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인 2013년의 평균 영화관람료(매출액을 관람객 수로 나눈 수치)는 7천271원이었습니다. 같은 해 2월, CGV는 주중 티켓값을 9천 원으로, 주말은 1만 원으로 인상해 영화 관람료 1만 원 시대를 엽니다. 세월이 흘러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최근 인상한 티켓값은 기본 주중 1만4천 원, 주말 1만5천 원이 됐습니다. 주말에 영화관에서 데이트하려면 ‘팝콘 안 먹어도 3만 원 시대’가 된 겁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영화관람료도 지난 5월 1만355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만 원대를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영화관 데이트 3만 원’, ‘가족 나들이 6만 원, 팝콘에 콜라까지 먹으면 10만 원’이란 것은 절대값이고,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 어떤 효용을 얻을 것이냐는 개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요즘은 음식값도 많이 올랐는데, 맛집 가서 줄 서서 먹는 것 대비 영화 관람이 개개인에게 어떤 효용을 주느냐에 따라 비싸다, 싸다, 적정하다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이란 건 존재합니다.
최근 두 가지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펴낸 코로나 기간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펴낸 ‘OTT 서비스 변화와 콘텐츠 이용 전망 분석’입니다. 그리고 영진위는 조만간 ‘스크린 가격지수로 알아본 최근 영화관람권 가격 적정성 논란 점검’이라는 자료를 발간할 계획입니다. 그걸 먼저 보겠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평균 영화 관람 가격은 2010년, 2014년, 2018년 등 4년 주기로 1천 원씩 오르다가 코로나 기간인 2021~2022년에 걸쳐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및 영업 제한으로 많게는 수천억 원씩 적자가 난 영화관들이 이를 보전하기 위해 티켓값을 올린 겁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영화관람료는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GDP 상위 20개국 중 한국의 평균 영화 관람 가격은 8.2$로 9번째입니다.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호주 등이 한국보다 비싸고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은 한국보다 쌉니다. 그러니까 경제력 상위 20개국 대비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수준입니다. 다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2021년 평균 관람 가격 상승률은 한국이 13.9%로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최근 2년 사이 급격히 오른 겁니다.
급등한 티켓값은 영화 관객의 심리적인 저항선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2000년도에 6천 원을 내고 “미션임파서블2”를 봤는데 내년 개봉할 “미션임파서블7”을 보러 갈 때 1만5천 원을 내야 한다면(티켓값이 더 안 오를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세 배 가깝게 오른 티켓값은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30대 이상은 “미션임파서블2” 때부터 영화를 봤을 테니까요.
실제로 전국의 영화 소비자 2천5백 명을 대상으로 한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영화 티켓 1장 구매 시 지불 의향 금액을 묻는 질문에 ‘8천 원 이상~1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33.5%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5천 원~8천 원 미만’(27.4%), ‘1만 원~1만2천 원 미만’(20.2%) 순이었습니다. 즉, 열 명 중 여덟 명은 티켓값이 1만2천 원을 넘으면 지불 의향이 크게 떨어진다고 답한 겁니다. 넷플릭스나 웨이브, 티빙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월 구독료가 1만2천 원 안팎이니 영화 한 편 보는데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8년에는 91.5%의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봤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영화를 주로 극장에서 본다는 사람이 62%로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 주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영화를 본다는 사람은 2018년 37.1%에서 60.9%로 크게 올랐습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사람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보는 사람이 비슷해진 겁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라고 해서 가격 저항선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전국의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 3천 명을 조사한 콘텐츠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들은 1인당 월평균 2.7개의 스트리밍 플랫폼을 구독하며 1만3천200원을 지출합니다.(2021년 조사) 이들에게 만일 어느 플랫폼의 구독료가 10% 오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51%는 그래도 구독을 유지하겠다고 답했지만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겠다는 사람도 38% 나왔습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이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나머지 플랫폼은 이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중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답이 42.5%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만약에 플랫폼 무료 구독을 전제로 광고 시청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 연령대에서 50% 이상이 콘텐츠를 무료로 보는 대신 광고를 볼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10대와 40~50대에서는 60% 이상이 광고 시청 무료 구독 의향을 표시했습니다.
이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주로 이용하는 콘텐츠 유형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국내 방송 프로그램이 27%로 가장 높았고 영화가 25%로 2위, 이후 개인 방송 22%, 오리지널 프로그램 20% 순이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영화 소비자 행태 조사’의 ‘코로나 종식 후 경로별 영화 관람 전망’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극장 영화 관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68.4%에 이른 겁니다. 이어 스트리밍 서비스(34.8%), IPTV(21.5), 케이블TV(20.4%), 지상파TV(18.6%) 순이었습니다. 여전히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인식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 영화 “비상선언”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이른바 ‘역바이럴’ 의혹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세력이 온라인에서 영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한 정황들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는 것은 의혹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관람객 의견이 그만큼 영화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관람객들이 과거보다 영화에 대한 평가에 예민해졌습니다. 영화계는 이런 현상이 관람료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티켓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소비자는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지게 됐고, 눈높이는 높아지고, 관객 반응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작자 G는 “아침에 개봉한 영화를 두고 SNS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이 퍼지는 것은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예매를 취소하면서 그날 저녁 바로 예매율이 하락한다”며 냉정한 분위기가 놀랍다고 전했다.’ (‘씨네21’ 1372호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②’ 중)
‘관람료 인상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여러 차례 이뤄지다 보니 1만 원 이하의 비용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기억이 우리에겐 가깝다. 코로나19 기간 너도나도 가입한 OTT엔 볼거리가 쌓여있고, 저렴하고 편안한 문화생활이던 영화 관람은 ‘비싼 선택’으로 바뀌었다.” (‘씨네21’ 1369호 ‘올여름 박스오피스가 말해주는 것’ 중)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 보고서는 극장 영화 티켓 1인 ‘최적 가격’을 8천920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최저 가격과 최고 가격, 즉 수용 가격대는 7천 원~9천930원으로 조사됐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현재 가격대인 주중 1만4천 원, 주말 1만5천 원은 “소비자의 수용 가격대 범위를 벗어나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흥미롭게도 2018년도 극장 영화 티켓 1인 최적 가격은 9천322원, 수용 가격대는 6천291원~1만1천811원으로 오히려 이번 조사보다 살짝 높았습니다. 당시의 기본 관람료는 1만 원. 즉 관객의 수용 가격대 내에 관람료가 포진해있었습니다. 요컨대, 팬데믹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급부상 또는 다른 심리적 유인에 의해 관람객의 수용 가격대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데 실제 티켓값은 소비자의 심리적 가격 저항선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진위의 조사 결과는 사람들이 극장에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플랫폼으로서 극장은 여전히 그 존재 이유를 보여줍니다. 영화 외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은 기존 TV의 대용품으로서의 의미가 컸습니다.
극장이든 스트리밍 서비스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콘텐츠였습니다. 극장 영화 관람 동기 중 1위는 ‘좋아하는 장르 및 줄거리라서’(48.4%,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였고, 주로 이용하는 OTT 플랫폼 선택 이유’ 중 가장 많은 응답은 ‘특정 콘텐츠가 있어서’(41%, ‘OTT 서비스 변화와 콘텐츠 이용 전망 분석’) 였습니다. OTT를 옮기거나 추가하고 싶은 이유 1위 역시 ‘시청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어서’( 52.8%)로 나타났습니다.
구식 아날로그 액션과 ‘극장 필람’ 영화임을 대놓고 표방한 “탑건:매버릭”은 콘텐츠의 힘으로 올해 전 세계 박스 오피스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작비의 10배 가까운 2조 원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콘텐츠만 좋으면 사람들이 관람료가 얼마든 계속 극장으로 갈까요?
일단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도 사실 불분명하고 그런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은 앞으로도 ‘어차피 볼 영화는 보고, 볼 사람은 본다’는 전략, 즉 지속적으로 관람료를 올리는 방향으로 갈까요? 아니면 다른 전략을 내놓을까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지만 때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합니다. 일단 인상된 티켓값은 하방경직성이 엄청날 테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의 포화, 20%도 안되는 좌석점유율, 스트리머의 등장으로 달라진 관람객 습관 등을 감안할 때, 극장과 영화의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만들어내려면 극장을 비롯한 영화계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위기 타개책이 달랑 관람료 인상 하나라면 관람객들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범죄도시2”의 빅히트로 코로나 이전의 좋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영화계는 여름 성수기 시장의 성적표를 받고는 “범죄도시2”는 ‘화풀이 소비’ 또는 ‘반작용 소비’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비정상의 일상화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제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관람료와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료 인상은 또 다른 우려를 낳습니다. 영진위와 콘진원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청소년과 노년층은 결국 이리저리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무료이거나 저렴한 콘텐츠를 볼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이게 될 겁니다. 그러면 세대별, 계층별로 전에는 없던(지난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과거에는 지상파에서도 괜찮은 영화를 정기적으로 틀어줬습니다) 문화적 장벽이 생기게 됩니다.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의 장벽’은 낮아졌거나 없어졌는지 몰라도 세대 간, 계층 간, 빈부 간 문화 격차는 커지는 겁니다. 비싸진 문화 향유 비용과 일상화된 구독경제에서 말미암은 정보력과 문화적 향유 수준의 차이는 차별과 불공정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통계청이 작성하는 소비자 물가지수에는 영화관람료도 포함됩니다. 관람료 인상 하나에도 많은 경제적, 문화적 함의가 있습니다. 적정 관람료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특이점이 온 미디어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용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2020-2021 영화소비자 행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OTT 서비스 변화와 콘텐츠 이용 전망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