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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M Jul 18. 2023

'불광불급' 톰 크루즈

"영웅본색"과 "첩혈쌍웅"같은 홍콩 느와르의 대성공을 발판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오우삼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2"를 연출하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주연이자 제작자인 톰 크루즈가 600미터 높이의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달랑 케이블 선 두 개만 매달고 맨몸으로 직접 올랐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스팅 차 촬영장을 찾았던 스필버그 감독도 "왜 톰 크루즈가 스턴트도 없이 절벽에 매달려 있냐?"고 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2000년,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할리우드 CG 수준은 참으로 놀랍구나'하며 마음 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계적인 스타 배우가 목숨 걸고 저렇게 위험한 스턴트를 직접 할 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가 맨몸으로 절벽에 매달려있는 장면

솔직히 나는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40층 높이의 상하이 빌딩에서 뛰어내리고("미션 임파서블3"),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의 외벽을 오르고("고스트 프로토콜"), 시속 400km로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는("로그네이션") 스턴트 연기를 톰 크루즈가 직접 한다는 사실이.


그런데 미션 임파서블 6편 격인 "폴 아웃"의 메이킹 영상을 본 뒤부터는 그냥 믿기로 했다.


달려가던 톰 크루즈가 건물 옥상 사이를 멀리뛰기 하듯 힘껏 점프한다. 그러나 건물 사이가 너무 멀어 건물 벽에 하반신이 부딪히면서 발목이 꺾여 부러진다. 그런데! 옥상 위에 카메라가 있다는 걸 아는 톰 크루즈는 발목이 부러진 채로 기어이 벽을 기어 올라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 지나간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형은 '찐'이구나…'





"탑건(1986)"같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로 스타덤에 올라서 그렇지, 톰 크루즈는 사실 연기도 빼어나다. 옛날 말로 성격파 배우를 해도 잘 했을 것이다. 얼마 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의 개봉에 발맞춰 열린 톰 크루즈 기획전에서 내가 인생 영화 중 한편으로 꼽는 "매그놀리아(1999)"를 다시 봤는데, 톰형은 역시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쳐보였다. 한마디로 스턴트가 아니라도 충분히 성공할만한 천생 배우다.

  

"매그놀리아"에서 픽업 아티스트로 나왔던 톰 크루즈

실제로 톰 크루즈는 마틴 스콜세지("컬러 오브 머니" 1986), 올리버 스톤("7월4일생" 1989), 스탠리 큐브릭("아이즈 와이드 셧" 1999), 폴 토머스 앤더슨("매그놀리아"), 스티븐 스필버그("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 등 많은 명감독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연기도 끝내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가끔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연기파 배우 톰 크루즈'를 빼앗아 간 것 같은 아쉬움이 들 정도다.


톰 크루즈는 "오블리비언(2013)"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스턴트만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턴트 장면을 직접) 하는 거다. 어떻게 내가 관객을 액션에 몰입하게 할지, 어떻게 이야기에 빠지게 할지가 관건이다. 나는 항상 이런 관점에서 역할에 접근한다." (씨네21)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촬영 자체가 '임파서블 미션'이다. 영화적 과제가 현실적인 과제라는 점이 이 시리즈 최대의 매력이 됐다. 톰형은 약간의 마조히스트적 성향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목숨 걸고 영화를 찍는다. 한때 개콘의 인기코너 '불편한 진실'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데드 레코닝"에서도 톰형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나도 팬이지만 기대 자체가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노르웨이의 까마득한 절벽을 모터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다 그대로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는 스턴트를 한다.


톰형의 이 목숨 건 스턴트가 나오는 장면은 불과 10여 초. 시리즈의 7편인 "데드 레코닝"은 미션 임파서블 프랜차이즈 사상 최장인 2시간 43분의 러닝 타임을 갖고 있다. 2시간 43분은 9780초, 그러니까 톰형은 영화 전체의 약 1/1000 밖에 안 나오는 순간을 위해 목숨을 건 것이다.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모터바이크 연습을 위해 귀마개를 끼면서 톰형이 말한다.


"항상 귀마개를 합니다. 내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요(웃음)"


본인은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은 심장이 떨린다. 하지만 톰형이 운에 맡기고 이런 스턴트를 하는 게 절대 아니다. 관객들의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톰 크루즈가 노르웨이 절벽 씬 10여 초를 위해서 한 연습은 스카이 다이빙 500회 이상, 모터 크로스 점프 13,000회에 이른다. 이 정도 하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또 영국의 한 채석장에 연습용 세트를 지어놓고 수도 없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연습과 카메라 동선, 프레이밍, 포커스를 체크 했다. 그리고 본 촬영인 노르웨이 절벽 점핑도 많을 때는 하루에 6회까지도 촬영했다.

  

노르웨이 절벽에서 모터바이크를 타고 뛰어내리고 있는 톰 크루즈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션 임파서블3"부터 벤지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사이먼 페그의 말이다.


"톰은 정말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죠. 모든 것은 스턴트에서 다 계획이 된 겁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거죠…물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일어나기도 하죠. 그래서 항상 신경이 곤두 서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서 톰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을 때 저희는 정말 무서웠거든요." (내한 기자회견)


톰형은 이런 준비를 벼락치기 시험 공부하듯 영화 촬영 몇 달 앞두고 갑자기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평생을 준비해왔다. 헬기와 비행기 조종 면허가 있고, 전투기도 타봤다. 수년 간 스카이 다이빙을 해왔고 아주 어릴 때부터 바이크도 타왔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관객들에게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톰형은 노르웨이 메이킹 필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가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관객! (the audience)"


톰 크루즈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제작자로서 동료 배우들을 이끌고, 훈련시키며,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탑건:매버릭" 때도 그가 일정을 짜가며 후배 배우들의 전투기 탑승 훈련을 시켰다. 톰 크루즈는 동료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순간(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뽑아내려는 프로듀서이자 열정을 찍는 사진가다. 그는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가 물량이나 CG, 스턴트가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스턴트는 스토리텔링을 향한 저의 열정이고, 모험을 향한 열정이고,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열정입니다. 저는 영화라는 예술에 제 인생을 바쳤습니다." (내한 기자회견 중)


"데드 레코닝"에서 빌런으로 나오는 한국계 여배우 폼 클레멘티에프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참여한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드림스 톰 트루(dreams tom true)"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지 않고서는 다다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기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영화에 미쳐있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것은 동시대인으로서 행운이다.


톰 크루즈 이후에는 이런 배우, 이런 영화는 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 달 몇 년 연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평생을 바쳐야 가능한 일, 한 배우가 인생을 걸고 해온 결과물을 우리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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