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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강 Aug 13. 2022

20세기형 인간 (3) 합리적 비교를 모르는 인간

네 저 핸드폰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샀어요 가격비교 그런 거 몰라요



언젠가 모 개그맨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알쏭달쏭 스마트 세상'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로 명쾌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저 문장에서 어느 한 단어도 버릴 것이 없다. 현대사회는 정말 바쁘고 바쁘며, 스마트 세상은 이다지도 알쏭달쏭하다.


나는 물건을 꽤 오래 쓰는 편이다. 대학교 입학할 때 외숙모에게 선물받은 코트를 서른셋이 된 지금도 입는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처음 쓴 스마트폰은 대학교 1학년 때 산 갤럭시1이었고(학원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다 놀란다. 학생들은 체감하는 갤럭시1 출시 시기는 거의 신석기 시대다.) 그 다음부턴 LG를 썼다. G2를 쓰다가 V30로 바꿔 잘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LG가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그때도 이미 몇년째 쓴 V30은 이제 살 만큼 살았다고, 자신을 좋은 곳에 보내달라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배터리가 훅훅 닳는 문제는 핸드폰을 어르고 달래며 틈만 보이면 바로바로 충전을 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쓰는 동안 수백, 수천번 떨어뜨려도 멀쩡하던 핸드폰이 며칠 사이에 금이 두 개나 간 것이 큰 타격이었다. 화면의 밑부분은 아예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 사람도 건강할 땐 뼈가 잘 부러지지 않다가도 늙으면 부러지기 십상이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줄 때가 온 것이었다. 최신 기술과 매년 나오는 아이폰, 갤럭시의 밀물에서 나는 몇 년을 잘 버텼는데 나약한 대기업이 먼저 철수를 선언해버리다니. 이 상태로 큰 고장이 나면 수리도 어려울 것이 번연해서 큰 마음을 먹고 바꾸었다. 물건도 오래 쓰다보면 이상한 애착이 생기곤 해, 그 마음을 먹는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그런데 막상 핸드폰을 바꾸려고 마음을 먹으니 여기저기서 들리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누구는 자급제를 얘기했고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사려면 선예약이 어쩌고 뭘 묶어서 약정할인 어쩌고 저쩌고.

아, 정말이지 알쏭달쏭한 스마트 세상. 마음 먹고 정보를 찾아보고 입소문도 들어보고 많은 정보를 차근차근 정리해보고ㅡ해야 할 일이 많은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웃긴 건 정보를 찾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정보를 '찾을' 상상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늘 그래왔던 대로 집 근처 핸드폰 대리점에 가서 바꾸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그날 대리점이 닫혀 있었다. 마음 먹은 김에 빨리 해결하고 싶었던 나는 결국 매일 U+에서 오던 광고 문자를 떠올렸다. 장기 이용 고객은 새로 나온 갤럭시로 바꾸면 무슨 혜택을 어쩌고 저쩌고. 결국 바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그날 당일 배송을 받는 방법으로 스마트폰을 바꿨다. 직원이 친절하게 제시해준 선택지 중에 고르기만 하면 됐다. 네. 블랙으로요. 음, 용량은 제일 큰 게 좋겠죠? 어…그게 할인 제일 많이 되는 거면 그걸로요. 그리고 그날 저녁 8시, 학원으로 배송 온 스마트폰을 보고 모두가 신기해했다.

이렇게 갑자기? 핸드폰을 바꾼다고?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닌데?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비교하고 발품을 팔아보고 했으면 돈을 더 절약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더 자세히 알아보고 비교하고 발품을 팔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선택에 만족했다. 누가 바꾼 핸드폰 어떠냐고 물어보면 '사진 엄청 잘 나온다'거나 '펜이 있으니까 메모하기 편하다'같은, 나 스스로 듣기에도 머쓱할 만큼 멍청한 대답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다. 내가 다른 친구에게 '너에게 아이폰은 사치니까 그냥 샤오미나 써라'라고 농담했었는데, 그 농담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그냥 효도폰을 사는 게 낫지 않냐는 소리도 물론 들었다. 하지만 큰 사건(아예 잃어버려서 찾지 못한다거나 우리집 베란다에서-18층-떨어뜨린다거나)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나는 이 핸드폰을 최소한 4년은 쓸 것이기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나 스스로가 현대사회에 너무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른바 '단통법'이라는 법안이 통과된 것도 나같은 사람들때문 아닐까. 합리적인 비교와 선택따위는 어딘가로 날려버려서 파는 대로 그냥 사버리는 사람들. 누가 정직한 판매자인지 교묘한 술수를 쓰는 사람인지를 모르는 바람에 '호구'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합리적인 비교와 선택을 하는 사람들마저 할인이 어려워졌다는 것은 납득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친구들 중에는 다음엔 자기가 견적을 대신 받아주겠다고 나의 이런 성향을 답답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아마 그때에도 나는 또 이렇게 큰 마음을 먹어서야, 또 큰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바꾸게 되지 않을까.


옛날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떤 글이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서인지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눈에 불을 켜고 조금이라도 혜택이 큰 것을 사려고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싫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나는 늘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고장이 나고 닳아야 물건을 사게 되었고 그때는 합리적인 결정이나 비교보다는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 싼 것이 있다면 싼 것을 샀지만. 그래서인지 온라인쇼핑몰보다는 지하상가에서 보고 옷을 사는 것이 편했고 전공책들도 학교 안 서점에서 사는 게 편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인터넷에서 옷을 산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비교할 수 있는 물건이 많고, 같지만 다른 또 다르면서 같은 것들이 넘치는 시대에 '가서 사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니. 정말로 21세기보단 20세기에 맞는 인간일 수밖에. 온라인에서 파는 물건을 못 믿어서 그렇느냐고 하면 또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어렵다. 반품이나 환불때문에 그러는 것이냐고 하면 또 막상 오프라인에서 산 물건도 반품이나 환불을 거의 하지 않기때문에 그것도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뭘까, 나는 왜 이렇게 합리적인 비교를 모르는 인간일까?


정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내가 아마 '물건의 질'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물건의 질을 정확하게 알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격대비 성능'이라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텐데 나는 '필요할 때' 물건을 사는 것이 몸에 배어버려 필요성만을 따지느라 질을 따지는 데에는 영 젬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능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때문에 가격:성능의 비를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이것저것 따지고 재고 고민하는 데 드는 내 에너지를 아끼는 쪽으로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고 그것이 나의 성정으로 굳어버린 것 아닐까.


이렇게 살아서 손해보는 일도 많고 이른바 호구로 보이는 일도 많겠지만, 100만원짜리 핸드폰을 사서 음악 듣고 카카오톡을 하고 브런치를 읽고 트위터하는 게 다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나 스스로가 21세기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이 되기엔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2022년에도 온라인쇼핑몰보다 골목길에 있는 가게를 좋아하는 인간이고 블로그나 유튜브에 '업데이트'된 정보보다 개정 안 된 책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참으로 시대에 뒤떨어져 걷는, 도태되기 딱 좋은 인간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삶의 방향성인 걸 또 어쩌겠는가. 내 뇌의 용량과 체력의 총량은 한정되어있고ㅡ내가 찾고 싶은 정보는 스마트폰의 향상된 성능이나 갤럭시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봄이면 장미가 많이 피는 공원이고 학생이 수업 시간에 보인 슬픈 표정의 의미다. 내가 정리하고 곱씹고 싶은 것은 오늘 읽은 책 속 주인공의 행동이고 친구들이 나에게 건네준 다정한 위로다. 그 무용하고 비가시적인 정보들만으로 내 배터리는 다 닳아버려 유용하고 가시적인 정보들을 취합할 힘이 없다. MBTI에 과몰입하는 학생의 말에 의하면 내가 못 말리는 NFP형 인간이라서 그런 것인데 나는 그냥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손해보고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사야 할 물건들을 비교하고 재는 데에 드는 시간을 산책하고 대화하는 데 쓰는 게 내 기준에선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에서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할 곳이 어디인지ㅡ내 삶의 방향성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들을 합리적으로 비교하여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지나친 자기합리화라 머쓱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본다. 나는 오프라인 상점들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판매자들에게 빛과 소금같은 고객이다. 책을 잔뜩 사고 읽지는 않고 있는 것도 다 내가 서점과 출판사들의 빛과 소금같은 고객이라서 그런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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