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the People(우리, 미국 국민은)”은 미국 헌법 서문의 첫머리이고, 미국의 대표적 진보적 지식인 리오 휴버만(1903-1968)의 첫 번째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영웅인 동시에 희생자인 민중의 관점에서 쓴 참된 의미의 미국의 역사”라는 평을 받은 이 책은 1932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십 개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1년 “가자, 아메리카로!”라는 제목으로 마지막으로 출간됐다) 이 책의 초반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초기의 정착민들은 그들이 이곳에서 발견한 인디언들을 훌륭한 노예로 길들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됐다. 홍인종은 부려먹기에는 너무나 콧대가 센 종족이었다.”
“정착민들은 인디언과 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역을 하고 지냈으나, 더 많은 정착민들이 오게 되자 인디언족을 아예 몰살시키려 하게 되었다.”
미국 GQ 9월호에 실린 마틴 스콜세지 감독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불현듯 ‘We, the People’이 떠올랐다. 이 인터뷰에서 스콜세지 감독은 말했다. “we, as Americans, we are complicit(우리는, 미국인으로서, 다 연루돼 있습니다).”
스콜세지는 자신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원제: Killers of The Flower Moon)”에 대해 사랑과 권력 그리고 배신과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일련의 인디언 살인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스콜세지 옹이 평생 천착해왔던 미국에 대한 이야기이고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좀처럼 쓸 데/때가 없는 단어가 ‘유장하다’ 같은 말이다. 다 빠르고, 모두 급하다. 그게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은 유장한 영화다. 다루고 있는 시대가 유장하고, 캐릭터들의 인생이 유장하고, 81세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이력 또한 유장하다.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 반에 육박한다.
19세기 후반 원래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밀려난 오세이지 인디언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오클라호마 지역을 할당받는다. 그런데 척박한 이 땅에서 갑자기 석유가 나온다. 오세이지족은 백인들을 집사로, 기사로 부리며 살 정도로 벼락부자가 된다.
백인들이 이 꼴을 두고 볼 리가 없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헤일은 오세이지족을 친구로서 챙기는 척하면서 이들을 하나하나 살해해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 그는 막 제대한 순진한 조카 버크하트(디카프리오)를 꼬드겨 돈 많은 오세이지 일가의 여자인 몰리(릴리 글래드스톤)와 결혼시킨다. 디카프리오는 멍청할지언정 뼛속까지 악인 스타일은 아니다. 숙부의 사주로 결혼했지만 부인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일가를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제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행에 금치산자로 등록돼 있지만(백인들의 술수다) 현명한 아내 몰리는 자신의 피붙이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자 부족의 지도자들과 함께 워싱턴 D.C로 가서 당국에 범인을 잡아달라고 호소한다. 당시 태동기였던 FBI가 수사에 나서면서 마을은 점점 긴장 속에 빠져드는데…
애플은(맞다, 당신이 아는 그 애플이다) “플라워 킬링 문” 한 편을 위해 2억 달러(약 2천7백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에 쓴 돈의 두 배다. 이 영화는 원래 파라마운트사의 영화였지만, 제작비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스튜디오는 이 프로젝트를 애플에 넘겼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극장 개봉을 거쳐 애플TV+에 공개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서 전통적인 의미의 영화를 ‘시네마’라 부르며 강력하게 옹호해 왔다. 특히 마블 영화는 테마파크일 뿐 진정한 영화로 보기 힘들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많은 욕을 먹기도 했다. (이 발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본인을 포함한 여러 인사들의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번 GQ 인터뷰에서도 스콜세지는 “제조된 콘텐츠(manufactured content)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인공지능이 만드는 영화와 비슷한 거죠.”라고 말해서 ‘공산품 영화’에 대한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그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 좋은 관계만을 맺어온 것도 아니다. 이미 1970년대에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택시 드라이버”, 1976) 명감독이었지만, 스튜디오에서 투자를 받아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란 늘 어려웠다.
스콜세지의 유일한 오스카 감독상(노미네이트만 9번) 수상작인 “디파티드(2006)”를 연출할 때도 이른바 ‘프랜차이즈’ 영화를 만들라는 메이저 스튜디오(워너브라더스)의 압력을 느꼈다.
“관객과 제작자들은 희열에 차서 시사회장을 나서는데, 스튜디오 쪽 인사들은 침울하게 문을 나섰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건 그런 영화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영화였어요. 그 얘기는 나는 더 이상 여기서 일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죠.” (워너는 “디파티드”에서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 둘 다 죽이지 말고 한 사람은 살려두는 게 어떠냐고 얘기했다고 알려져 있고 스콜세지는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
“제가 아는 그런 영화 산업은 끝났습니다…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개인적인 목소리들에 큰 돈을 투자하는데 더 이상 관심이 없어요. 그런 것들은 다 그들이 인디라고 부르는 것에 밀쳐둬 버렸죠.” (GQ 인터뷰)
‘개.인.적.인.’ 이라… 봉준호 감독이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을 제치고 4관왕을 차지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스콜세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객석의 스콜세지에게 경의를 표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마틴 스콜세지가 백 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 온 전통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아니라 넷플릭스(“아이리시맨”)와 애플(“킬링 플라워 문”)같은 스트리머들의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고 있는 상황은 상징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시네마 근본주의자’인 스콜세지가 전통적인 의미의 영화와 영화 산업을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연이어 손잡고 영화를 만들고 있는 현실 말이다. (스콜세지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스콜세지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다.(분량 자체는 아주 짧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서 미국의 흑역사를 ‘증언’한다.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저자의 광대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영화로 무언가를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뭔가요? 무엇인가를 말해야 합니다.”
팔순의 나이에 현역으로 2억 달러의 제작비를 써서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분명 커다란 축복이다. 거장은 그 행운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 연령대의 누구에게는 피 같은 시간일 수도 있고, 하릴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일 수도 있는 6년간을 “플라워 킬링 문”과 함께 "살았다."
영화에 나오는 오세이지족은 오세이지 배우들로 뽑으려 애썼고, 못 찾으면 최소한 인디언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로버트 드 니로나 디카프리오만큼이나 호연을 펼치며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 오세이지 부인 역의 릴리 글래드스톤은 오세이지족의 승인을 거쳐 캐스팅했다.(그녀도 인디언 배우다)
각본을 쓰고 리허설을 할 때도 오세이지 변호사가 내용을 감수하고 조언하도록 했다. 옷은 물론 칼라와 신발, 타이, 단추 등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녀의 복식 하나하나를 오세이지 사람이 검수하게 하고 스콜세지 본인이 직접 확인했다.
그래서일까. 거장의 손길로 빚어낸 3시간 반에 이르는 서사시는 신뢰가 간다. 감독이 재미만을 위해 사술을 썼는지 안 썼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방광이 점점 차오르는 게 느껴져 불안하고, 종반부는 늘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스콜세지옹 정도라면 저렇게 더디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하고 그 뜻을 헤아려 보려고 애쓰게 된다. 설혹 찍은 게 아까워서 그가 편집실에서 그냥 살려 놓은 씬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