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가 칸에 다녀와서 전한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는 고역 중 고역이다. 칸 영화제, 그것도 경쟁 부문 진출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필생의 꿈이지만, 호텔 방에 갇혀서 여드레 동안 하루에 세 편씩 영화를 보는 일은 심사위원들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칸 경쟁 부문 진출작들은 대부분이 예술 영화인 데다 심사위원들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 자막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종종 하루에 영화 두 편을 극장에서 보기도 하는데,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도합 네 다섯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서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사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다. 감동? 감흥? 영화를 이런 식으로 보면 느끼기 쉽지 않다.
허 위원장은 농반진반으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 영화는 숙고를 거쳐 선택된 영화라기보다는 심사위원들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깨뜨려 줄 재미있는 영화라고. “기생충”(72회 황금종려상)도 심사위원들에게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을 거라고. 물론 재미있다는 것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개봉한 지난해(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도 퍽 재미있는 영화다. “기생충”의 호화 유람선 버전이라고나 할까? 지난해 사무실에 앉아 칸이 발표한 경쟁 부문 후보작들의 제목들을 죽 훑어 내려가다 ”슬픔의 삼각형“에서 잠깐 멈추었다. (한국어 제목이 확정되기 전이다)
‘Triangle of Sadness’? 슬픔을 도형으로 표현한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도무지 서로 붙을 것 같지 않은 ‘슬픔’과 ‘삼각형’이라는 두 단어를 공감각적으로 결합시키면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튄다.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유치환 ’깃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 ’외인촌‘)라는 시 구절처럼.
잘나가는 늘씬한 모델 야야와 그녀의 남친 칼은 상위 0.1%의 나이 지긋한 부자들만 타는 호화 유람선에 탑승한다. 젊은 그들이 어떻게? 협찬받아서. 그녀는 인플루언서니까. 그들의 눈에 비친 호화 유람선의 세계는 (영화 속에서 실제로) 구토를 유발하는 속물들의 위선 대잔치다.
어이없게도, 부인과 애인을 동시에 데리고 탄 러시아 부자 드미트리는 자본주의자이고 술에 절어 사는 미국인 선장은 맑시스트다. ‘전 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밀 공학 제품’을 만드는 품위 있는 영국인 부부는 알고 보니 수류탄과 지뢰를 만드는 사업가다. 모터로 가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유람선의 돛이 더럽다며 조치해 달라고 끝없이 시비를 거는 귀부인은 또 어떻고. 이들은 유람선의 맨 위층을 쓴다.
주로 그 아래층에 머물며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들도 승객들이 속물이고 진상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무조건 “예스”를 외친다. "불법 약물이든 유니콘이든 승객이 달라고 요구하면 무조건 된다고 하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이 여행이 끝나면 많은 팁으로 보상받으니까.
이 호화 유람선의 최하위 계층은 에비게일같은 이민자 청소부와 엔진룸 노동자들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권력이자 돈이다. 에비게일의 시간은 완벽하게 상위 계층 종속적이다. 해가 중천에 뜬 어느 날 아침, 에비게일은 청소를 위해 야야와 칼이 묵는 선실을 노크하지만, 다시 오라는 대답을 듣는다.
- 그럼 30분 뒤에 올까요?
- 나중에 오세요.
- 한 시간쯤 뒤에요?
- 그냥 나중에 오시라구요!
짜증난 야야의 한마디에 에비게일은 그저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시간을 계획적으로 쓸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영화의 3부에서 180도 역전된다. 배는 난파 되고 살아남은 8명이 도착한 무인도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간이 아니라 수렵 채집 시대의 공간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문어를 잡아 손질하고 불을 피워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부 에비게일 밖에 없다. 에비게일은 스스로 무인도의 캡틴 임을 선포하고 권력 삼각형 구조의 꼭짓점에 올라앉는다.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야야가 모델로 서는 런웨이의 배경에는 “만인은 평등하다(EVERYONE'S EQUAL)”라는 모토가 새겨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이다.
갑판 위 자쿠지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반신욕을 즐기던 드미트리의 부인은 “만인은 평등하다”며 업무 중인 승무원에게 자기 대신 자쿠지에 들어와 즐기라고 말한다. 승무원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곧 자신의 남편이 유람선을 사기로 했다면서 자쿠지에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돈 얘기는 섹시하지 않다”면서 남친보다 많이 벌면서도 밥값은 잘 안 내는 야야의 묘한 권력 행사에 마음 상한 남친 칼은 “평등하게 대우받고 싶다”고 소리친다. 야야에 비하면 그저 그런 모델인 칼은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슬픔의 삼각형’을 좀 펴보라는 주문을 받는다. 이 업계 용어로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 주름을 뜻한다. 오디션 심사위원들은 요즘 시대에는 모델의 외모만큼 내면도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칼이 보톡스를 맞아야겠다고 중얼거린다.
패션쇼 방송 진행자는 칼에게 ‘발렌시아가 표정’과 ‘H&M 표정’이란 걸 계속 번갈아 시킨다. 사치품 브랜드인 ‘발렌시아가 표정’은 “신분 상승하고 싶어? 그럼, 돈을 많이 내!”하고 “소비자를 내려다보는” 까칠하고 도도한 표정이고, 중저가 SPA 브랜드인 ‘H&M 표정’은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 함께 웃어요”, “비싸지도 않아요”하는 것 같은 유쾌하고 밝은 표정이라는 게 진행자의 설명이다. 그는 ‘H&M 표정’에 "#우정 #만인은 평등하다 #해피 라이프 #기후 변화를 막자"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인다. 영화 “돈 룩 업”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미지의 조종. 그렇다, 이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자본이 소비자들을 가스라이팅 하는 방식이다.
“슬픔의 삼각형”의 독설은 -“기생충”과 달리- 너무 직설적이고 단선적인 나머지, 감동을 안기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세태를 정말 시원하게 까발림으로써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그런대로 대리 만족을 준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영화로 “통화(通貨)로서의 미(美)”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I wanted the film to be about beauty as a currency)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모두 13편의 쟁쟁한 작품들이 올라있다. 86세의 노장 켄 로치 감독은 “올드 오크”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 이어 황금종려상을 노린다. 이번에 그가 받으면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감독이 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도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웨스 앤더슨 감독 팬으로서 이 영화도 재미있을 거라 의심치 않는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이 바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다. 이 감독은 자신의 영화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뽑을 것이다. 기대된다.
(*76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의 "아나토미 오브 어 폴(Anatomy of a Fall)"에 돌아갔습니다. 역대 세 번째 여성 감독 수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