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itor M Mar 29. 2022

94회 아카데미 리뷰: "코다"와 "듄"의 승리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하면 칸, 베니스,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일컫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영화상인 아카데미상은 봉준호 감독이 말했듯이 미국의 로컬 영화제일 따름이지요. 따지고 보면 미국판 대종상같은 겁니다. 하지만 미국의 영화산업과 자본이 세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이 워낙 크고 세계적 스타들이 즐비하게 나오기 때문에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이 상에 세계의 이목이 쏠립니다.


  윤여정 배우의 멋진 시상 얘긴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지겹도록 보고 듣고 계실 테니까요. 대신 94회 아카데미의 큰 흐름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올해 아카데미는 코로나 이전처럼 다시 LA 돌비극장(구 코닥극장)에서 대면 방식으로 열렸는데 현재 한국에서도 개봉 중인 영화 “킹 리차드”의 실제 모델인 비너스 윌리엄스·세레나 윌리엄스 자매의 멘트로 문을 열었고, 오프닝 공연으로도 역시 “킹 리차드”의 주제가를 비욘세가 테니스장에서 불렀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코다' 제작진과 출연배우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첫 번째 주인공 "코다"와 스트리밍

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코다”는 94회 아카데미의 깜짝 스타입니다. 예상을 뒤엎고 작품상을 가져갔습니다. 각색상과 남우조연상도 받아 3관왕이 됐습니다. “코다”는 애플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TV+ 오리지널 작품입니다. 이로써 스트리밍 서비스에 강고하던 아카데미의 둑도 터졌습니다. 베니스와 베를린은 이미 문호를 개방했고, 3대 영화제 중 이제 칸만 남은 셈입니다.


  12개 부문 후보로 올라 이번 아카데미의 왕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넷플릭스의 “파워 오브 도그”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랑 감독상 하나만 수상했습니다. 이로써 넷플릭스는 2019년 “로마”(알폰소 쿠아론 감독), 2020년 “아이리시맨”(마틴 스콜세지 감독), 2021년 “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아론 소킨 감독)에 이어 4년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각 부문에서 고루 뛰어난 영화지만, 그게 오히려 약점이 됐을 수도 있겠죠. 다른 작품상 후보에 비해 쉽게 읽히는 영화도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요. 넷플릭스는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쓰린 속을 달랬습니다. 또 전체 23개 부문 중 14개 부문에 후보를 냄으로써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작품상과 감독상을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져간 셈입니다. 


두 번째 주인공 여성과 소수자

“파워 오브 도그”로 12년 만에 컴백한 백전노장 제인 캠피온은 1994년 “피아노”로 각본상을 받은 이후 28년 만에 다시 오스카를 거머쥐었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탤런트를 잃지 않고 수작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제인 캠피온은 이번 수상으로 아카데미 역사상 세 번째로, 감독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 됐습니다. 또 지난해 클로이 자오에 이어 2년 연속 여성이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작품상 “코다”의 감독 션 헤이더도 여성 감독입니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두 명의 여성이 오프닝 멘트를 하고 세 명의 여성 호스트가 사회를 봤습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의 주인공이 여성이고, 주제가상도 여성 팝아티스트 빌리 아일리시가 만든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수상했습니다. 또 여우조연상을 받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데보스는 라틴계 여성으로 자신이 퀴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는 청각장애인 남성으로는 처음으로 오스카를 수상했습니다. 그동안 백인 중년 남성 위주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카데미가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문을 많이 열었습니다.


세 번째 주인공 '007' 

94회 아카데미의 또 다른 주인공은 ‘007’이었습니다. 올해가 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한 007 제임스 본드 60년이었습니다. 아카데미는 지난 007 시리즈를 차례로 편집해 보여주면서 007 시리즈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007에서 M 역할을 맡았던 주디 덴치도 단하에서 지켜봤는데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유쾌했던 농담 가운데 하나가 주디 덴치를 상대로 한 것이었는데요, 사회자들이 무대 아래 배우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한마디씩 농담을 던지다가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NFT라며 뭘 하나 건네고는 주디 덴치에게 다가가 킴 카다시안의 말이라며 “더 열심히 일하세요”(work harder)라고 위트있게 충고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올해 87세의 주디 덴치도 파안대소했는데요, 카메라에 잡힌 그녀의 임플란트가 마음을 짠하게도 했습니다. 이번에 작품상 후보로도 오르고 각본상을 받은 “벨파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보신다면 주디 덴치라는 배우의 힘, 노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얼굴에 감동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개봉 중입니다.


  이 밖에도 94회 아카데미는 프랜시스 드 코폴라,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를 무대로 불러내 “대부” 50년을 기념했고, “펄프픽션” 28주년을 맞아 무대로 나온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은 영화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장면, 플로어에 발바닥 비비는 춤을 한참 동안 춰서 즐거움을 안겨줬습니다. (아, 이 영화 다시 보고 싶네요…) 존 트래볼타는 머리를 밀어서 처음엔 못 알아봤고, 천방지축 같았던 우마 서먼은 곱게 나이들었더군요.


네 번째 주인공 "듄"의 약진…영화는 기술 미디어

영화는 기술의 미디어입니다. 필름과 카메라 등 기술 발달이 영화라는 매체를 탄생시켰고, 최근에는 각종 시각 효과가 인간의 시각적 쾌감을 위해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 속의 장면을 스크린에 실제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용아맥’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아이맥스 화면비의 “듄”은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악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등 기술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을 휩쓸어 6관왕에 올랐습니다. 이번 오스카 최다 수상입니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인 한스 짐머는 음악같은 음향, 음향같은 음악으로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늙지 않는 창의성을 보여줬습니다.


  “듄”은 한국에서는 영화팬들의 요청 속에 이미 아이맥스 재개봉까지 마쳤는데 이번 오스카 수상으로 한 번 더 개봉할지 모르겠네요. 남우주연상 수상 후보에도 못올랐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티모시 샬라메도 웃통을 벗은 채 달랑 작은 재킷에 목걸이만 걸고 나와 “듄”의 선전을 축하했습니다. 역시 젊은 스타 배우 답더군요. 반면 여우주연상 후보 중 가장 젊은 스타 배우 “스펜서”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잠깐 카메라에 비친 모습이 왠지 영화 속 다이애나처럼 외로워 보였습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부문이라면 여우주연상을 들 수 있습니다. 제시카 차스테인, 올리비아 콜맨, 페넬로페 크루즈, 니콜 키드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맞붙은 거죠. 상은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차스테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윌 스미스, 시상식 생방송 중 폭행


초유의 생방송 해프닝과 "드라이브 마이 카"

상상도 못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킹 리차드”에서 테니스 가르치는 아버지로 나온 윌 스미스가 생방송 중인 무대로 성큼성큼 걸어나와 시상자인 크리스 록의 볼(ball 말고 볼따구니요)을 손으로 ‘스매싱’한 거죠. 세상에나! 연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가 앉은 윌 스미스가 연거푸 ‘F 워드’를 쓰는 바람에 ‘아, 이게 실제 상황이구나’ 알아챈 거죠. 아무리 연출이라도 공식 석상에서 F***을 내뱉기야 하겠어요? 크리스 록이 윌 스미스의 부인을 상대로 농담을 한 것이 윌 스미스에게는 모욕적으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윌 스미스는 예상대로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걱정된다는 듯이 “내년에도 불러줄 거죠?”하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 걸 보니 평정심을 잃었던 게 아차 싶었던 모양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에서도 소개했던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몇 개 부문을 수상하느냐도 관심사였는데요, 왜냐하면 이 영화가 거의 "기생충"의 뒤를 밟아오는 듯한 수상 경력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주요부문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그러나 국제장편영화상 하나를 받는데 그쳤습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은 거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래도 평소 영화처럼 조용해 보이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흥분해서 기뻐하는 걸 보니 아카데미가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3시간짜리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한국에서도 7만 관객을 불어모으고 있는데, 아직 극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킹 리차드》인생이라는 이름의 도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