ‘세계의 명화’, ‘일요시네마’는 유지)
그렇게 마지막 지상파 영화 프로그램이 막을 내린 지도 벌써 8년. 대부분 단관 개봉했기 때문에 큰 극장에 가야 나 볼 수 있던 영화는 멀티플렉스 개관과 함께 언제든 근처에서 볼 수 있게 됐고, 시네마테크나 비디오방에서 어렵게 구해봐야 했던 고전 영화, 희귀 영화들도 스트리밍 서비스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옛날에도 평론가가 좋다고 하면 보지 말라는 말이 있긴 했습니다만 평론가를 대신한 입소문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 흥행을 좌우하고,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라고 했다가는 실시간으로 쌍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명화극장’. ‘주말의 명화’ 시그널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영화가 떠오릅니다. 그때 그 음악은 왜 그렇게 강렬했을까요? 그것은 기대와 설렘, 환상이 뒤섞인 밤의 여로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영화를 보다가 실망하고 졸다가 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만,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나 클릭 한 번에 영화가 흘러나오는 환경에는 그런 기대와 설렘, 환상이 자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가 언제나 내 손 닿을 곁에 있다는 사실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립다고 해서 과거 그 시절로 가자는 것도 아니고, 갈 수도 없으니까요.
이문세의 노래 ‘조조할인(1996)’의 가사에는 ‘주말의 명화’가 나옵니다.
그 시절 그땐 그렇게 갈 데가 없었는지 /
언제나 조조할인은 우리 차지였었죠 /
돈 오백 원이 어디냐고 난 고집을 피웠지만 /
사실은 좀 더 일찍 그대를 보고파 /
하지만 우리 함께한 순간 /
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 /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
풋내 가득한 첫사랑~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은 이제 그립지만 그립지 않습니다. 풋내 가득한 첫사랑처럼.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지도 않을 겁니다. 추억은 추억일 때 가장 아름답겠죠? 이번 추석 연휴에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추석특선영화를 편성했습니다. 연휴 나흘 동안 EBS를 포함한 지상파에서 15편의 국내외 영화를 방영합니다. 이렇게 퇴화된 형태로라도 명절 연휴가 끝나고 등교하거나 출근해서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화석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이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화석일지도요.
마지막으로 한번 나지막이 정영일 선생님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읊조려 봅니다.
“주윤발과 양자경, 장쯔이의 철학적 무협 로맨스, “와호장룡!” “음식남녀”, “센스앤 센서빌리티” 이안 감독의 2000년도 작품입니다.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