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1일 회사에서 지급하는 현금성 복지포인트가 남았다. 무엇을 할까? 2022년 12월 31일까지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포인트가 아까웠다.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 슬쩍 말했다. 아내와 나는 격년 주기로 1박 2일이나 2박 3일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여행을 떠나왔다. 때마침 코로나19 락다운이 풀렸다. 모든 나라들이 일제히 입국 제한 빗장을 활짝 열었다. 덩달아 내 마음 속 떠나고 싶은 욕구가 열렸다.
”여보 나 후쿠오카 왕복 비행기표 값만큼 포인트 남았는데, 혼자 바람 좀 쐬고 와도 될까?“
그런데 아내가 색다른 제안을 했다.
”아버님 집에 혼자 계신데, 아버님이랑 같이 갔다와.“
아버지는 은퇴 후 주로 집에 혼자 있다. 엄마는 평일에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사촌 여동생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아빠랑 단 둘이 여행을 가라고? 생각지도 못한 그림이네. 아내의 제안에 나는 머리에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 들면서 뭔가에 홀려서 바로 대답했다.
“그래? 한 번 가볼까?” 다음 날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여권 있어?”
“만료 됐는데?”
“언능 만들어. 일본 가자“
2023년 1월 25일 수요일 새벽 5시 30분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비행기는 제주항공 7C 1402편 10시 35분 이륙이다. 충남 아산에서 인천공항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여유있게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운전했다.
일흔두살 아빠와 마흔두살 아들인 우리 부자는 차안에서 둘이 있다. 같은 시공간에 둘이 있다보니 어색한 침묵을 짐짓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수속을 마치고 면세구역에 들어왔다. 휘황찬란한 루이비통, 구찌, 셀린느 명품관 입구가 보인다. 바비브라운, 샤넬, 맥 등등 온갖 색조 화장품 냄새가 섞인 듯한 면세 구역은 설레이면서도 시공간이 뒤틀어지는 이질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4층에 있는 마티나 라운지에 도착했다.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샐러드와 아침 식사를 하고 나왔다.
“아들아 공항에 이런데가 있었냐? 시골에서 말 안 듣는 꼴통(아빠가 친구들을 부르는 애칭이다. 그런데 꼴통은 맞는거 같다.)들이랑 맨날 패키지만 와서 푸드코트에서 탕이나 김치찌개만 먹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넓고 편한데가 있는지도 몰랐네.“
“아빠 세상에 좋은데가 얼마나 많겠어. 일본 가면 더 재밌겠지? 아빠 뭐 하고 싶은거 있어?”
“글쎄..?”
“내가 내일 버스 투어 예약 했는데, 규슈 여기 저기 구경다니면 좋을 것 같아.”
여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는 성격이다. 발길이 가는데로 여행한다. 그래도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이니 버스 투어정도는 하루 예약했다. 태어나서 처음 하시는 자유여행인데, 너무 자유롭고 아무 것도 안 하면 심심하실 것 같았다.
세계 지도에서 부산보다 새끼 손가락 반마디 만큼 남쪽에 있는 후쿠오카는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이륙 후 잠깐 앉으니 벌써 도착이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카카오톡 알림톡이 하나 도착했다.
“규슈 산간지역 폭설로 고속도로가 폐쇄되었습니다. 버스 투어는 부득이하게 취소되었습니다."
부산보다 남쪽이라 따뜻한 지방이라고 생각했는데, 폭설이라니 속으로 ’망했다‘ 라고 생각했다.
아부지! 저는 계획이라고 세우지 않고 제 발길 가는데로 다니는 여행자입니다. 잠시 호텔에서 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새벽같이 운전하고 이동했더니 둘 다 피곤한 상태였다. 잠시 생각해보니 폭설이 와서 버스는 안 다녀도 기차는 다닐거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하카타역으로 가서 후쿠오카 와이드 철도 패스를 구매했다. 후쿠오카 인근 소규모 도시들을 2일동안 자유롭게 기차로 이동할 수 있다니, 꽤나 괜찮잖아. 부모님 여행은 절대 한 군데 있으면 안 된다는 인터넷 카페 선배님들의 후기 말씀이 생각났다.
2023년 1월 26일 오전 9시 일본식 비즈니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첫 번째 목적지는 후쿠오카 동쪽으로 기차로 40여분 정도 걸리는 북부지방의 공업도시 고쿠라다. 기차를 탑승하러 하카타역으로 걸어갔다. 로얄 파크 호텔 후쿠오카에서 하카타역까지 도보로 10분이다. 역까지 걷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아빠가 내 발걸음을 맞춰서 오는지 옆을 바라본다. 무릎에 통증이 있다는 말에 조금 걱정된다. 어릴 적 나의 보호자인 아빠는 해외에서 내가 보호자가 된느낌이다. 길을 안내하고 통역을 하고,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고 계산은 전부 내가 한다. 막내 아들이라 어릴 적 어리광도 많이 부리고 뭐든지 해달라고 징징도 많이 거렸다. 보호자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기분이 오묘하다.
전체가 파랗고 둥글둥글한 귀여운 모양새를 가진 소닉 기차가 탑승 플랫폼에 들어온다. 아빠랑 단 둘이 교통수단을 타고 단 둘이 어딜 가본 적이 있을까? 없었던거 같다.
철컹 철컹 기차는 부드럽게 출발하여, 바깥 시골길 풍경을 바라보니 고쿠라역(규슈 공업도시)에 도착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부산보다 더 남쪽 지방에 있는 후쿠오카에 함박눈이 내린다. 자주 눈이 오지 않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강원도에서 볼 법한 떡국 떡만한 납작한 흰 눈송이가 하늘에서 어깨로 내린다. 아빠도 백발인데, 아들인 나도 반백발이 되었다. 눈오는 이국적인 풍경에서 아빠와 함께 셀카봉을 세우고 손으로 브이도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고쿠라 성 앞에 도착 했다. 함박눈에 날씨는 추운데 마땅한 카페가 안 보인다. 안 되겠다 싶어. 잠시 눈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지붕이 딸린 자판기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2개 뽑아서 아빠랑 둘이 나눠마셨다.
“아~ 아들이랑 둘이 고쿠라 성에 와서 눈을 보고 커피 마시니 기분이 매우 좋구나.”
“하하” 나는 웃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아주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주변을 바라보며 잘 읽지도 못하는 이국적인 간판들을 바라보면서 걷고 걸었다. 코끝은 시리지만 공기가 맑아 폐부에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보기도 했다.
고쿠라역에서 10분 기차를 타고 또 다른 도시 모지코역에 도착했다. 기차 플랫폼이 나무 목재로 지어졌다. 바닷가 항구 개항시대로 돌아 간듯한 과거의 정취가 생각나는 감성이 살아 있다.
모지코 항 근처 커다란 광안대교와 비슷한 칸몬교가 있다. 구경할 겸 바람도 쐴 겸 걷고 걸었다. 다리가 아파서 적당한 카페를 가고 싶은데 마땅치 않다.
모지코 항구에 다다르니 바다 건너 맞은 편 규모가 웅장한 항구가 하나 더 있다. 커다란 국제 훼리선이 정박할 수 있는 도크를 가진 항구이다. 그 항구는 시모노세키항이다. 여행 자유화가 풀리기 전 1980년대 후반 우리 할아버지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여행 온 곳이다.
아빠는 항구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잠시 한 다음 내게 말을 해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게 72살이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 아빠가 할아버지만큼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나이 72살에 아들과 함께 할아버지가 다녀온 시모노세키항을 바라보다니.. 살아 있음에 행복하구나.”
“응?”
아빠의 말을 듣고 10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 절차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꽃상여, 삼베 옷을 입은 아빠, 큰 집 앞에 천막 지붕을 치고 손님을 받던 옛날 시골 장례절차였다. 32년이 흘렀는데,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그 날들이 기억난다.
연이어 작년에 아빠가 전립선암 수술을 한게 생각났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서 암세포는 더 이상 발견되지는 않았다. 계속 추적 관찰 중이다.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줄거라고 생각한 아빠 언젠가 우리도 이별을 하겠죠. 눈시울이 조금은 붉어지고 목에서 올라오는 이물감을 삼켜 눌렀다. 즐거운 여행을 왔는데, 감정은 조금 복잡해졌다.
항구에서 바다 바람을 맞고 서있다 보니 추워서 다시 호텔로 걸음을 향했다.
2023년 1월 27일 귀국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조식을 먹었다. 부모님과 여행은 늦잠이 허용되지 않는 느낌이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제주항공 7C 1403편 17시 50분 이륙이다. 공항은 오후 4시까지만 돌아가면 된다. 오전에 시간도 남으니 기차 패스는 하루 더 쓸 수 있다. 시내와 40분 거리 가까운 동네 다자이후로 갔다.
학업의 신이 있다는 다자이후 공원을 둘러보았다. 한국 사람, 대만 사람, 그리고 현지 고등학생들이 많이 방문했다. 겨울에도 약간의 녹색 기운을 뿜어내는 공원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걷고 걸었다.
공원 산책을 마치고 몸을 녹이고자 일본식 옻색 목재 인테리어 꾸며진 전통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녹차와 우메가에 모찌(팥을 넣고 납작하게 구운 떡)을 한입 먹었다. 쌉쌀하고 달콤한 맛이 좋았다. 아빠와 나는 서로 앉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웃음 가득한 각자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이 가슴 깊이 새겼다.
나 좋자고 20살 집을 떠나 세계를 돌아다니고 내 자식 낳고 40대 부모가 되었다. 중학교 이후로 아마 아빠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적은 없다. 지금 순간이 머리 속 사진첩에 강력하게 각인되었다. 영구 기억으로 간직되는 느낌이다.
찻집에 앉아 찍은 사진을 엄마와 아내에게보내주었다. 카카오톡 보이스톡이 울렸다. 엄마와 통화는 아빠와 함께한 2박 3일에 대한 간략한 보고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출근을 하고 루틴하게 반복되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웠는데, 낮 사이 아내가 아빠와 통화를 했나보다.
“아버님이랑 통화했는데, 은퇴 후 집에 혼자 있어서 우울증이 왔는데 오빠랑 여행 하더니 싹 가셨데. 그리고 오빠가 말 해준 감정을 아버님도 같이 느꼈나봐. 어디 항구에 갔다 온게 가장 기억에 남는데. 할아버지도 다녀온 곳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자기가 내준 아이디어 덕분에 이렇게 좋은 여행 하고 왔네. 자기도 부모님이랑꼭 같이 한 번 다녀와. 진심으로 좋아.”
아내는 나와 아빠가 찍은 셀카와 사진들을 모아서 “부자여행”이라는 포토북을 만들어 본가에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1년이 지났다. 설 명절 본가에서 포토북을 꺼내 보았다. 아빠와 내가 웃고 있는 사진들을 바라만 보고 있으니, 즐거운 여행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아빠는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세배를 받고 덕담을 해주었다. 절이나 성당은 다들 죽어서 천국간다고 하는데, 지금 살아있는 순간 여기가 천국이라고 한다.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정현채 교수가 말한 죽음이란 의미가 생각난다. 인간은 원래 죽는 존재인데, 잠시 산다고 한다. 나도 살아있는 지금이 천국이라 느끼고 가족과 함께 행복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