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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강 Nov 04. 2021

'심지어'라고 말할 때

심지어 사랑할 때



학생들의 대입 자소서를 검토해줄 때 형식에 관해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단연 '부사어를 다 빼라'다. 작법과 글쓰기에 관한 책들에서도 부사어는 문장의 군더더기가 될 뿐이니 깔끔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사어를 빼라고 가르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단서가 붙는다. '실용문에 한해서'라는 단서가. 

일상에서 대화를 할 때나 문학 작품에서는 부사어를 빼면 맛이 밋밋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좋은 재료로 충분히 고아낸 육수는 그 자체로 담백하고 깔끔하다. 거기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는 것이 오히려 맛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간결한 문장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무리 잘 고아낸 육수라고 하더라도 소금과 파가 들어가야 제대로 된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부사어가 빠져버린 문장에선 감칠맛을 느끼지 못하겠다. 육개장을 먹을 때도 고사리와 토란대의 맛으로 먹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나와 비슷한 미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보니 한국어의 부사에서 느낄 수 있는 맛과 멋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했다.(대표적으로 김애란) 나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부사어의 실제적인 용례를 가지고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늦게 들어와 수업의 분위기를 깨버린 한 학생,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눈치를 본다. 나는 학생이 가방을 열지 않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직감하지만 학생이 입을 뗄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선생님 저 급하게 오느라 책 두고 왔어요."

그러면 나는 한 단어로 어이가 없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심지어?"

학생은 마치 대역죄를 저지른 영의정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주리를 틀 수는 없으니까 책을 복사해주며 '나무야 미안해'를 속으로 열 번 외치라고 한다. (조선의 왕들이 다 선생님처럼 인자했다면 피의 숙청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라며 생색도 낸다.) 

수업 시간에 늦었다. 책을 놓고 왔다. 

두 문장 사이에 '심지어'라는 부사 하나가 첨가된 것만으로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정확하게 몰라도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말의 느낌이다. 심지어? 그렇게 말할 때의 어조와 말투를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엇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맞장구를 칠 때도 '심지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내가 이 대화에 열렬히 참여 중임을 드러낼 수 있다. 누군가가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때 다른 단어를 모두 제쳐두고 말하면 된다. '심지어?' 부장은 일도 똑바로 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인턴을 갈구기까지 한다. 회사는 월급도 몇 년째 동결이면서 심지어 야근수당을 없애기까지 했다. '게다가'나 '하물며'와 같은 유의어들보다 더 깊숙이 가라앉는 문장이다. 발음을 할 때 첫음절인 '심'자에 힘을 주고 '지어'라는 쉬운 발음을 할 때는 말꼬리를 늘이기 편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 심지어어어-?

격렬한 맞장구의 파동이 생긴다. 그렇다니까, 심지어어-!


심지어의 뒤에 짝꿍처럼 같이 다니는 '까지'라는 조사는 또 어떤가. 심지어 밥까지 먹고 갔다니까. 심지어 배터리까지 나갔다니까. 그렇게 말할 때의 한탄의 어조는 다른 어떤 부사와 조사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이처럼 부정적인 용법에도 제 역할을 해내지만 긍정적인 문장에서 쓰면 더더욱 신이 나는 부사다. 주말 오후에 산책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웬일로 사람이 많이 없었다. 심지어 날씨까지 좋았다. 

떡볶이는 맛있다. 심지어 가격도 싸다. (가격까지 싸다.)

카뮈는 글을 잘 쓰고 지적이다. 심지어 잘생겼다. (잘생기기까지 했다.)

이만두(우리 엄마의 가명이자 애칭이다)씨는 요리를 잘하고 호방하다. 심지어 귀엽다. (귀엽기까지 하다.)

단순히 장점을 나열했을 때보다 '심지어'가 들어갔을 때가 뒤에 나올 장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 '까지'가 붙으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많은 것을 겸비한, 완전한 무엇인 것처럼 느껴진다. 강사강은 일도 열심히 하는데 심지어 브런치 글까지 열심히 쓰고 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스스로를 대견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심지어'라는 단어를 빼버렸을 때가 더 객관적이고 간결한 문장이 된다. 자기소개서에 "저는 화학공학에 대한 탐구 정신이 강합니다. 심지어 화학 성적도 좋습니다."라고 쓰면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문학에서 감정의 공명을 일으키기에 적합한 부사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녀는 방금 그에게 이별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그녀의 차까지 망가졌다. 

이렇게 쓰면 그녀가 느낀 감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고개를 묻은 채 울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다. 상황과 상황을 나열하면서도 느낌과 감정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부사가 가진 큰 장점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심지어'라는 말을 붙여보자. 그러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진 문장이 된다. 그럴 때 '심지어' 외에는 아무런 수식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윤감자를 심지어 사랑한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아주 수많은 감정들이 물밀듯이 덮쳐오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울고 싶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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